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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노예12년, 하얀 흑인이 검은 흑인노예 체험을 통해 인권을 깨닫는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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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12년, 하얀 흑인이 검은 흑인노예 체험을 통해 인권을 깨닫는 이야기

썬도그 2014. 2. 25. 21:54

영화 노예 12년은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71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한국에 생각보다 일찍 개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골든글러브 작품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개봉하는 노예 12년을 미리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노예 12년을 보기 전에 알아야 할 미국의 흑인 노예사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무런 지식 없이 봐도 좋은 영화이지만 알고보면 처음의 당혹감을 떨칠 수가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 되면 사탕수수 밭에 서 있는 미국 흑인 노예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주인공 '솔로먼 노섭'의 노예 생활 이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미국의 흑인 노예를 생각하면 위 이미지처럼 백인 농장주에게 채찍질을 당하면서 온갖 고초를 당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립니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인 '솔로먼 노섭'은 남 부러울 것이 없는 흑인 가정을 꾸리면서 사는 모습을 회상씬으로 보여줍니다. 
응? 흑인이 다른 미국 백인들처럼 살수 있어? 이 모습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는 미국의 흑인 노예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고 저도 이걸 모른 상태에서 초반에는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영화를 보고 인터넷을 뒤져서 흑인 노예사를 찾아봤고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 참고가 되고자 간단하게 정리를 하겠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1841년 뉴욕주 사라토가에 사는 흑인 가장인 '솔로먼 노섭'이 백인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친구같이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흑인 노예사가 처음 시작 된 것은 1619년 아프리카 흑인들을 네덜란드 상인들이 배에 강제로 태워서 미국 버지니아에 팔면서 시작이 됩니다. 1808년 미국의 노예 수입을 금지하기 전까지 아프리카 흑인들은 미국에 공급이 되고 노예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19세기 초 흑인 노예 수입이 금지 되면서 흑인 노예는 공급이 멈추게 됩니다. 

노예 수입은 금지 되었지만 노예 제도는 유지하고 있던 미국은 평등을 나라의 운영체제로 선택했지만 흑인에게는 같은 인간이 아닌 재산이나 원숭이로 취급 했습니다. 그러다 미국 북부 지역은 상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상공업에서는 노예보다는 자유로운 신분을 가진 흑인이 더 경제에 도움이 되기에 흑인들을 자유인으로 풀어줍니다. '솔로먼 노섭'은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는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북부 미국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흑인에 대한 시선이었지 면화라는 노동 집약적 산업이 발달한 남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흑인을 개나 원숭이와 동급으로 보는 2개의 세계가 존재 했습니다.  미국에서 흑인 노예제가 폐지 된 것은 1863년 1월 1일이니 이 영화속 배경은 남북 전쟁(1861년~65년)이 일어나기 전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보시면 좋습니다.



하얀 흑인 '솔로먼 노섭' 인신매매를 당하다


북부 지역에서 자유인으로 살던 솔로먼 노섭(치에텔 에이오포 분)은 피부는 검은 흑인이었지만 백인들과 동등하게 살던 자유인이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고 머리가 영특해서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어느날 노섭은 유랑 극단의 제안을 받아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대가로 돈을 받기로 계약을 합니다. 그렇게 유랑 극단과 함께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간 노섭은 그곳에서 유랑단에 의해 흑인 노예로 팔리는 인신매매를 당합니다.

당시는 흑인 노예 수입이 금지 된 상태였지만 흑인 노예에 대한 수요는 남부 미국에서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북부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흑인들의 인신매매가 많았고 그중 한명이 노섭이었습니다.  노섭은 그렇게 인신매매단에 팔려서 남부 지역에 끌려가게 됩니다. 거기서 노섭 대신에 플랫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되죠.



생존하기 위해서 흑인인척 하는 백인 솔로먼 노섭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노섭은 다른 흑인들과 달리 박학다식하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흑인이었습니다. 첫번째로 팔려 간 농장주는 상당히 인품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노섭의 재능을 알고서 노섭에게 일을 맡기는데 노섭의 뛰어난 재주로 돈을 벌게 되자 


바이올린을 선물하는 착한 품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백인 농장주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은 이 노섭 아니 플랫을 지켜주기 위함과 동시에 빚 때문에 악독한 농장주인 엡스(마이클 패스벤더 분)에게 팔아 버립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구역질나는 엡스라는 냉혈한 아래에서 10년 이상을 보내는 참혹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혹스러운 장면들에 고개를 돌리고 싶을 때가 한 둘이 아니였습니다. 


목화를 따는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채찍질을 하고 흑인 여성을 노리개로 삼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플랫은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못 본척합니다. 왜냐하면 플랫은 자신은 북부 흑인인 자유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자식과 생이별을 한 흑인 노예 여성이 매일같이 울자 그만 닥치라고 윽박을 지르기도 합니다. 



