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바라는 건 과거 반성을 통한 폭력이 사라진 평화의 세상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얕은 나무는 강한 바람에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풍이 불면 아카시아 나무는 잘 쓰러집니다. 한강이라는 거대한 물이 들어왔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사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책의 시대인 80,90년대에나 보던 풍경입니다.
자기 계발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아동학습용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조금만 많이 사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이 안 팔리는 2024년에 줄을 서서 한강의 책을 사는 풍경은 놀랍기만 하네요. 하지만 전 이런 풍경이 놀랍지만 동시에 순간의 거품이라고 느껴집니다.
과거를 기록하는 한강 작가
전 '채식주의자'라는 책이 있지만 제 취향에 맞지 않아서 좀 읽다 말았고 '소년이 온다'는 처음 몇 장 넘기면서 이 작가가 상당히 강한 표현력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좀 쉬엄쉬엄 읽어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강 작가는 시대의 기록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염세주의자로 세상에 대한 기대나 희망을 크게 가지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여러 전쟁이 나고 있는데 무슨 축제냐고 하는 태도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폭력에 대한 깊은 혐오감이 가득한 작가이기도 하죠. '채식주의자'에서 가족들이 채식을 원하는 주인공에게 탕수육을 욱여넣는 장면을 통해서 생활 속의 폭력을 넘어서 '소년이 온다'는 5.18을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 4.3 항쟁이라는 국가가 가한 폭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2년 겨울에 발표한 아들에게 보내는 시인 '효에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아들이 먹을 것을 토할 정도로 기침이 심해서 엄마에 기대지만 엄마는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라는 걸,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이라는 대목을 통해서 상당히 소극적이지만 누구보다 평온과 평화를 갈망하는 작가라는 걸 잘 알 수 있습니다.
스웨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는 말에서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 시끄럽죠. 자기주장을 내면에서만 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분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게 거리에 나와서 하기도 하고 댓글로 SNS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소음이 너무 심한 세상이죠. 그래서 나무가 전 요즘 너무 좋습니다. 동물은 온기가 있지만 동시에 에너지가 많이 소비됩니다. 평온한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고 싶으면 식물이 좋고 전 그래서 식집사가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한강 작가의 심성과 제가 참 비슷합니다.
염세적인 모습도 참 비슷합니다. 세상에 대한 환멸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5.18 광주민주화 항쟁과 제주 4.3 사건 때문입니다.
한강작가는 말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울 기회가 많았는데 끔찍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 언젠가는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7년이나 걸린 긴 시간을 걸쳐서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썼고 계속 글을 쓰겠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했습니다.
5공 청문회 때보다 더 못한 2024년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5.18, 4,3이라는 과거
세종도서를 발굴해서 좋은 책을 보급하는 사업을 하는 공기업 같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고 적었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판문화를 오히려 방해한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평은 좋지 못합니다. 독서율을 현격하게 떨어뜨린 '도서정가제'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곳이 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소비자와 반하는 행동을 참 많이 하는 곳입니다.
여기는 2014년 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한강 작가 작품을 '도서의 사상적 편향성에 대해 검토하였음'이라는 코멘트를 달고 세종도서에서 탈락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냥 화자가 5.18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한 중학생을 목격하는 형태로 담은 소설이지 이게 왜 사상적 편향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5.18 민주화 항쟁이 없던 일도 아니고 그 사건만 다루면 다 사상적 편향입니까? 오로지 내세울 건 반공밖에 없는 빈약한 한국 극우 보수 정권의 편협하고 졸렬한 시선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까지 닿았습니다.
그래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봉준호, 박찬욱,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소설가 한강 모두 세계적인 상을 받거나 인기를 얻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극우들이 싫어하면 큰 상을 받는 기이한 현상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5.18이 그렇게 불편하다는 건 어느 정도 감이라도 잡지 '흰'은 정치적인 소재도 장소도 거론하지 않고 시집까지 세종도서에서 탈락 시킨 것은 확실히 한강 작가 자체를 저격한 시선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자체가 폭력입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고 시선이 다르다고 특정인을 찍어 누르는 건 국가의 폭력이죠.
이게 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의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한강 작가가 그럼에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습니다. 돌아보면 1980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긴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전쟁이 나는 건 아닌가 하고 어린 나는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나이가 어리면 모든 것이 새롭고 그 새로운 것이 설레기도 하지만 공포스럽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알았죠. 그게 북한이 쳐들어온 것이 아닌 대한민국 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라는 것을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1988년 5공 청문회 때였습니다. 헬기로 기총소사를 했느냐 안 했느냐로 다투던 그 시절에는 온 국민이 분노했습니다. 왜 40,50대들이 현재의 20,30대보다 더 진보적인지 아세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라는 군사 정권을 겪으면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을 겪어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20,30대들과 가끔 대화하다 보면 제 아버지 세대인 60~70대 노인들과 이야기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기본 태도가 보수적입니다.
정작 치열하게 싸워서 만든 민주주의 혜택은 다 받으면서 자신들의 자체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보수적인 생각에 미래는 밝아지긴 어렵겠구나 느끼게 되네요. 그래서 더 염세적으로 변한 것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5.18과 4.3에 대한 시선입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안 가르치고 일베, 펨코 같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 세상을 배우다 보니 삐뚫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보네요. 참혹스럽습니다. 아픈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인간사인데 우리는 그런 인간의 순리를 역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르게 가기 위해서 아픈 과거를 재조명한 것이 한강 작가입니다. 저는 이 책 자체보다는 한강 작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기억하고 그 기억을 기록하는 태도가 너무 좋습니다. 이게 작가의 소명의식이라면 소명의식이겠죠. 노벨문학상을 통해서 5.18과 4.3 사건을 제대로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게 한강 작가가 가장 바라는 일이 아닐까 하네요. 그래서 그럼에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 현재의 한강 작가가 그럼에도 세상은 변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을 바꾸게 했으면 하지만 저도 한강 작가와 동일합니다. 그럼에도 안 변할 세상입니다. 이미 그런 세상이 되어버리고 고착화 되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