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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남자의 속물 근성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 애니 홀

by 썬도그 2015.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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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스탠딩 코미디언 출신의 반 대머리의 왜소한 외모의 지적인 이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닙니다. 항상 대사가 많은 떠벌이가 나와서 블라 블라 하는 것이 제 취향은 아니였습니다. 그렇다고 '우디 앨런'감독 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나나 공화국'이나 '돈을 갖고 튀어라'같은 슬랩스틱이나 무성 영화 같은 활발한 움직임이 많은 영화가 좋습니다. 그런데 코미디언 출신의 영화 감독이 1977년 연출한 '애니홀'은 기존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닌 찌질이 같은 신경쇠약에 걸린 남자 주인공과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이 등장하는 '스크루볼 코미디'를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를 가장 반기는 것은 아카데미였습니다. '애니 홀'은 1978년 아카데미 각본상, 감독상, 여우주연상과 작품상까지 휩쓴 그해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이 말로만 들었던 영화 '애니 홀'을 큰 상영관인 영상자료원에서 봤습니다. 


30년이나 더 지난 영화라서 그런지 탈색된 듯한 영화톤이 오히려 인스타그램 사진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세월의 더께가 붙은 필름 상태는 옛 영화의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영화 작법을 선보였던 영화 '애니 홀'>

먼저 '애니 홀'의 영화 내용을 이야기하기 보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영화 작법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을 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장면부터 나옵니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관객을 쳐다 보는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쳐다보면 관객들이 상당히 불편해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영화 작법은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카메라 정면 응시'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1953년 작 '모니카와의 여름'에서 처음 선보였습니다. 당시 이 장면 하나로 많은 영화 관계자와 영화계가 술렁거렸을 정도였습니다. 

'우리 앨런'은 이 카메라 정면 응시를 넘어서 관객과 대화를 하고 싶은 듯 수시로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대사를 칩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속마음을 여자에게 들키자 "어떻게 알았지?"라고 관객에게 말해 버립니다. 여기에 과거 회상 장면에 갑자기 쑥 들어가서 아이들과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등 시공간을 무시하는 발칙하지만 상큼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가장 웃겼던 장면은 투덜이인 '앨비 싱어(우디 앨런 분)이 '애니 홀(다이안 키튼 분)'과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데 바로 뒤에서 허세스러운 자기 잘난 척하는 인간의 말에 짜증내 합니다. 보통 이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을 보면 무시합니다만 '앨비 싱어'는 참지 못합니다.

뒷줄에 있는 사람이 '잉마르 베르만'을 논하고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으로 유명한 '마샬 맥루한'을 혹평하자 참지 못한 '앨비 싱어'가 '마샬 맥루한'을 데리고 나와서 맥루한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에게 무안을 줍니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 중에서 가장 웃겼던 장면입니다. 이런 장면 말고도 화면을 2분할 해서 '앨빈 싱어'와 '애니 홀'이 각자 정신과 상담을 받는 장면이나 자신의 집안과 '애니 홀' 집안을 비교하는 등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우디 앨런'의 자유로움을 한 껏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은 애니 백설공주를 보면서 자기만 마녀를 좋아했다는 내용의 짧은 애니는 이 영화가 얼마나 풍만한 상상력을 담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남자들의 사랑에 대한 속물스러움을 그대로 담고 있는 영화 '애니 홀'

딱 봐도 앨런의 분신인 주인공 '앨비 싱어(우디 앨런 분)은 뉴욕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입니다. 입을 털어서 먹고 사는 코미디언 답게 영화는 엄청난 대사량을 선보입니다. 앞자리에서 봤는데 자막 읽느라고 화면을 꼼꼼하게 보지 못했네요. 우디 앨런 영화는 영화관 뒤에서 봐야 합니다. 

