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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초고령사회의 암담함을 그린 뛰어난 추리소설 '백년법'

by 썬도그 201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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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습니다. 저자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이 영화화 되었지만 영화를 보지 못해서 어떤 작가인지 잘 몰랐습니다. 매번 실용서적이나 심리 관련 서적만 읽기 지겨워서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그렇게 한 두장 넘기기 시작한 책은 1부 2부를 모두 1주일 만에 해치워버렸습니다. 전자책으로 읽었기 때문에 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 했는데 다 읽고 검색해보니 상권과 하권으로 이루어졌네요. 그것도 모르고 빠른 시간 안에 다 읽어 버렸습니다. 



일본은 추리 소설과 공포 영화를 참 잘 만드는 나라입니다. 일본인 특유의 치밀함 때문인지 추리 형식의 드라마나 소설, 영화나 만화를 참 잘만듭니다. '진격의 거인'도 '21세기 소년'도 계속 궁금하게 만들면서 이야기를 진행하죠. 

<백년법>은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대상을 받은 추리소설입니다. 이야기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근 미래의 일본은 생존제한법을 있는 시대입니다. 생존제한법이란 불로화 시술이라는 늙지 않고 평생 살 수 있는 시술을 받은 국민은 100년이 지난 시점부터 생종권을 비롯한 기본 인권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법입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미국에 원자폭탄을 맞고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에서 들여온 불로화 시술(HAVI)을 수입합니다. 이 불로화 기술은 불로화 바이러스를 인간 몸속에 주입해서 인간이 불로화 시술을 받은 그 상태로 평생을 늙지 않고 사는 시술입니다. 꿈과 같은 기술이죠. 그러나 이 불로화 시술의 도입 조건은 100년이 지나면 불로화 시술을 받은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죽지 않아서 생기는 사회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일본인들은 20대 나이로 평생을 사는 시대가 됩니다. 이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 중국 등등 대부분이 나라가 이 HAVI 시술을 받고 영생을 살아갑니다. 다만, 각 나라마다 생존 가능 시간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한국 같은 경우는 60년으로 제한하는 대신에 국가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생존 기간을 연장해 주는 동기부여를 하면서 슬기롭게 성장한 나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책 곳곳에서 한국에 대한 찬양 또는 한국이 왜 일본을 누르고 강대국이 되었는 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담깁니다. 

반면 일본은 백년법을 도입했고 곧 그 약속한 100년이 도래하고 있는 늙은 그러나 몸은 20대인 사람들이 많은 늙은 나라로 묘사가 됩니다. 사람이 죽지 않으면 여러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하죠. 먼저 청년들의 일자리가 사라집니다. 사람이 늙지도 죽지도 않으니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그 몇 안되는 일자리를 꽉 잡고 있고 내놓지 않습니다. 또한, 타성에 젖어서 살기 때문에 활력도 없습니다. 

<백년법>은 이 HAVI라는 불로화 시술이 도입한 지 100년이 가까운 근 미래인 2048년에서 시작합니다. 
100년이 되면 첫해에 불로화 시술을 받은 사람부터 차례로 강제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시간이 다가오자 총리 등의 고위층들은 갈팡질팡합니다. 

이에 유사 아키히토라는 내무성 생존제한법 특별준비실 실장은 백년법을 꼭 시행해서 일본의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늙어버린 일본은 미래가 암울하다면서 젊은 피가 돌게 하기 위해서 늙은 사람들은 꼭 죽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죠. 그러나 정작 자신이 백년법에 걸려서 죽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보다 높은 고위관료들은 고민을 하다가 국민투표에 붙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대로 그러나 놀라운 결과가 나옵니다. 그 결과는 백년법을 연장하자는 내용입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희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정작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자신들의 일이 되자 사람들은 죽기 싫어서 반대표를 던지고 그렇게 일본은 백년법을 시행하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초고령국가가 된 일본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소설입니다. 


