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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예술 평론가나 기자가 쓴 예술평을 내가 느낀 감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by 썬도그 201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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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땠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가 영화평을 부탁합니다. 자칭 영화 매니아인 저는 일사분란하게 현학적인 단어를 몇가지 써가면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아주 정갈하고 깔끔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전 집에 가는 길에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내가 한 영화에 대한 감상이 내가 스스로 생각한 감상법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즐겨 찾는 영화 평론가의 영화 평과 내가 친구에게 말한 감상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진짜 느껴서 그렇게 말한 것일까? 아니면 그 영화 평론가가 느낀 것을 나도 느끼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나도 느낀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은 한 참 했었고 결론은 영화를 보기 전에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영화를 보자였습니다.

예고편,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의 평점 그리고 줄거리와 해외 평점만 보고 영화를 보고 난 후 평론가의 글들을 읽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느낀 것과 영화 평론가의 느낌이 같은 것도 있지만 이전보다 다른 것도 확실히 많아졌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보니 영화를 보는 나만의 시선, 나만의 느낌을 영화 리뷰 글을 포스팅할 때 확실히 도움이 되더군요. 


전시회 서문이라는 위약을 먹고 예술품 감상하는 사람들

미술전, 사진전, 음악회에 가서 전시회 서문이나 설명문 읽어 보시나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구에 있는 팜플렛을 들고 그 내용을 다 읽거나 읽으면서 전시회를 볼 것입니다. 
저는 이 방식을 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에 설명한 영화 감상법처럼 그 전시회 서문의 영향을 가득 받기 때문입니다. 

그 전시회에 설명된 이 작품은 인간의 고통을 형상화 해고 우리 안에 있던 단발마를 끄집어 냈다는 식의 현학적이고 복잡한 서문을 읽고 우리는 그 예술품을 그 서문안에 담겨 있는 단어와 문장 안에 감상이 갇혀 버립니다. 
전 이 방법 보다는 전시회 서문이나 팜플렛은 전시회를 일단 다 돌아 본 후에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아무런 정보없이 다 본 후 느낀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해석이 가능하면 가능한대로 이해가 안 가면 안 가는대로 물 흘러가듯 감상을 하세요. 그 다음에 전시회 서문과 작품 설명을 보면서 그 작품에 대한 이해를 하면 됩니다. 

답답하더라도 이 방법을 권하는 이유는 위약 효과(플라시보 효과) 때문입니다. 
전시회 설명이나 작품 설명을 읽으면서 작품 감상을 하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작품 설명에 적힌 감상 포인트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나인에게 하룻밤 충동적인 성은을 내리면 다음날 후궁이 되듯이, 오늘날엔 평론가가 '이것이 예술'이라고 선택을 하면 작품은 예술품이란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일까. 현재의 예술은 과거의 예술과 동명이인처럼 '예술'이라는 이름만 공유하고 있는 전혀 다른 양태의 존재인. "예술은 사기"라는 백남준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예술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 58페이지 일부 발췌

평론가가 이것은 예술이라고 명명하면 그 작품은 예술이 되는 시대입니다. 
이는 대단히 폭력적인 시선이고 일방적인 시선입니다. 평론가가 절대 권력자가 되어서 예술품을 재단하고 인정하고 칭찬하면 그 작품은 한 순간 대단한 예술품으로 격상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칭송을 그대로 마셔버립니다. 

이런 경향은 모더니즘이 나온 이후에 더 심해집니다. 우리는 인상파 화가의 그림이나 르네상스 미술품이나 조각품을 보고 감탄을 합니다. 우리와 똑같이 그렸거나 깎았거나 아니면 딱 보고 단 10초 안에 환한 미소가 번질 정도로 딱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조형 예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 나온 후 미술은 표현주의, 입체파, 다다이즘 등으로 추상 또는 상상의 세계로 넘어가더니 프레임이라는 좌대 공간은 일상의 공간이 아닌 순수하고 초월적인 공간 즉 예술적 창조성으로 이룩한 공간이라는 개념이 스며들면서 미술은 난해해집니다. 