'앨비 싱어'는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분류하는데 그 두 부류란 비참한 사람과 끔찍한 사람으로 구분하는 염세주의자입니다. 지적 허영을 추구하면서도 권위주의를 극도로 혐오해서 경찰이 면허증을 달라고 강압적으로 말하면 면허증을 찢어버리는 반골 기질이 가득합니다. 여기에 죽음을 탐닉하는 우울증과 신경쇠약을 달고 사는 남자입니다. 

이런 말 많고 다른 사람의 허세는 못 견뎌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도 허세스러운 모습이 있는 부조리함 그 자체인 '앨비 싱어'를 흠모하는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녀의 이름은 '애니 홀(다이안 키튼 분)'입니다. 


애니는 앨비의 지적인 모습에 푹 빠집니다. 코미디언이지만 그의 유머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애니는 먼저 접근을 하다가 자신의 차로 앨비를 자기 집까지 바래다 주는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테니스를 계기로 친해지고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사진을 좋아하고 클럽에서 노래를 하는 애니와 방송과 여러 행사장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하는 앨비는 그렇게 흔한 연인처럼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흔한 사랑의 밀당을 보여주는 모습을 우디 앨런 감독은 흔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서 애니가 침대에서 유체 이탈한 영혼이 의자에 앉아 있고 침대에 몸뚱아리만 있는 애니에게 마음이 없는 성관계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나 애니가 1년 전에 사귄 남자의 오글 거리는 추파를 둘이 옆에서 지켜보는 모습 등등 흔한 사랑의 밀당을 흔하지 않는 표현 기법으로 중간 중간 웃음을 자아냅니다. 

특히, 남녀 사이에 썸타기 같은 행동이나 가식적이고 허영심이 가득한 거추장스러운 행동을 조롱하듯 구겨서 휴지통에 넣는 듯한 앨비의 모습은 정말 유쾌합니다. 예를 들어서 길거리에서 갑자기 어차피 키스 할 거 키스를 하고 식사를 하면 밥맛이 더 좋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키스를 하는 앨비의 모습을 보면 상당히 정신 산만해 보이면서도 쿨한 뉴요커의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권태를 느끼게 되자 두 사람은 결별을 하게 됩니다.  결별하는 과정은 남자들의 속물 근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앨비는 애니를 좋아하는 이유가 자신을 우러러 보는 시선이 있어서 좋아했습니다. 애니도 앨비의 지적인 모습에 반했죠. 그런데 대화를 하려면 서로의 지적 수준이 비슷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앨비는 답답해 합니다.

앨비는 애니에게 대학 강의를 들으라고 권합니다. 그렇게 애니는 앨비의 권유로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 점점 지적 수준이 올라감을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까지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은 앨비의 성적 도구였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감정에 주체적이지 못하고 앨비에 끌려 다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애니에게 추근거리는 대학 강사가 나타나자 앨비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대학교에 가지 말라고 다그칩니다.

언제는 자기가 가라고 한 대학교에 이제는 가지 말라고 합니다. 남자들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자신이 콘트롤 할 수 있는 여자, 즉 순종적인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콘트롤 하기 쉬운 백치미가 있는 여자가 매력적이죠. 반면 똑똑한 여자들은 자신이 콘트럴 하기 힘드니까 '기쎈 여자'라고 주홍글씨를 써서 저주를 합니다. 

그렇게 둘은 쿨하게 헤어집니다. 



그렇게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던 앨비에게 새벽 3시에 전화가 옵니다.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애니였습니다. 애니는 욕실에 거미가 있다면서 잡아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에 새벽 길을 달려서 애니의 집에 도착한 앨비는 욕실을 뒤집어 엎으면서 뷰익만한 거미를 때려잡습니다. 욕실에서 거미를 잡고 나온 앨비 앞에 우는 애니가 보입니다. 애니는 거미가 무서운 게 아니라 앨비가 보고 싶었다며 속마음을 말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연인이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성장해 나갑니다. 특히 애니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L.A에 사는 음반 프로듀서에 눈에 띄어서 음반 발매를 하게 됩니다. 음반 발매를 위해서 함께 L.A에 찾아간 앨비는 이 L.A가 좀처럼 맘에 들지 않습니다. 시끄럽고 짜증나고 신경 쇠약에 걸릴 것 같은 복닥거리는 뉴욕이 생기가 있어서 좋지 L.A는 한적함만 가득해서 굉장히 불편해 합니다. 

