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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7

페인트든 계란 맞고도 태연한 클린턴. 한국이었다면 구속감 힐러리 클린턴이 필리핀에서 페인트가 든 계란을 맞았습니다. 옷에 맞은게 아닌 경호차량에 맞았지만 세계의 갑이라는 미국의 국무장관이 외국에서 당한 일 치고는 아주 큰 사건아닌 사건이네요. 힐러리 클린턴은 필리핀에과 미군 부대와 군함이 필요에 따라 필리핀 영토에 드나들 수 있는 주둔군지위협정(VFA)를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협의한 뒤 이동중이었습니다. 보닛과 앞 유리창에 페인트 공격을 받았습니다. 약 60명의 좌익성향의 시위대가 힐러리 차량을 막아서고 페인트가 든 풍선을 던지면서 "쓰레기 같은 미 제국주의"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의 80년대가 저랬죠. 미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미문화관에 불을 지르고 점거하기도 했고요 뭐 지금의 한국은 미국 항모 한번 모셔오기 위해 돈을 쓸 정도가 된 미군님이 언제든지 한국영.. 2011. 11. 18.
KBS괴담. 진보성향 연예인을 처단해라. 개그맨중에서 유일하게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김미화씨입니다. 80년대 음메~~ 기죽어 음메~~ 기살어라는 길창덕 화백의 만화 순악질여사를 그대로 코메디화 해서 대히트를 치게 됩니다. 요즘 젊은 개그맨들은 모두 김미화씨를 크게 우러려 봅니다. 개그계의 대모이기도 하고 항상 후배를 잘 보살피죠. KBS의 간판 개그프로그램이자 장수 인기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도 김미화의 아이디어에서 나온것 입니다. 초창기 개그콘서트에서 김미화의 역활은 실로 컸죠. 지금은 개그프로그램보다는 시사라디오DJ와 나레이터로 더 유명해졌지만 그녀의 웃음끼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김미화씨를 세상은 좌파연예인이라고 합니다. 정확하게는 진보성향의 연예인이죠. 그러나 그녀가 진보성향을 띄게 된것은 스스로 그렇게 변했다기 보다는 세상이 김미.. 2010. 7. 6.
이명박 대통령을 흉내내는 개그맨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때는 감히 개그맨이나 코메디언이 대통령 흉내를 낼수 없었습니다. 흉내냈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남산 밑 건물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사회 자체가 참으로 경직된 사회였습니다. 대통령은 임금에 비유되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후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대는 더했죠. 탤런트 박용식씨는 어느날 갑자기 TV브라운관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려졌죠. 전두환 대통령과 너무 닮아서 방송정지 시켰다구요. 전두환 전 대통령은 스포츠 광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민화 정책이라는 3S중 스포츠와 섹스를 한국에 적용시킵니다. 프로축구,야구 다 전두환 정권때 만들어집니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첫해 시구를 한 전두환 전 대통령, 그러나 번쩍이는 머리가 남세스러웠는지 카메라 각도까지 지시했다고 하네요. 대머.. 2009. 6. 18.
잘 웃지 않던 음악가 이영훈을 웃게 만든 개그맨들 작곡,작사가 이영훈은 이문세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곡가입니다. 대장암으로 2008년 2월에 돌아가신 이분이 평소에 썼던 일기와 메모를 추려서 만든 책이 광화문연가입니다. 이 아트북 2007년 5월 15일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아내분이 쓴글인데요 그가 웃었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개그 프로그램이 그를 웃게 했다. 웃음이 부쩍 줄어든 그를 웃을 수 잇게 만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도 텔레비젼을 보고 웃는구나. 나도 덜달아 웃엇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를 웃게 만들어 준 그들에게 그 3명은 오정태, 정성호, 신동수입니다. 이영훈을 웃게 만든것은 가장 존재감없고 애국가 시청률보다 낫다는 개그야입니다. MBC개그맨으로 산다는 것은 참 곤혹스러울것입니다. 자기 밥그릇 타 방송국 .. 2009. 3. 30.
유명 개그맨 10명이 대한민국 국민 전체을 웃기는 현실 나를 웃기게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주변의 친구들이나 지인 회사동료직원들 웃기는 사람들은 많죠. 같은 공기를 쉬면서 직접 만남을 통해 서로를 자극하고 반응을 보며 쌍방향으로 이야기 하면서 얻는 웃음 참 편하고 따뜻한웃음들입니다. 또한 그 웃음들은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됩니다. 하지만 또 한 부류의 웃음을 주는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TV입니다. 낮에 회사나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편안한복장으로 세상최고의 퍼진 모습으로 보게되는 한밤과 주말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을 지켜보면 10여명의 개그맨출신 진행자들이 나와서 대한민국을 웃기고 울리는 모습입니다. 물론 개그맨이 아닌 가수도 있구 탤런트, 영화배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이 되는 진행자들을 보면 다들 개그맨들.. 2008. 9. 27.
개그맨 박명수가 거성이 되기까지 거성 박명수 자기스스로 신격화 시키는 개그맨 하지만 그는 적어도 나에겐 거성이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난건 93년도 였을거다. 그때 한참 줏가를 날리던 방송인 일요일 일요일밤에서 혹은 MBC 코미디 프로에서 아주 보잘것 없는 역들로 방송에 얼굴을 내민다. 그렇게 웃기지는 않지만 그의 작은 눈과 이승철 모창하나만으로 여기저기 방송에 나오게 되었구 그때 김학도씨랑 많이 활동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인기스타는 이휘재씨같은 핸섬한 코미디언과 이었다. 근근히 나오던 박명수 그저 그런 개그맨이었다. 잊혀질만하면 가끔나와서 방송을 하던 그.. 우이씨~~~ 라는 이상한 유행어만 만들던 그 그를 다시 발견하게 된것은 라디오였을것이다. 개그맨 박명수를 TV에서 본사람은 잘 모를것이다. 그는 라디오에서 황제급 게스트였구 그가 .. 2007. 9. 1.
심형래의 코메디에 관한 단상 이글은 디워의 심형래감독의 글이 아님을 명시합니다 개그맨 심형래 개그라는 단어가 희미하던 80년대 초반 코미디언과 울고 웃던 국민들은 개그맨이란 단어로 명칭대는 새로운 물결을 만나게 된다. 주로 만담이나 슬랩스틱 코메디가 대부분이었던 60,70년대에 80년대 개그맨이란 단어를 만든 전유성과 심형래, 이봉원, 김학래, 이홍렬, 주병진등등 신진 개그맨들은 슬랩스틱과 말장난식 콩트를 주로하는 개그맨이었다. 그 당시 폭소대작전과 유머일번지, 쇼비디오자키는 개그맨들의 요람이었다. 그 개그맨중에 심형래씨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그가 연기한 드라마 여로의 코미디버젼 에서 영구역활을 한 심형래씨는 가히 그 시대의 영웅이었다. 아직도 표정연기의 대가이자 슬랩스틱의 대가인 심형래씨 그 영구말고도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많았.. 2007.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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