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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고공 비행을 하다 불시착한 듯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

by 썬도그 2014.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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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년 코난으로 만나서 '바람이 분다'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의 만남도 끝이 나나 봅니다. 2번 이나 은퇴 선언 했다고 복귀해서 또 복귀할 수 있다곤 하지만 은퇴하지 않아도 73세의 나이로 또 다른 작품을 하기에는 좀 무리일 듯 합니다.

'바람이 분다'를 개봉한 지 1년이 지나서 봤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바람이 분다'는 국내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쓸쓸히 사라진 애니입니다 그럼에도 하야오 감독의 애니이기에 뭔가 다르겠지. 우리가 너무 일제하면 치를 떨면서 거부하는 강한 거부 반응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좋은 애니인데 필요 이상의 비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봤습니다


일본 제국의 전투기 제로센을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의 이야기를 담은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는 2차 대전시 일본에서 만든 무기 중 유일하게 미군을 놀라게 했던 제로센이라는 뛰어난 성능의 전투기를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담은 애니입니다. 먼저 이 '바람이 분다'는 여러가지로 구설수가 참 많은 애니입니다.

먼저 호리코시 지로가 애니로 담길 만큼 유명하고 유의미한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이 저절로 생깁니다.
지금까지 어떤 무기를 만들었다고 그 사람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나 애니가 있었던가요?  셔먼 탱크 설계자, AK47소총 설계자, 머스탱기 설계자, 독일 티거 탱크 설계자 등등 어떤 전쟁 무기를 만들었다고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다큐 영화도 아니고 판타지 애니를 주로 만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왜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요?



이는 하야오 감독이 날 것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소년 코난에서도 다양하고 아름다운 비행체들이 등장합니다. 공중 부양하는 듯한 날 것으로부터 거대한 폭격기 등 다양한 비행체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잠자리 같이 생긴 비행체를 등장 시킨 '천공성의 라퓨타'에서도 볼 수 있었고 그의 작품 중에 수시로 다양한 비행체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하야오 감독이 미쯔비시사와 연관이 된 집안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만드는 것을 보고 자란 하야오는 어렸을 때 꿈이 비행기 조종사였습니다. 마치 영화속 주인공인 지로의 꿈과 똑같죠. 그러나 조종사가 되지 않고 세계적인 애니메이터가 됩니다. 자신의 영화에서 끊임없이 하늘에 대한 동경과 비행기에 대한 애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제로센의 설계자이자 일본의 항공 기술을 한 단계 뛰어 넘게한 지로를 주인공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먼저 이 제로센이란 전투기를 살펴보죠. 일본은 2차 대전을 일으킨 제국주의 국가이지만 서양의 기술을 흡수해서 큰 제국이라는 한계 때문에 기술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소총부터 전차까지 성능이 조악했죠. 특히, 전차쪽은 1차 세계대전 수준이었습니다. 유럽에서 독일 티커 탱크에게 까이던 미육군의 셔먼탱크가 태평양 전선에서는 '신의 전차'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군은 미개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본 무기 중에서 미국을 놀라게 한 전투기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제로센'입니다. 이 '제로센'은 영화 '진주만'에서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제로센은 미군의 콜세어보다 기체가 가벼워서 속도가 빠르고 선회반경이 콜세어 400m보다 200m로 짧습니다. 그래서 꼬리잡기 같은 공중전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여줍니다. 뛰어난 기동성과 속도로 미 공군과 해군을 유린하던 제로센. 미군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긴 항속거리와 빠를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체를 가볍게 만들다보니 총알 몇 발만 맞아도 터지는 약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늪에 추락한 제로센을 미군이 회수하면서 미군은 제로센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이 제로센의 약점을 알게 됩니다. 기체가 가볍기 때문에 빠르지만 500km 이상으로 고속으로 날면 기체가 부셔진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군은 급강하를 하면서 제로센을 공격하거나 꼬리에 제로센이 붙으면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급강하를 하면서 제로센을 따돌렸습니다.

제로센은 급강하를 하다가 500km 이상의 속도가 나오면 기체가 흔들거리다가 부셔져버립니다. 여기에 미군의 물량 공세로 2대의 미군기가 1대의 제로센을 추격하는 뛰어난 협동 작전으로 제로센은 전쟁 후기에는 미공군의 먹이가 되고 결국 자폭 폭탄을 싣은 가미가제로 변신하게 됩니다. 제로센들은 무전기가 있지만 성능이 조악해서 이런 협동 플레이를 할 수 없었습니다.


판타지를 버린 하야오. 다큐 바람이 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가 재미있는 이유는 뛰어난 그림체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그리고 판타지 때문입니다. 특히 스토리들은 대부분 상상력을 총동원한 듯한 뛰어난 판타지들이 많았습니다.

