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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9

고향 기록자. 마동욱 사진가의 <고향의 사계> 사진전 일전에도 이 블로그에 적었지만 사진의 원초적 역할은 기록입니다. 그 뛰어한 재현을 바탕으로 한 기록성 때문에 아카이빙의 시각을 담당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사진의 기록성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합니다. 특히 국가 기관들이 기록에 대한 인식도가 낮아서 흘러간 시절의 사진들을 잘 보관하고 있지 않다가 최근에 기록 사진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록 사진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사진 아카이브 사이트가 열려서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서울시 기록 사진은 온통 서울 시장 동정과 행사만 촬영되어 있더군요. 마치 조선왕조실록 갔더군요.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깨알같이 기록하지만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우리 필부필부들은 누가 기록해 줄까요? 우리가 스스로 기.. 2016. 6. 18.
사진가 마동욱이 담은 전남 장흥의 거대한 앨범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 유년시절과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10대 그리고 군대가기전의 청춘의 꽃봉우리를 지냈던 옛동네. 가끔 그곳에서 뛰어노는 꿈을 꾸곤 합니다. 어렸을때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어 했는데 이제는 어린시절이 그리워 지네요. 그러나 그리워만 할뿐 이제는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서울 대부분이 그렇듯 산비탈에 만들어진 마을은 말끔하게 평탄화 작업을 한후 3동의 작은 아파트가 영화 우주전쟁의 우주선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이사를 간후 한 5년만에 우연히 찾아간 옛동네. 차안에서 바라보던 옛동네를 보다가 언제 한번 카메라로 이곳을 담아야 겠다고 다짐을 했고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핑계 같지만 당시는 필카시대였고 간편하게 사진을 찍지 못했죠. 그런 핑계를 부지런함으로 뛰어 넘었어야 하는데 게으름은 무너.. 2010. 2. 1.
러브호텔이 미술가들의 아틀리에로 변했어요. 처음에는 길이 없었어요. 그냥 교외선을 타고 가는 낭만적인 장소였죠. 그런데 길이 생겼어요. 돈좀 되겠다 싶은 자본들이 마을을 점령하고 러브호텔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정신적인 위로의 장소가 갑자기 육체적 위로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후 사람들의 발길은 줄어 들었어요. 이러다 공멸하겠다고 생각한 시장님은 이곳에 다시 옛명성을 위해 러브호텔 대신에 미술작가들을 모시기 시작하고 러브호텔 두개를 아트리에로 만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경기도 장흥유원지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장흥 토털미술관으로 잘 알라진 장흥, 그러나 최근들어 안좋은 모습으로 다가왔어요. 98년 엄청난 물난리가 있었구 최근에는 러브호텔만 있다는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장흥의 변화를 알게 된것은 어느 책에서 였습니다. 예술가의 방 - 김지은 지음.. 2009. 5. 18.
가장 아름다운 다리를 장흥에서 보다 요즘 다리들 참 예쁘게 잘 꾸며 놓았습니다. 다리에 화분도 달려 있고 자전거도로와 인도등을 함께 설치해서 보행자를 배려한 모습도 많구요. 장흥은 한때 서울도시민들의 추억의 공간이자 맑은 쉼터였습니다. 하지만 러브러브한 모텔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그저그런 향락촌이 되어 버렸고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최근에 장흥아트파크가 리빌딩되어 선보이고 장흥 아트리에들이 들어서면서 문화생태계로 탈 바꿈하고 있습니다. 지금 장흥과 송추는 그 어느지역보다 많은 예술인들의 인큐베이터가 있습니다. 그 예술인들이 그 장흥을 조금씩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장흥아트파크를 들린후 집으로 향할려다가 손에 쥐어진 전단지를 보다가 장흥조각공원이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잠시 들렸다가 장흥 조각가 아트리에를 찾아가고.. 2009. 5. 17.
미술전시장 + 쉼터 같은 장흥아트파크 예전에 덜컹거리는 느린 교외선을 타고 장흥토털미술관으로 나들이 참 많이들 갔습니다. 구파발에서 차로 20분이면 도착하는 이 장흥은 90년대 초만해도 길이 나 있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교외선을 타고 놀러들 갔었구 기차가 먼저 끊기면 버스를 타고 구파발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개발논리로 이곳에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길이 생기자 사람들은 차를 몰고 오기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유흥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수많은 모텔들속에서 낭만은 사라지고 욕망만이 가득했습니다. 결국 교외선은 폐쇄되었구요. 양주시는 이건 아니다 싶다 생각했는지 대대적인 예술부흥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중 하나가 장흥 토털미술관을 장흥아트파크로 2006년 바꾸어 놓았습니다. 입장료는 7천원입니다. 싸다고도 비싸다고 할수 없는 가격이네요. 미술.. 2009. 5. 11.
