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세상에 분노와 혐오와 갈등이 증가하는 이유
돌아보면 인터넷이 막 태동하던 1990년 후반인 그때가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막 pc방이 생기고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시절 디씨가 혐오와 갈등 공장이 되지 않았던 초창기 인터넷 시절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당시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소수여서 선민의식이 있었고 좋은 정보들과 좋은 말들이 오고 가던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2023년 지금은 인터넷을 오래 할수록 사람 성격이 파탄난다고 느껴질 정도로 인터넷 뉴스 댓글과 대형 커뮤니티는 온갖 혐오와 갈등과 분노가 가득한 감정의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그래서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SNS를 줄이는 것이 좋다는 조언들이 와닿는 요즘입니다. 특히 뉴스 댓글 보다가 화병 걸립니다.
극심한 갈등국가가 된 한국
평소에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에서 한국의 극심한 남녀갈등에 대해서 말하던데 그 내용이 기가 찹니다. 최근 넥슨이 남성 혐오 논란이 퍼졌는데 이 뉴스를 보면서 어떻게 나라가 이렇게까지 극심하게 갈라 치기 당했나 할 정도로 한숨만 나오네요. 차마 거론하기도 짜증 나는 이유로 남녀가 갈라서서 싸우고 있네요.
Ipos 2021년 글로벌 주요 28개국 조사에서 한국이 남녀 갈등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80%였습니다. 2위가 중국으로 63%, 미국이 53%였습니다. 이 정도면 사회 문제로 다루어야 하고 실제로 다루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녀 갈등이 심한 이유를 20대 들에게 물어보니 대다수는 아무 생각 없는데 극단주위자들의 목소리가 커서 전체 목소리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하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갑니다. 요즘은 극단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정상이라는 몰상식한 짓들을 많이 해서 세상이 더 시끄러워진 것도 있습니다.
필터버블 때문이라고 합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혐오와 증오가 늘었다고 합니다. 일견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평소에 즐겨보는 Kurzgesagt에서 왜 인터넷은 이전보다 더 나빠졌는가라는 동영상을 보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점이 꽤 풀렸습니다. 여기에 제 의견을 더해서 소개하겠습니다.
필터버블로 내가 듣기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다
사람마다 이름이 다르듯 경험과 식견과 가치관이 다 다릅니다. 따라서 같은 영화를 봐도 감상평이 천차만별이죠. 그래서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를 누군가는 재미없게 볼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재미없게 본 영화를 누군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보는 시선이 다른겁니다. 감상에는 정답이 없거든요.
그러나 이걸 알면서도 저도 가끔 나와 다른 영화 감상평을 보면 화가 날때가 있습니다. 이게 이율배반적인 태도일까요? 이 이야기는 밑에서 다시 하죠. 먼저 이렇게 나와 다른 의견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도구가 나왔는데 그게 바로 SNS입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로 대변되는 SNS는 좋아요와 싫어요 화나요 등으로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그걸 넘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언론사, 사람, 기관, 단체 등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언론사별로 구독할 수 있는데 진보 성향인 사람들은 진보 성향 언론사 뉴스만 구독하고 보수 성향 언론사 뉴스만 구독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걸 '필터 버블'이라고 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 정보 필터 현상을 '필터 버블'이라고 합니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죠. 정보 필터링 없이 그냥 다양한 뉴스를 포털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 뉴스를 같이 노출시켰습니다. 그러나 포털도 특히 SNS는 같은 편이라고 하는 같은 정치성향, 같은 취향 같은 생각을 가진 글들만 볼 수 있게 되다 보니 정보 편향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정보 제공 방식은 같은 소재의 뉴스를 진보, 보수, 중도로 표시해서 묶어서 노출시키는 겁니다. 그럼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진보, 보수, 중도의 시선을 모두 살펴보고 이중 가장 설득력 있는 걸 고르면 됩니다. 사람은 성향이 있지만 같은 뉴스도 어떤 뉴스는 보수의 시선이 나에게 더 맞고 어떤 뉴스는 진보의 시선이 나에게 더 맞고는 하거든요. 한국 언론들의 문제점은 중간이 없습니다. 시선이 하나로 고정되어서 진보 언론은 A부터 Z까지 진보의 시선을 담습니다. 그래야 진보 성향 독자들이 구독하고 돈을 지불하니까요. 보수도 마찬가지고요.