솔직히, 현대 미술 작품을 보고 딱 와 닿는 미술품이 몇개나 있습니까? 그로테스크하고 미니멀하고 뭘 그렸는지 모를 그림과 조각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무런 예술 감상에 대한 훈련이나 소양이 없는 일반인이 그 작품보고 뭘 느낄까요? 대부분 느끼지 못합니다. 그때 서문이나 설명문 보고 뭔가 좀 느껴보죠. 그런데 과연 그 느낌이 내 느낌일까요?


느끼는 것이 없으면 느끼는 것이 없다고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느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집니다. 느끼지 못하면 예술 소양이 없다고 생각 된다고 느끼기에 느낀 척을 합니다. 못 느끼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히 별 느낌 없는데라고 말하지 못하죠

다만, 이런 것은 있습니다. 내 경험과 시선과 내 주관과 작품이 링크가 되고 뭔가 느낀다면 좀 오바스럽게 감탄을 하면 좀 더 그 느낌이 풍성해 집니다. 흥을 인위적이라도 되면 조막만한 감상이 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고 그 정체를 단어로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추천하는 감상법이지만 남의 말, 특히 평론가의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서문을 무용지물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시회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읽어야 합니다. 객관적인 정보가 감상에 큰 도움을 주고 그게 뭔지 어떻게 이루어졌는 지를 알려주는 사실 정보는 읽어줘야 합니다.

다만, 평론가가 쓴 평론가의 감상을 그대로 흡수 하지 마세요. 



예술품은 내가 느끼는 것이지 평론가가 느낀 것을 내가 느끼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예술평론가 수전 손택은 아서 단토가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비슷한 시기에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유명한 에세이를 썼다. "도시의 공기를 더럽히는 자동차와 공장의 매연처럼, 예술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뱉어놓은 말들은 우리의 감성에 해독을 끼친다. 

정력과 감성을 희생하면서 까지 비대 할 대로 비대 해진 지식인의 존재가 이미 해묵은 딜레마가 되어버린 문화권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 

<예술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 57페이지 일부 발췌

예술 전시회의 전시회 서문은 미술 평론가, 사진 평론가들이 쓰지만 선배나 아는 교수님이나 스승이 써주는 글도 많습니다. 이런 전시회 서문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어느 전시회 서문에서도 비판적인 글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례사 서문이라고 합니다. 칭찬만 가득하죠. 가끔 비판적인 문장을 넣은 서문도 있긴 하지만 그건 아주 가끔입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현학적인 글이 가득합니다. 뭔 내용인지 이해도 안가는 단어만 잔뜩 나열하는데요. 이는 우리의 무식의 탓도 있지만 일부러 현학적인 서문을 쓰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학식을 자랑함과 동시에 전시회의 품격을 높여주기 위함이죠
전 그런 서문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먹물끼리 주고 받는 인삿말!

그런 인삿말과 덕담이 가득한 전시회 설명문과 서문을 읽고 우리는 그걸 그대로 흡수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예술 감상은 내가 주인이지 평론가가 주인이 아닙니다. 또한, 사진작가가 난 A를 형상화 하고 B를 관람객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도 관람객이 C라고 느꼈다고 해서 C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예술품에 정답이 없듯 예술 감상에도 정답이 없습니다. 자신이 느낀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작가의 의도는 참고 사항이지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전시회 서문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전시회 서문 어떻게 써지는지 알면 깜짝 놀랄껄요. 요즘은 전시회 서문 품앗이도 있다고 하죠. 아니 예전부터 있었죠. 

한국 문화계는 강력한 상호비판금지 조약이 결성된 곳이라서 어딜가나 예술전 하면 칭찬 일색일 것입니다. 그런 덕담 속에 모두 퇴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앞으로 전시회 갈 때 남의 감상을 내 감상으로 느끼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요즘은 백남준 말처럼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이 너무 절실하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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