다른 흑인들은 글도 모르고 노예 근성에 찌든 진성 노예지만 자신은 먹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상당히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이런 억압이 계속되면 주인공이 빡쳐서 농장주를 찌르고 복수를 해야 통쾌 상쾌 시원합니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렇게 그리거나 액션 영화라면 총으로 죽였겠죠. 

그러나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차분하게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플랫(노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낮에 목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서 채찍질을 당하고도 밤에는 엡스라는 악마에게 이끌려서 춤을 추고 바이올린 연주를 해야 합니다.

이런 줄거리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이러다 보니 젊은 관객들은 따분해 하거나 징그러워 할 뿐입니다. 그런데 나이들면 그 모든 것이 다 와닿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감정대로 살아가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은 끓어 넘치지만 참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그런 일상 아니 인간의 너더분한 삶을 잘 담고 있기에 나이든 관객들이라면 그 고통의 내제화를 이해하지만 젊은 분들 중에 쾌락에 바로 반응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중간 중간 지루한 모습에 좀 따분하긴 하더군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계속 치밀어 오릅니다.


영화 변호인 같았던 영화 노예 12년

이 노예 12년은 그렇게 혹독한 흑인 노예의 삶만 보여줍니다. 다른 흑인들이 도와 달라고 해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이악스럽게 그런 손길을 외면합니다. 노섭만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이 남부 흑인 노예들은 매 맞는 개처럼 주인 눈치만 살피면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참습니다. 


이런 플랫에게 팻시라는 흑인 노예 여성의 고통은 그냥 지켜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당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눈물을 흘린 장면은 이 이악스러운 북부 자유인 출신의 백인의 피가 흐르는 플랫이 백인들이 듣는 바이올린을 버리고 흑인 노예들의 영가를 함께 합창하는 장면입니다.

흑인들의 노동요와 영가를 따라 부르는 플랫의 모습을 보면서 백인인 척하는 노섭은 흑인 노예 플랫으로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볼 장면입니다. 마치 속물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가 되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흑인 노예 해방에 큰 계기가 된 소설 '노예 12년'


이 영화는  솔로먼 노섭이 12년 간 미국 남부 농장에서 혹독한 고통을 받은 이야기를 책으로 쓴 솔로먼 노섭의 '노예 12년;을 영화화 한 작품입니다. 미국 흑인 노예 해방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입니다. 미국 최초의 밀리언 셀러 소설이죠. 그러나 이 소설은 소설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소설은 허구라고 남부 백인들은 주장 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예 12년'이라는 논픽션 소설이 발간 되고 노섭의 증언과 강연이 남북 전쟁의 도화선이 됩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습니다. 영화 음악도 어둡고 묵직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기에 우리는 그 모습을 직시해야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묵묵하게 담고 있습니다. 

뛰어난 연출력 특히 영화의 크라이막스인 팻시를 채찍질 하는 장면을 롱 테이크로 담는 그 촬영술은 이 묵직한 슬픔을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고통을 편지를 써서 탈출하려다가 포기하는 장면은 최근의 신안군의 염전 노예의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큰 울림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시대와 장소는 달라도 우리 안의 폭력 근성과 인간에 대한 채찍질은 변하지 않음을 느끼면서 긴 한숨이 나옵니다. 어디 이뿐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보다 약한 존재에게 막 대하는 폭력성을 안에 품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물음을 하고 있는 영화 12년

인간의 존엄성을 묻는 영화입니다. 흑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그 이전에 인간을 원숭이도 보던 그 폭력을 담고 있습니다. 흑인 인권사까지는 담고 있지 않습니다. 하얀 흑인이 검은 흑인을 경험하고 인권운동가가 되는 내용입니다. 

흑인 인권사라면 오히려 이 영화 말고 작년 말에 개봉한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가 더 좋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흑인 인권에 대한 영화가 꽤 많이 나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오마바라는 흑인 대통령이 당선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네요. 만약 흑인 대통령이 당선 되지 않았다면 이런 흑인 인권에 대한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못했을 수 있습니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때 남북 화해의 손짓을 담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겠죠. 영화도 시대의 분위기를 타는 것 같네요

감수성과 흑인 인권 혹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또한, 액션 영화나 권선징악의 영화에만 길들여진 분들에게는 이 영화 그냥 참혹스러운 영화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실제 모습 혹은 우리안의 악마성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장 참혹스러우면서 분노했던 장면은 채찍질 하는 장면이 아닌 악마 농장주 엡스가 흑인을 때리면서 그 채찍질 당위와 채찍질의 숫자가 성경책에 담겨 있다는 우기는 위선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하늘이 벌을 줄것이라고 하고 백인 농장주는 하나님의 지시라면서 채찍질 하는 장면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는 분들에게 권하는 영화입니다.
노섭이 관객에게 눈길을 오래 주던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 영화네요.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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