일본은 초고령사회의 병폐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장수를 하니 은퇴 후에도 꽤 긴 시간을 지냅니다. 
그렇다고 노동력이 있는 나이도 아니죠. 일본 정부는 이 노년층에게 복지비의 무려 70%를 노인의 복지에 쏟아 붙고 있고 그 돈은 다 정부가 빚을 내서 메꾸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이렇게 많다보니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이가 2,8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하고 있습니다. 

30년 전에는 30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했다면 현재는 2,8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초고령사회가 되다보니 일본은 시름시름 병들고 있고 결코 다시 예전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몇일 전에 본 KBS의 명사십리에서는 초고령사회의 공포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도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백년법>은 사람들이 늙지 않기 때문에 노동력이 20대와 동일한 노년층이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젊은 층이 높은 실업률에 빠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이게 바로 우리의 근 미래의 디스토피아구나를 연신 탄식하면서 읽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작가의 깊이 있는 시선을 통해서 추리 형식으로 담고 있습니다.

책은 총 2세대 또는 3세대에 걸쳐서 주인공이 바뀌면서 진행됩니다. 100년이나 사는 세상이다보니 여자 주인공의 아들까지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그리고 100년 법이 시행 된 이후의 문제점과 젊은 시절 패기에 쩔었던 유사 아키히토가 일본 총리가 된 후 꼰대가 되는 과정도 흥미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권력 다툼이 하편에 보여지는데 이 부분은 초고령사회의 논점에서 크게 벗어나서 후반으로 갈수록 초고령사회에 대한 논점이 흐려지는 경향이 있지만 대신에 계속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야기로 독자에게 시종일관 한눈 팔지 못하게 합니다. 

2048년과 50년이 지난 2098년을 배치해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아주 미려하네요. 그냥 쭉 자기 학 싶은 이야기만 했다면 이 소설은 흥미가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추리형식이기 때문에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이 터진 이유와 과거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나오게 만들어서 끝까지 흡입력을 유지합니다. 


이 <백년법>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초고령사회가 되면 우리 모두 죽는다라는 것입니다. 노인들의 욕심 때문에 나라가 늙어서 나라 전체가 죽는다는 메시지입니다. 때문에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양보를 하는 먼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지라고 끊임 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게 쉽지 않음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그 쉽지 않음은 목숨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의 시선이란 먼 미래가 아닌 근 미래만 보고 사는 이기적인 동물임을 잘 알기 때문이죠. SF 추리 소설이기 때문에 근 미래의 다양한 신기술이 소개 되고 다양한 신개념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늙지 않고 길게 살다 보니 외모만 보고 몇 살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100년 가까이 살아도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 구성 단위인 '가족'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는 핵가족을 넘어 원자가족 아니 원자화 되어가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극대화 시킨 모습으로 불규칙적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이런 사회를 '액체사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모습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점을 제시합니다. 

또한, 늙지 않고 사는 것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며 몸이 늙음으로써 주는 기쁨이 있고 그게 자연 섭리이자 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이런 시선은 꼰대 스타일의 고리타분한 시선으로도 보여지긴 하네요. 할리우드 영화들이 그러잖아요. 기승전가족으로 끝나죠. 

불로화 시술의 세상이 되자 유능한 인재를 영구히 확보하겠다면서 정년제를 폐지합니다. 이 정년제 철폐 때문에 신세대의 취업난은 더 가속화 되는데 현실에서 영감을 얻은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죠. 이외에도 구글글래스 같은 장비를 끼면 뇌파로 메시지를 주고 받거나 ID카드로 모든 것을 결제하는 모습이나 무인 자동차 등등 미래의 흥미로운 기술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이 일본의 다양한 SF애니에서 봤음직한 내용들이긴 하죠. <백년법>은 우리에게 경고장 같은 추리소설입니다. 초고령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추리 형식으로 버무려서 먹기 좋게 만들어 놓은 소설입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서 초고령화 사회로 질주하는 일본과 그 뒤를 따라서 추격하고 있는 한국의 근 미래의 모습을 느껴 볼 수 있는 빼어난 소설입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르게 읽었네요.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단 저자가 너무 국가주의에 물든 모습이 보이긴 하네요. 국가의 형태도 미래에는 구차한 형식이 될지도 모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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