장흥아트파크에서 본 초콜렛박스속 그림들 15년만에 찾아온 장흥아트파크, 93년 당시에는 장흥조각공원이었습니다. 도착해서 느낀것은 지리적위치만 똑같이 완벽하게 파괴되고 다시 지어진 느낌입니다. 그 93년에 있던 조각들중 남아 있는것은 하나도 없더군요. 그래도 하나라도 있었으면 기준점을 삼고 비교를 할텐데 완벽하게 사라져서 재조립이 아닌 추억에게 퇴거를 명령해야 했습니다. 추억을 덮어쓰기 할려고 왔는데 그냥 새로운 기억창고에 넣어야 겠더군요. 입장료는 8천원입니다. 그런데 인터넷과 다르게 7천원을 받더군요? 왼 횡재야 했지만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아티스트토이전이 하지 않더군요. 내심 기대한 전시회였는데 홈페이지와 다르게 전시를 안하고 있습니다. 관리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곧 할거예요 하더군요. 언제요? 물었더니 조만간 곧~ 이 글을 쓰는 지금은 .. 2009. 5. 11.
장흥아트파크에서 본 종이로된 마이클잭슨 장흥아트파크 안 미술관에는 종이로 만든 마이클 잭슨이 있습니다. 그 80년대 마이클잭슨이 전세계 팝을 지배하던 황제시절 그 모습 그대로요. 장흥아트파크는 초콜렛박스라는 전시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래스트검프의 유명한 대사처럼 초콜렛박스안의 초콜렛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먹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장흥에는 젊은 미술작가들의 둥지가 있습니다. 바로 장흥아트리에인데 이번에 가보니 아트리에가 하나 더 늘어서 3개관이 생겼습니다.(3관은 지금 공사중이예요) 그 작가들의 둥지에 있는 작품 몇점을 장흥아트파크에서 소개하는 전시회가 있습니다. 이 전시회중에 작가 유영운의 마이클잭슨이 있습니다 반짝이는 장갑과 황태자가 입는듯한 옷 그리고 마이클잭슨의 모자와 긴 머리가 마이클잭슨의 황금기를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2009. 5. 11.
추억의 교외선 장흥역에 가다 장흥하면 어디가 떠오르세요. 전라도 장흥이 떠오른다는 분들이 많으실것입니다. 그러나 경기도 장흥을 떠올리는 분도 상당히 많을듯 하네요. 경기도 장흥을 떠올리는 분들은 아마 30대 이상인 분들이 아닐까 하네요. 경기도 장흥은 90년대까지 대학생들 M.T장소로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M.T장소로 유명하긴 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쇠락한 모습입니다. 지금은 자가용족의 데이트코스로 유명해졌습니다. 저는 대학때 대성리와 강촌으로 M.T를 갔습니다. 그리고 장흥은 사진출사때문에 갔었구요. 강촌과 대성리 M.T의 추억은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 추억이란것도 없죠. 새벽어디쯤에서 술먹고 필름이 끊기고 아침에 부시시한 모습으로 강물만 바라봤던 기억만 있네요 그러나 장흥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그때가 93년도 봄 어디쯤이었습니다... 2009. 5. 10.
버스기사님도 인정한 대학 M.T 가 아닌 술.T 오늘 추억에 젖어서 경기도 양주시 장흥유원지를 갔다 왔습니다. 18년 만이네요. 92년, 93년 사진동아리 출사지로 제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간 장흥 유원지 출사, 그 출사지의 추억은 아직도 부패되지 않고 활어처럼 내 머리속에 뛰어 놉니다. 서울 이대앞 신촌 기자옆에서 덜컹거리는 통조림같은 교외선을 타고 간 장흥유원지, 그곳에서 추억에 젖어서 추억의 책갈피를 뒤적이다가 완벽하게 사라진 옛모습에 허탈한 마음과 말끔하게 바뀐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곳에서 저녁해가 어스름한 구름속에 사라짐에 철수했습니다. 경기도는 서울과 대중교통 시스템이 좀 많이 다릅니다. 서울은 10분에 한대씩 오는 버스가 줄기차게 서울시민을 실어 나르지만 경기도로 나가면 보통 20분에 한대씩 옵니다. 거기에 마을버스는 수요량에 따.. 2009.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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