결국 그걸 참지 못하고 혼자 뉴욕으로 돌아오게 되고 애니와의 관계도 큰 붕괴가 일어납니다. 뉴욕을 죽은 도시라고 말하는 애니와 멀끔하기만 하고 생기가 없는 L.A를 못 견뎌하는 두 사람은 결국 공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영화 '애니 홀'은 남자들의 속물스러운 사랑을 제대로 담고 조롱합니다. 연인 사이에 있는 흔한 밀땅의 허세스러움과 자존심 싸움을 블랙 코미디로 조롱합니다. 이런 모습은 홍상수 감독 영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아마도 홍상수 감독이 이 '우디 앨런'감독에게 큰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영화는 대사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 많은 대사에는 뼈 있는 유머가 굉장히 많습니다. 마치 애니 심슨가족을 보는 느낌입니다. 
세상의 부조리에 못견뎌 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부조리극의 주연으로 등장하는 앨비의 행동은 마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박아 넣은 듯 하네요. 

이런 이성적이지 못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우리들의 사랑 방정식을 1시간 내내 조롱하던 영화는 그런 비논리와 비이성적인 사랑이 우리의 사랑 방정식이라고 마무리합니다. 사랑은 계획대로 수학 계산처럼 딱딱 떨어지는 것이 아닌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그 감정적인 사랑이 사랑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연인에서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같은 기억을 공유한 관계를 계속 이어갑니다. 남들이 보면 미친 사랑 같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같이 미치면 그 사랑은 미친 사랑이 아닌 정상적인 사랑이 됩니다. 

이 영화 애니 홀은 다양한 영화 작법과 쉴새 없이 터지는 대사에서 나오는 유머가 많아서 1번 보다는 2,3번 볼 때 더 와 닿는 대사들이 많을 듯하네요. 또 하나의 흥미거리는 이 영화에는 지금은 꽤 유명해진 배우들이 꽤 나옵니다. 

'제프 골드블럼'과 '크리스토퍼 워켄' 그리고 '시고니 위버'가 나옵니다. '시고니 위버'의 데뷰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워낙 짧게 나와서 알아보기 힘듭니다. 위 장면이 힌트입니다. 원거리로 잠깐 나와서 알아보기 힘듭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앨비와 함께 영화관에서 나오는 바바리 코트를 입은 키 큰 여자가 '시고니 위버'입니다.

이 애니 홀은 실제 연인 사이였던 우디 앨런과 다이안 키튼의 실제 모습을 담은 듯한 느낌도 듭니다. 다이안 키튼의 본명이 다이안 홀이고 애칭이 애니였으니 다이안 키튼에게 헌사하는 영화 같기도 합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으니 다이안 키튼에게 우디 앨런은 은인 같은 느낌이겠죠. 

애니 홀은 흥행과 영화평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였습니다. 흥행과 비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죠. 이 애니 홀은 2편 격인 1979년에 연출한 맨하탄과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영화 맨하탄은 남자들의 사랑에 대한 속물스러움을 애니 홀 보다 더 부각 시켜서 보여줍니다. 따라서 두 영화를 같이 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애니 홀과 맨하탄을 연달아서 봤더니 다 보고 나서 두 영화의 내용이 섞여 버리게 되네요. 글을 쓰면서 두 영화의 장면을 떼어내느라 힘들 정도로 두 영화는 한 몸 같은 영화입니다. 

70년대 영화지만 아주 세련된 스크루볼 코미디 애니 홀입니다. 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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