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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9

구로공단을 기록하고 기념한 G밸리산업박물관 방문기 구로공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뭘까요? 한국을 먹여 살리던 거대한 공단지역이고 제조 강국의 밑거름이 된 거대한 공단이지만 당시에는 공순이, 공돌이라는 폄하하는 단어로 많이 불렸습니다. 돌아보면 70년대 80년대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막말의 시대이자 폭력의 시대가 아녔을까 할 정도로 사회 전체가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 공장 노동자 덕분에 먹고 사는 걸 감사해하지 못할 망정 왜 폄하합니까? 군바리라는 단어도 그래요. 왜 고생하고 희생하는 분들에게 폄하를 해요. 지금 같으면 바로 욕먹죠. 그만큼 사회가 성숙해졌다고 느껴지지만 최근 남녀 젠더 갈등을 보면 혐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느낌이 드네요. 공장 노동자들을 잘 압니다. 제가 사는 집의 셋방에 살던 누나들도 구로공단에서 근무하던 누나들이었.. 2022. 2. 25.
위로공단, 성실한 나라 여공들의 삶을 추적한 빼어난 다큐 "저는 성실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박근혜의 말에 깜짝 놀랐어요"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했지만 성공과는 멀어 보여요" 80년대에 구로공단 여공이었던 중년의 아줌마는 자신의 지난 과거를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성실한 나라의 여공들의 삶을 재조명한 영화 '위로공단' 영화 '위로공단'은 미술가 임흥순이 만든 다큐로 베니스 영화제가 아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합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화가 은사자상을 수상한 것을 처음이라고 하네요. 이 수상도 수상이지만 제가 평소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로공단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쭉 지켜보고 있다가 뒤늦게 시간이 나서 보게 되었습니다. 다큐가 시작되면 재봉틀 소리가 들리고 캄보디아의 유적지가 펼쳐집니다. 조용한 숲 속에 숨 쉬고 있는 듯한.. 2015. 8. 26.
노동자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구로공단 과거와 현재의 사진전 가산디지털단지가 구로공단인 시절부터 근처에 살았습니다. 근처에 살았다고 구로공단을 들어가 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딱 한 번 구로공단 안으로 들어갔다가 묘한 풍경에 화들짝 놀라서 나온 기억이 있네요. 그때가 90년대 초였습니다. 대학교 여름 방학 때 친구와 알바 자리를 찾기 위해서 벼룩시장을 뒤적이다가 구로공단 근처에 알바자리가 있어서 친구와 걸어 갔습니다.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구로공단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연잖게 들어간 구로공단은 고요했습니다. 정말 고양이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고 모든 거리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가 평일 낮시간대라서 그렇겠지만 아무도 없는 거리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그때 알았죠. 여기가 공단이구나. 공장만 가득한 곳, 기계의 부속품 또는 또 하나의 학교 같은 공장이 가.. 2015. 6. 29.
한국의 엔진이었던 구로공단에 대한 이야기 서울역사박물관의 가리봉오거리 전시회 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첨한 전쟁 중 하나였던 한국전쟁 후 나라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유엔과 미국의 원조로 겨우 겨우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무능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자신의 장기 집권에만 집중하고 나라 경제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한국의 경제발전이 북한을 막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웁니다. 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원래 계획대로하면 제2공화국인 민주당에서 시작하려고 했느나 1년 짜리 정권이었던 제2공화국은 썬글라스끼고 탱크를 몰고온 박정희 소장에 의해서 무너집니다. 이후 박정희 소장은 대통령이 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거대한 폭풍 성장을 합니다. 마치 성장판 열린 청소년.. 2015. 5. 8.
구로공단 여공들의 삶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구로공단노동자 생활체험관' 집근처에 있는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를 자전거를 타고 가끔 갑니다. 가면 금천구나 구로구답지 않은 거대한 빌딩숲을 보면서 약간의 현기증도 느껴집니다. 저 거대한 빌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도 함께 거대한 빌딩의 이질감과 그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에 대한 이질감도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두 디지털단지에서 근무하는 사람 대부분은 지역주민이 아닌 외지인들이기 떄문입니다. 금천구민도 구로구민 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살면서 출퇴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가산디지털단지는 섬과 같아 보입니다. 일만하는 섬, 아니 구로공단의 21세기 버젼이죠. 외형적으로는 큰 성장과 깨끗한 건물을 보면서 공단의 이미지는 완벽하게 사라졌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은 21세기 공순이, 공돌이 같은 느낌도듭니다... 2013. 5. 8.
