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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5

명성황후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역사해설가를 혼을 낸 관람객 퀴즈 하나 내볼까요? 명성황후가 맞을까요? 민비가 맞을까요? 하나 더 내보죠. 민비가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낮추 부르기 위해서 만든 말일까요? 정답은 민비도, 명성황후도 다 맞다 이고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낮춰 부르기 위해서 민비라고 부른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80년대 고등학교를 다닌 저는 국사시간에 분명히 민비라고 교육을 받았고 민비를 그렇게 좋은 인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민비가 행한 일들을 보면 결코 나라를 위한다거나 구국의 모습을 보였다기 보다는 19세기말 팽팽한 국제정세를 잘 이용했던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미연이 이 민비의 모습을 다 바꿔놓았죠. 드라마 하나가 민비를 명성황후라고 바뀌게 만들었고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명대사를 만듭니다. 정.. 2010. 9. 22.
명성황후의 사진이 없는 이유 위클리 경향에서 프랑스에서 발간된 월간지 〈피가로 일루스트레〉 1893년 10월호에 조선의 황후라고 소개하면서 올라온 사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니 명성황후의 사진의 진위여부는 알수 없다고 뜨뜨미지근하게 맺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명성황후의 사진들. 그 사진들 대부분 가짜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궁녀사진을 여러 해외언론들이 마치 조선의 왕후인양 보도하고 전파되었지만 정작 정확한 명성황후의 사진은 아직까지 밝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 명성황후사진은 그렇게 찾아도 없을까요? 사진이 없던 시절이어서요? 아니죠. 사진은 명성황후가 있던 시절에 발명되고 한참후였고 고종같은 경우는 사진찍는것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구글 이미지 검색해보세요. 얼마나 많은 고종사진이 나오는지요. 이렇게 고종.. 2010. 5. 27.
억지 춘양식의 스토리에 짜증났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한때는 고종을 주체의식이 없는 힘없고 병약한 인물로 역사책에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종이 이리저리 조선의 살 궁리를 모색했던 점을 높이사서 고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명성황후의 재평가 작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인 평가와 달리 언젠가부터 명성황후는 조선의 국모가 되었습니다. 이게 다 이미연(?) 때문이죠. 내가 조선의 국모다! 라는 명대사 하나로 언젠가부터 명성황후가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4위에 오르는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그렇게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일본 낭인들에게 처참하게 죽었다는 이 죽음의 코드가 명성황후의 생을 미화시키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드라마나 뮤지컬등은 명성황후를 역사적 사실 이상으로 미화시.. 2009. 9. 25.
영화와 드라마가 왜곡시킨 명성황후, 과연 조선의 국모가 맞나? 요즘 매주 월,화가 되면 어김없이 챙겨보는 드라마가 선덕여왕입니다. 워낙 각색을 많이해서 역사드라마라기보다는 판타지드라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적사실을 기본으로 하여 소설적 상상력을 첨가한건데 주음식인 원래의 맛은 사라지고 온갖 조미료와 향신료맛만 가득합니다. 재미는 물론있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많이 틀어진 모습이죠. 미실이 그렇게 악녀였을까? 하는 생각마져 듭니다. 뭐 같은 사건도 그걸 담는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소설 미실과 드라마 선덕여왕은 180도 다르게 그려집니다. 문제는 이런 드라마를 보고 역사를 배우는 학생 혹은 역사를 배웠어도 드라마의 각인효과에 의해 성인마져도 역사적 사실을 잊은채 왜곡된 이미지가 머리속에 자리잡을까봐 걱정아닌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드라마와 영화가 역사의.. 2009. 9. 12.
운현궁의봄 2편 여기는 이로당으로 대원군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가 운형궁의 살림을 맡아서 하는곳이다. 명성후 민비도 이곳에서 궁중법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지금의 민비에 대한 평가는 국모라 칭할정도로 융숭하다. 이부분에 대한 평가는 다시 이루어져야한다. 이미연과 오페라 명성황후가 거의 국모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과연 국모스런 행동이었을까? 자신의 친인척을 대거 관직에 올리게하고 자신을 키우고 가르치고 했던 대원군과 싸우질 않나. 결국 임오군란이란 구식군졸들에게 쿠테타를 일으키게하게 하고 결국 뒤도안보고 도망가지 않았나. 친일파의 세력을 보듬어주고 키우고 가까이 하다가 청의 세력을 끌어들여서 대원군을 유배보내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지만 명성황후가 과연 국모의 수준까지의 인격과 품위를 가지고.. 2007.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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