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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전시회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내니의 비밀은 외로움을 달래는 막샷

by 썬도그 2015.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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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큰 기대를 가지고 봤습니다. 그러나 좀 실망스럽더군요. 비비안 마이어라는 미스테리한 생활 사진가의 삶을 추적하는 이 다큐 자체는 흥미로웠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편집광처럼 신문 스크랩에 집착하고 가끔 기이한 행동을 했던 유모의 삶을 추적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실망했던 부분은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아닌 사진이었습니다. 중형 카메라로 촬영한 흑백 사진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다만, 그 매력의 대부분은 뛰어난 품질의 흑백 사진에서 오는 매력일 뿐 사진 그 자체는 그냥 평이한 기록 사진이었습니다. 

"좀 포장이 심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진 그 자체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네요


2015/05/02 - [세상 모든 리뷰/영화창고] - 비비안마이어를 찾아서에서 찾은 6가지의 사진에 대한 생각

라는 글을 통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담았습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보면서 사진의 병폐와 장점을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깊이 생각나는 것은 사진은 셀렉팅의 예술이다!라는 것입니다. 무려 7만 장이상을 찍은 사진 중에 보석 같은 사진이 없는 게 더 이상합니다. 그 15만 여장 중 좋은 사진 200여 점을 전시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성곡미술관에서는 '비비안 마이어'와 게리 위노그랜드' 사진전이 9월 20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1만 원입니다. 



비비안 마이어, 내니(유모)의 비밀이 공식 사진전시회 명칭입니다. 



"사진은 가장 문학적인 미술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사진이 문학적인 이유는 일상을 그대로 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뛰어난 묘사가 여러가지 은유를 이끌어냅니다. 롤랑 바르트의 스타디움(보편적 정서)와 푼크툼(개인적 정서)가 모두 사진이라는 기억의 마중물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같네요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비비안 마이어'는 생활 사진가였습니다. 그런데 좀 더 진득하고 기이한 생활사진가였습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하기에는 기회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갑니다. 필름도 비싸고 인화 현상비도 비쌉니다. 



그런데 '비비안 마이어'는 롤라이 중형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취미로 사진을 찍습니다. 그렇다고 이 '비비안 마이어'가 부자도 잘 사는 집안도 아닙니다. 혼자 사는 여자였고 유일한 직업은 유모였습니다. 이집 저집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받은 돈을 사진에 투자했습니다. 

그렇게 무려 15만 장의 이상의 흑백, 컬러, 영상물을 남기고 200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년에는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녀가 찍은 사진을 보관하던 시카고의 한 창고업자가 밀린 창고비를 내지 않자 '비비안 마이어'의 물건을 경매에 붙입니다. 그 물건이 뭔지도 모른채 그냥 경매에 팔았고 사는 사람도 가방 안에 뭐가 들어 있는 지 모른채 물건을 받아 들고 집에 왔다가 깜짝 놀랍니다. 인화된 사진도 엄청 많지만 인화 안된 필름도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흑백 사진들을 인화한 후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렸더니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올라옵니다. 이후, 이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전 세계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살아 생전 자신이 찍은 사진을 현상도 하지 않고 혼자만 봤던 '비비안 마이어'는 2009년 사망 후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셀카를 많이 찍었던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에는 특이하게도 비비안 마이어가 촬영한 사진이 3분의 2정도 그리고 3분의 1이 자기 자신을 촬영한 셀카 사진이 많았습니다. 지금이야 셀카가 가장 인기 있는 사진이지만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셀카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액정 디스플레이가 없어서 촬영한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셀카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셀카 사진이 꽤 많네요. 이는 중형 카메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이안 반사식 카메라인 중형 카메라는 위와 같이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촬영을 합니다. 그래서 SLR로 촬영할 때 보다 셀카 찍기 편합니다. 뷰파인더를 보고 초점을 맞춘 후 고개만 들고 촬영하면 됩니다. 비비안 마이어는 이 중형 카메라를 적극 활용하는 사진들이 참 많습니다. 




먼저 셀카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자기애가 강한 여자 분이였을까요?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닐 듯 하네요. 사진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 '비비안 마이어'가 상당히 외로워 보였습니다. 여러 가명을 쓰는 등 자신을 철저히 숨겼지만 그 안에서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셀카를 적극적으로 촬영 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진을 세상에 또 내놓지는 않습니다. 사진전이나 주변에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죠. 



사진들은 그냥 흔한 일상 기록물 같은 평이한 사진들

내려다 보면서 촬영하는 중형 카메라는 몰래 촬영하는 캔디드 사진 찍기 편합니다. SLR은 눈과 시선을 일직선으로 향해서 상대방이 총을 맞는 느낌의 거북스러움이 가득한데 비해 중형 카메라는 박격포를 쏘듯 내려다 보니 저 사람이 날 찍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비비안 마이어는 주인집 아이들과 함께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진 찍기에 몰두합니다. 다큐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보면 당시 비비안 마이어가 키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인터뷰를 하는데 좋은 기억도 있지만 자신을 방치했던 아픈 기억도 함께 꺼내지더군요. 비비안 마이어는 아주 좋은 유모는 아니였나 봅니다. 사진 찍기에 몰두 하다가 아이를 방치하는 행동을 가끔 했습니다. 



좋은 사진들도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진은 평이한 기록 사진입니다. 어떤 공통된 주제도 없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어떤 피사체를 병적으로 기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산책을 하다가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었죠. 따라서 사진 자체에 큰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 세계에서 전시를 하는 이유는 이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독특하고 그 독특한 삶을 잘 포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것 같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거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니의 비밀은 외로움을 달래는 막샷

사진들 한 장 한 장에는 큰 가치가 없습니다. 다만 기록으로서의 가치는 큽니다. 시카고와 뉴욕의 50,60년대 사진들이 참 많습니다. 이 50년대는 생활사진가가 세상을 기록하던 시절이 아니였습니다. 보도 사진기자와 전문 사진가 등이 의뢰자의 의뢰를 받고 촬영을 했습니다. 