한국의 아웃사이더들을 돌아보게한 '국외자가 국외자들을 본다/ 1년에 한두 번 정도의 전시회를 하는 줄 알았고 그래서 10월인가 11월인가에 한 전시회를 본 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연달아서 전시회를 또 하나 했네요 집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걸어서 갈 수 있는 유일한 전시장인 금천예술공장에 지난 일요일 다시 찾았습니다. 전시회명은 '국외자가 국외자들을 본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또 다른 국외자인 국외 예술가들이 관찰해서 담은 전시회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목과는 좀 다른 전시회네요. 전시회 제목 보다는 형용어인 '도시문제 리서치 전시'가 더 와닿는 전시제목이네요 한 사물에 대한 이야기들 전시는 이전 처럼 창고동과 3층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창고동에 들어가니 일본 작가 카즈야 타카가와의 작품이 선보입니다. 한 사물에 대한 이야기들은 .. 2011. 12. 13.
구로공단에서 구로디지털단지로 이름만 바뀌고 삶은 바뀌지 않은 씁쓸한 풍경 그게 본능인가 봅니다. 여자들도 그러겠지만 남자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그 사람이 나 보다 위인가 아래인가를 대충 가늠합니다. 그 가늠이 불가능 할때는 '어디서 오셨나요?'라고 물어 봅니다. 이런 물음은 특히 공무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장인데요. 좀 꼬치꼬치 캐 물으면 어디서 전화하셨나요? 어디서 오셨나요? 라고 물어보죠 아니 내가 누구냐가 왜 중요합니까? 내가 대통령이면 뭐 답변이 달라지나요? '공돌이', '공순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형 누나들을 공돌이 공순이라는 폄하적인 단어로 불렀죠. 전 그 말에 이해가 안갔습니다. 공순이 공돌이가 뭐가 어때서요. 아니 좀 화가 나더군요. 저 형들 누나들 공장에서 일해서 그 어렵게 번 돈으로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에게 돈 붙여주고 아니면 동생 .. 2011. 12. 9.
지상에만 사람이 사는게 아니다. 2호선 구로공단밑의 도림천입니다. 도심의 하천들이 의례 그렇듯이 시멘트로 바닥을 다져 놓았습니다. 거기에 비도 안와서 물도 없습니다. 여름이나 비가 와야 저곳에 물이 흐릅니다. 물은 꺠긋한 물이 아닌 생활하수와 거리의 쓰레기들을 싣고 지나가서 냄새가 좋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이곳에 자전거 도로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비행청소년들도 많구요. 제가 내려간 이 날도 10대로 보이는 아이들이 컵라면을 먹고 있더군요. 행색을 보니 가출 청소년같아 보이더군요. 지상에서 분주한 발걸음들이 울리지만 그 밑에 내려온 공간은 너무나 조용합니다. 이 기괴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찾았습니다. 지하도 아닌 그렇다고 지하도 아닌 이곳 물이 흐르는 하천이었다면 시민들의 쉼터가 될수 있었지만 인공.. 2008. 4. 19.
구로공단이 아닙니다. 이젠 구로디지털단지입니다. 구로공단하면 뭐가 떠 오르시나요? 머리에 스카프쓴 여공들이 가발을 만드는 모습이나 전자부품을 하나씩 꽂아가면서 TV나 라디오를 생산하는 모습인가요? 신경숙씨의 소설 외딴방에 보면 70,80년대의 구로공단에서의 여공의 삶이 나옵니다. 실제로 작가가 영등포여상 야간반을 다니면서 낮에는 공장에서 일했던 여공이었습니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가 신경숙씨의 지난날이 마치 내일처럼 느껴지더군요. 신경숙씨의 소설을 무척좋아하는 나이기도 하지만 제가 살던 곳이 구로공단 근처였습니다. 처음 술을 배운곳도 구로공단이었죠. 90년대 초였죠. 반이상이 재수생 반정도가 대학생 우리 친구들은 그렇게 다시 모임을 이어갔구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파는곳은 없었습니다. (대학생인데 미성년자라 ㅎㅎ) 그러나 구로공단은 달랐습니다. 거긴 .. 2008.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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