요즘은 오히려 언론사들이 더 극단적인 시선을 넣어서 조회수 올리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런데 Kurzgesagt에서는 이 필터 버블이 최근 극단주의가 점령한 인터넷 세상을 만든 주요 원인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요 원인은 우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 갈등이 적었던 이유와 인터넷 이후 갈등이 심해진 이유
돌아보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 지방 가려면 당일엔 못 오고 1박 2일 걸리던 그 시절에는 동네라는 개념이 확실했습니다. 동네 또는 마을이라는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요? 나와 다른 의견과 생각과 삶을 가진 사람들이 그냥 물리적 위치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공동체를 만들어서 삽니다.
마을에는 다양한 생각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살죠. 당연히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도 같이 삽니다. 그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치 성향이 다른 걸 알게 되면 서로 불쾌해합니다. 그러나 그걸 드러내진 않죠. 아니면 서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주 볼 얼굴인데 서로 인정하면 간편하니까요. 아니면 나와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아예 그 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안 하게 되죠. 실제로 제 친구 모임에서 한 번은 정치 이야기 꺼냈다가 험한 말이 오가게 되자 이후 서로 정치 이야기는 피하게 되더라고요. 이게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이게 사회생활이고 인간의 삶이었습니다. 이러니 분란이 거의 안 일어나죠. 게다가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하는 것이 아니라는 국룰이 있었습니다. 해봐야 답도 안 나오고 싸움만 나기에 국룰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나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사냐고요? 정치 성향만 다르지 나와 공통점이 더 많을 수 있거든요. 같은 직장을 다니거나 취미가 같거나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은 엄청난 공통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은 이 자제와 절제가 없습니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게 됩니다. 게다가 얼굴도 안 보이죠. 어떤 공통점도 없습니다. 그럼 사람이 어떻게 판단하냐면 상대방을 사람이 아닌 그들이라고 지칭합니다. 1찍이들, 2찍이들, 좌빨들, 극우꼴통들이라는 혐오심이 가득 담긴 단어로 나와 다른 정치 및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묶어서 지칭합니다.
인터넷 초창기도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걸 쉽게 드러내지도 드러내도 일부 커뮤니티에서만 내세웠죠. 그러나 지금 보세요. 펨코라고 하는 FM코리아는 축구 게임 커뮤니티인데 요즘은 정치 커뮤니티가 되었습니다. 일베, 오유, 펨코, 클리앙 등등 특정 주제로 모인 커뮤니티가 정치 커뮤니티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렇게 같은 정치 이념 성향이 뭉쳐서 자신들에게 좋아할만한 뉴스만 선별해서 공유해서 올리고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라는 확증편향 성향이 아주 짙어지게 됩니다. 이건 대단히 정신 건강에 안 좋습니다. 이런 대형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 의견을 듣지도 읽지도 따져 보지도 않고 누가 말했는지만 눈여겨보고 닥치고 함께 분노하고 화를 내는 경지까지 오릅니다.
전 진보 성향이지만 진보 언론도 진보 성향 커뮤니티도 활동 안 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결코 저에게 도움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대형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 않는 것이 좀 더 상식적이고 바른 태도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니면 '버블 필터'링이 된 정보를 쏟아내는 대형 커뮤니티 글들을 나만의 필터링으로 또 해석을 해야 합니다.
특히나 양당제의 국가인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정치꾼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정치꾼들의 성향을 보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뉴스를 보면 침묵하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참 역겹더라고요. 그래서 정치꾼들을 제가 아주 싫어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나와 다른 의견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Kurzgesagt 내용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이겁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같은 목표를 가진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진화를 했고 홀로 사는 사람들이나 공동체 단위가 적은 부족은 사라졌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뇌는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진화를 했습니다. 특히 한국 같이 집단 문화가 발달한 나라를 보면 이걸 잘 알 수 있죠. 머리가 똑똑하지 못해도 눈치만 있어도 밥 굶지는 않는다고요. 한국은 좋든 싫든 학교와 남자는 군대까지 공동체 생활을 억지로 해야 합니다. 그럼 이 공동체 생활에서 눈치는 필수라고 하죠. 이게 옳고 그름보다 더 상위의 가치판단입니다.