의뢰자가 있는 사진은 사진가나 사진작가가 찍고자 하는 사진이라기 보다는 출판 및 보도의 목적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의도로 가공 되어집니다. 그래서 순수하지 못한 상업적 사진과 비슷합니다. 


반면,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출판도 전시의 목적도 없는 그냥 사진 찍는 그 자체를 즐기려고 찍은 듯 합니다. 절대적 순수함과 강렬함을 품고 있다고 소개되고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절대적 순수함 보다는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이 친구였고 셔터음이 친구의 목소리였습니다.
평생을 외롭게 지내고 외부와 단절한 삶을 살았던 비비안에게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것은 카메라였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가 꽤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비안이 사진을 좋아하기 보다는 사진 찍는 그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의 결과물도 보지 못한 인화 안된 필름들이 꽤 많은 것을 보면 사진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네요. 아마도 돈이 없어서 현상도 안 한 필름이 많지만 돈이 있어도 현상을 안 했을 것 같네요. 정말 돈이 궁했다면 아예 사진 찍는 것도 안 할 것 같네요. 



커크 더글라스나 오드리 햅번이라는 유명인을 찍은 사진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진은 길거리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진들은 대부분이 막샷입니다. 여기서 막샷이란 폄하의 목적이 아닌 실제로 스냅 사진처럼 막 찍고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일반 생활사진가보다 대담해서 좀 더 근거리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많습니다. 사진들을 보면 갑자기 다가온 카메라에 놀라는 사진도 있고 찍지 말라는 손짓을 하거나 경계의 눈빛을 담은 사진들도 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는 개의치 않고 그냥 다 찍었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자신의 친구의 목소리인 셔터음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15만 장의 사진 중에 느낌이 굉장히 좋은 사진도 꽤 있습니다만 느낌이 좋은 사진은 극히 일부입니다. 그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그녀는 프로가 아닌 생활 사진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이 재 조명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활 사진가가 된 듯하네요




잘 포장된 생활 사진가. 이게 제 느낌입니다. 물론, 제 느낌이 정답은 아닙니다. 제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죠. 
유모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15만 장이라는 사진을 찍은 것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그 사진들이 SLR도 아닌 중형 카메라라서 촬영해서 사진 품질이 좋다는 것과 1950,60년대의 뉴욕과 시카고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 등의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비비안 마이어' 사진은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사진들을 보면서 이 사진을 찍었을 비비안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어떤 생활을 했을까?라는 카메라 뒤에 서 있는 그녀의 삶에 초점이 자꾸 맞춰지네요. 평생을 카메라와 친구하면서 외롭고 고독하게 보냈을 것 같다는 생각디 많이 드네요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또 다른 거리 사진가인 '게리 위노그랜드' 사진전과 함께 전시중입니다. 두 거리의 사진가의 다르지만 닮은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8월 22일, 9월 5일 , 9월 13일에는 무료 강연도 합니다. 




2013년 BBC에서 제작한 '누가 내니의 사진을 가져갔는가?'도 상영합니다. 전 시간이 없어서 보지 못했지만 꽤 볼만한 다큐입니다. 


시간 내서 꼭 보세요. 전 앞 부분만 봤는데 괜찮은 다큐네요



여성 거리 사진가는 많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진가가 '다이안 아버스'겠죠. 그 옆에 '비비안 마이어'가 있네요. 
두 사진가를 동급이라고 하긴 힘듭니다. '다이안 아버스'는 확실한 주제와 소명의식이 있는 반면 '비비안 마이어'는 아마츄어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위 개념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사진을 소비하고 사랑했을 뿐입니다. 




1970년대가 되면 비비안 마이어는 라이카 카메라를 사서 컬러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진은 누가 촬영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잘 촬영 되어졌네요. 이것도 셀카 같네요. 거울 앞에서  카메라를 가슴 위치에 놓고 목측샷으로 촬영한 듯 합니다. 




비비안 마이어를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만큼 오로지 자신의 사진만 가득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촬영하거나 남을 촬영한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그림자가 사진 안에 들어가는 것을 사진가 대부분은 싫어하는데 비비안 마이어는 과감하게 자신의 그림자를 사진 안에 넣습니다. 



애니 심슨가족의 25시즌에는 예술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한 짝퉁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찾아간 리사가 자신이 감동한 그림이 짝퉁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라는 사후확증편향의 말을 합니다. 이에 짝퉁 화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름다움은 짝퉁이 없다면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합니다. 짝퉁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그림이 너에게 감동을 주었냐?에 감동을 주었다라고 대답을 했다면 그 그림이 그 사진이 예술입니다. 

저에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감동을 주었냐?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생각입니다. 
조형성이 좋은 사진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그 골목의 옛 모습이 아닌 외국의 1950,60년대 사진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적인 연결 고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생활 사진가의 사진일 뿐이였습니다. 
다만, 그녀의 삶이 독특하고 비밀스럽고 외로웠던 삶에 대한 아련함이 있고 흥미롭지만 그 삶이 사진을 대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그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사진을 포장하는 포장지 이상의 역할을 하네요. 그 포장지를 벗기고 사진만 본다면 전 추천하기 힘든 사진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사진을 소비할 때 사진만 보는 것이 아닌 그 사진의 배경과 찍은 사진작가의 후광까지 섭취하기 때문에 한국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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