이웃집 토토르 같은 소박한 상상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거대한 상상까지 그의 애니들은 현실과 상상을 절묘하게 섞은 애니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는 다큐에 가까운 애니입니다. 전체적으로 이탈리아 비행설계자와 만나는 환상 장면이 있긴 하지만 꿈이라는 공간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판타지적인 요소는 전혀 있지 않습니다

왜 다큐를 들고 왔을까요?
지금까지 판타지라는 엔진으로 날던 하야오라는 비행기가 지상과의 조우를 위해서 연착륙의 도구로 다큐라는 랜딩기어를 내린 것 같아 보이네요. 그 선택을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다큐의 소재도 소재지만 이 지로라는 인물이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로는 어려서부터 조종사가 되고 싶었지만 눈 때문에 조종사의 꿈을 포기하고 비행기 설계사의 꿈을 키웁니다. 정말 지루할 정도로 바른 청년인 지로는 뛰어난 인격과 천재성을 보이면서 일본의 항공 기술을 진일보 시킵니다.

독일에 가서 융커스 박사가 만든 융커스 폭격기를 보고 유럽 여러 곳을 다니면서 유럽의 선진 항공술을 배웁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미쯔비시 사에서 함재기 설계를 하는 팀장까지 합니다. 이런 성장 과정은 그런대로 미끈하게 보여줍니다. 지로가 어떤 업적을 했고 어떤 기술을 선보여서 20년이나 뒤쳐진 일본 항공기를 단숨에 치고 나가게 했는지를 잘 그립니다. 



그러나 이 지로라는 인물은 자신의 꿈인 뛰어난 비행기를 만들지만 이 비행기가 살인 무기인 전투기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에 대한 고민이나 거부 반응은 보이지 않습니다. 역사 의식도 사회 의식도 없고 오로지 가난한 나라 일본에서 뛰어난 전투기를 만들 생각만 합니다. 

물론, 지로에게 이런 시선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로는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전투기를 만들 수 없었겠죠. 그래서 바람이 분다에서는 비행기는 저주 받은 꿈이라는 말을 통해서 비행기는 사람을 싣고 나르는 궁전이 될 수도 있지만 전쟁 무기가 되기도 한다는 말로 지로의 무신경한 모습에 물타기를 합니다. 


여기에 제로센과 일본의 운명을 한 독일인 엔지니어의 말을 통해서 알게 되는 수동적인 인물이 지로입니다.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호주, 네덜란드, 중국, 미국, 영국과 싸우게 되었다는 친구의 말에 파멸이군!이라는 나름 시니컬하고 비판적인 말을 하지만 지로라는 인물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주인공이 아닙니다.

물론, 일본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항공 엔지니어일 수 있지만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고 곱게 보려고 해도 보아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독도는 우리땅이고 일본이라면 바로 급흥분하는 한국인들의 습속을 아주 경멸합니다. 따져볼 것은 따져보고 흥분을 해도 늦지 않은데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일본해라고 표기하면 무조건 광분하는 한국인들을 경멸합니다.

이케아의 일본해 표기 문제로 화를 내던 한국인들은 네이버의 라인에서 일본해 표기가 나와도 군소리도 안 합니다.
웃기는 행동들이죠. 그래서 전 한국의 민족주의를 넘어서 극단적 애국주의를 경멸합니다. 그럼에도 이 애니는 제로센이라는 전투기 제작자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편하게 볼 수 없네요. 그걸 떠나서 지로라는 인물 자체가 매력이 없습니다.

큰 사건, 사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양의 기술을 접목해서 뛰어난 전투기를 만들었다가 내용의 대부분입니다



나오코와의 사랑도 작위적은 느낌이 많이 들다

바람이 분다는 초반에는 지로의 꿈을 보여주다가 후반에는 나호코와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관동대지진때 열차에서 만난 나호코와 수년이 지난 후 만나서 결혼까지 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새하얀 순애보를 보여줍니다. 지로가 제로센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 또는 후원을 해준사람이 나호코이고 나호코가 없었다면 제로센은 쉽게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호코 부분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라고 해도 전체적으로 밍밍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랑스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사랑이 전투기 엔진보다 높은 출력을 보이기 때문에 후반에는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가 잔잔하면서 아름답게 보여집니다



음악과 그림만 아름다웠던 불시착한 영화 '바람이 분다'

나호코의 뒷모습처럼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다가 떠났으면 했지만 미아쟈키 하야오 감독은 마지막 작품에서 연착륙이 아닌 경착륙을 넘어서 불시착을 하는 모습입니다. 먼저 소재 자체가 문제가 많은 인물을 그렸다는 것도 그렇고 피해국의 시선을 제거하더라도 지로라는 인물이 이렇게까지 담을 만한 위인인가? 하는 의문을 넘어 질타가 됩니다. 

여기에 사랑 스토리도 그냥 심심하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칭찬할 것은 역시 하야오 감독의 그림이라는 뛰어난 그림체, 특히 대규모 군중씬은 한올한올 살아있는 느낌인데 이는 지브리만이 할 수 있는 기술력입니다. 여기에 히사이시 조의 아름다운 음악과 놀라운 효과음 같은 하드웨어적인 기술은 단연 최고입니다. 

하야오의 다음 작품을 볼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아쉽지만 은퇴를 하지 않아도 큰 기대를 하기 힘들어 보이네요. 
지로의 영화 속 대사처럼 끝이 너덜너더해진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이 거장의 은퇴에 경의를 표합니다. 한 작품으로 그를 매도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고 환상을 심어준 영원한 산타할아버지가 '미야자키 하야오'니까요. 

바람이 분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는 '바람이 분다'였습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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