눈치를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술자리에서 하거나 등등의 여러 가지 말들을 하는 것이죠. 이걸 없애기 위해서 영어 이름으로 부르고 계급이 아닌 직급으로 분리해서 부르는 등의 수평적 문화를 전파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됩니까? 엄연히 한국은 계급 공동체 사회인데요.
이러다 보니 나와 다른 의견을 잘 말하지 않게 되고 잘 말하지 않게 되다 보니 쓴소리와 상사와 다른 의견을 내기 쉽지 않죠. 그럼에도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상사의 의견이 더 가치 있는 사회가 한국 사회입니다. 이렇게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서 협력하는 것이 고립이나 분열되어서 그 공동체가 멸망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기에 우리는 다른 의견에 굉장히 민감해합니다. 다른 의견으로 인해 분열이 되고 고립이 되고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을까 하는 스트레스죠.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가 아닌 사람에게 듣는 쓴소리도 아주 싫어하죠.
하물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말하는 반대 의견을 극혐합니다. 이걸 증폭한 도구가 바로 SNS입니다. 우리 인간은 분노와 공포가 그 어떤 감정보다 강합니다. 특히 공포심은 가장 빠르게 확산되죠. 좋은 미담은 느리게 퍼져도 상관없지만 큰 재난이 발생하거나 무시무시한 일이 발생하면 빠르게 전파해서 공동체를 보호합니다. 화재가 나면 빠르게 전파되는 것처럼요. 그래서 SNS에는 공포와 분노심이 더 많이 공유되고 더 빠르게 전파됩니다. 공포심 자극하는 가짜 뉴스가 널리 멀리 전파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포는 공격적이게 되고 그 공격성이 SNS를 잡아 먹어 버렸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보고 분노하는 건 우리 인간의 뇌 작동 방식이라서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걸 인정하고 이해하면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분노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SNS 지배하기 이전 인터넷으로 돌아가자!
Kurzgesagt는 이 증오와 혐오가 가득한 인터넷 세상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SNS가 없던 시절의 인터넷 시절을 거론합니다. 블로그와 포털이 있고 다양한 웹 사이트가 있던 그 시절이요. 검색을 통해서 읽는 글들은 그 내용이 내 성향과 같은지 다른지 모릅니다. 그냥 읽다 보면 이 사람은 나랑 다른 의견이구나 나랑 다른 성향이구나를 느끼게 되죠.
마치 같은 동네에 살지만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처럼 그냥 무던하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검색은 차단 기능이 없습니다. 검색할 때마다 내가 보기 싫은 블로그나 웹 사이트가 뜨면 SNS에서는 차단할 수 있지만 검색 결과는 차단 기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과 다른 글들을 더 많이 읽게 되고 내 생각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확증 편향이 없던 인터넷이 SNS이전 인터넷입니다.
그래서 넷플 명작 다큐 <소셜 딜레마>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알고리즘 만든 개발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세상을 이롭게 만들고 싶었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세상을 망쳤다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SNS 알고리즘이 세상을 혼탁하고 혐오로 물들게 했네요. 그러나 이런 세상을 되돌릴 긴 쉽지 않습니다.
제가 제시하는 대안은 우리 인간의 뇌가 반대되는 의견에 불편해하고 스트레스 받게 설계되었으니 최대한 나와 다른 의견을 안 보거나 SNS를 덜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대형 커뮤니티가 아닌 소소한 커뮤니티가 오히려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작은 커뮤니티는 대형 커뮤니티보다 강력한 규칙이 있습니다. 따라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더 많습니다. 마치 마을에서 정치 종교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한 암묵적인 규칙처럼요. 더 중요한 걸 Kurzgesagt가 제시했는데 하루 정도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좋은 변화의 시작이라고 제시하네요.
가끔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의 그 인터넷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네요. 욕설과 혐오와 증오가 없던 그 시절 그 인터넷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