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책서평

소설가 한강의 데뷔 소설집 여수의 사랑 그리고 노벨문학상

썬도그 2024. 10. 11. 10:04
반응형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을 때도 전율이 일었지만 그보다 1.5배는 더 강한 소름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기생충>도 엄청난 일이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내 평생 단 한번 경험해 볼 기적이지만 어느 정도 군불을 지피고 있던 터라 감독상까지는 어찌어찌해 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탈 수 있었을 겁니다. 부커상을 받았다는 건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소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국내 언론 및 해외 언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터졌습니다. 바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다들 한강 작가 책을 꺼내면서 한강 부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미리 밝히지만 작가 한강의 열렬한 팬은 아닙니다. 다만 이 작가의 데뷔작을 군대에서 읽었고 그때의 감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소설가 한강의 데뷔 소설집 여수의 사랑

1993년인지 1994년인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당시 공군 군복무가 무려 30개월이었습니다. 너무 길어서 나보다 한 달 늦게 육군에 입대한 친구가 나 놀리려고 먼저 전역 후에 면회를 와서 짜증이 났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그러나 공군이 육군보다는 좋았습니다. 공군은 부대마다 기지서점이 있었고 도서관이 있어서 책 읽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병장 월금 1만 원 조금 넘던 그 시절에도 돈을 털어서 소설책을 꽤 많이 사 봤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중 하나가 <여수의 사랑>이었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입니다. 환경에 잘 적응하기도 하지만 그 환경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문학 소설과 문화계간지를 알게 된 건 군대 고참 덕분입니다. 공군은 책 읽을 시간도 많고 점호 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저도 점호 마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당시 이별이라는 처음 경험한 엄청난 고통을 달랠 방법이 없었는데 절 구원해 준 건 소설과 철학책이었습니다. 여기에 고참이 천문학과 다니다 입대했는데 문학청년이었습니다. 매번 문학동네와 여러 문예 계간지를 우편으로 받아 보기에 몇 권 빌려 봤습니다. 그때부터 소설 읽는 훈련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좋아했던 소설가들은 공교롭게도 여성 소설가들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소설가는 '신경숙'으로 <풍금이 있던 자리>를 시작으로 <깊은 슬픔> 등등 신간 나오는 족족 다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무장 난로가에서 새벽에 근무 서면서 소설과 함께한 1994년 그 늦은 겨울밤은 내 기억에서는 행복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읽었던 책이 <여수의 사랑>입니다. <여수의 사랑>은 아주 달콤한 기억으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은  뭐가 자꾸 돌아보게 하고 마음에 보푸라기를 나게 하게 합니다. 

 

<여수의 사랑>은 여러 단편 소설의 모음집입니다. 따라서 단편 소설의 묶음이라서 쉽게 읽힐 겁니다. 특히 <여수의 사랑>은 한강 소설의 입문하기에 아주 좋은 소설입니다. 

 

시를 쓰던 작가의 습속 때문인지 소설이지만 시적인 한강 작가의 소설 세계

소설가 한강의 데뷔 소설집 여수의 사랑

<여수의 사랑>에는 총 6편의 소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중 <여수의 사랑>은 길이감이 좀 있는 중편 소설입니다. 소설에는 2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정선은 고향인 여수로 돌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여수라는 공간은 정선에게 있어서 잊고 싶은 끔찍한 과거가 있는 곳입니다. 정선은 여수에서 함께 지낼 동거인을 찾게 됩니다. 이때 자흔이 동거인으로 참여하게 되고 둘은 함께 지냅니다. 

 

둘의 성격은 너무 다릅니다. 정선은 섬세하고 작은 떨림에도 큰 요동을 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자흔은 털털함 그 자체입니다. 쾌활하고 활달하고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자흔도 상처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여수역에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여수가 고향인지도 모릅니다. 자흔도 상처가 있습니다. 여수에서 태어났지만 끔찍스러운 기억 때문에 여수를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두 여자는 여수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는데 정선은 결벽증에 히스테리까지 주변에 방사합니다. 결국 자흔조차 밀어내 버리는 정선. 그렇게 자흔이 떠난 공간에서 정선은 드디어 자신의 끔찍한 과거에 마주 서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 자체가 엄청나게 재미있거나 놀랍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수라는 공간에서 두 여자의 상처를 통해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넌지시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나 그렇게 게워내야 또 새로운 살이 돋아난다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아직도 기억하는 건 시를 썼던 작가라서 그런지 시적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한림원 사무총장도 "그녀의 강렬한 시적 산문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이 문장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얼마나 현란한 언어 구사력을 가졌는지를요. 물론 이런 것도 훈련하면 됩니다. 지금 제 책장을 보니 소설책은 거의 없고 대부분 지식 고향, 경제, 사회과학 책들이 참 많네요. 그러나 군대에서는 소설책만 엄청 읽었습니다. 이유는 사회과학책이 지식 교양 책이 제 상처를 달래주지는 못합니다. 

 

또 다른 상처 입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 절 치유해 주었으니까요. 동질감. 나 말고 세상에는 사랑으로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받고 사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 소설 특히 문학 소설의 장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미려한 표현력도 문인 집안에서 자란 한강 작가의 복이라면 큰 복이겠죠. 

 

그런 면에서 저는 독학으로 소설가가 된 구로공단 여공 출신의 신경숙 작가의 삶이 더 좋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한강 작가의 복을 비난하고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축복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도 과실이 되지 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한강 작가는 이후 한참 지나서 EBS에서 자주 봤습니다. 소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매주 나와서 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말을 너무 차근차근하게 해서 천상 작가구나 할 정도로 말을 함부로 하지도 않고 잘 정돈된 말을 실타래를 풀어내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힘이 좋은 작가구나 했었네요. 

 

지적 허영이라도 좋다. 한글로 글을 쓰는 한강 작가를 접하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고백하자면 집에 한강 작가의 책이 몇 권 있습니다. 2005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몽고반점도 있고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을 그린 <채식주의자>도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이북으로 있습니다. 최근 한강작가의 작품을 보면 폭력에 대한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책을 잘 내는 듯하네요. 

 

고백하자면 이 책 모두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구매한 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읽어볼까 합니다. 지적 허영이라고 좋습니다. 한강 소설을 통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봤으면 하네요. <소년이 온다>가 5.18 광주민주화 항쟁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한강. 

 

아직도 제주 4.3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극우주의자들이 강제로 읽어봤으면 하는 소설입니다. 지적 허영이라고 지적해도 좋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미려한 글과 문제의식을 통해서 오늘보다 더 나아진 내일의 나를 만드는 가을이 되었으면 하네요

소설가 한강의 데뷔 소설집 여수의 사랑

다시 한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정말 내 평생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줄은 몰랐네요. 고은 시인 이후로는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대단한 결과입니다. 이후 한국 문학들이 부흥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면 하네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