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힙지로로 불리던 을지로의 강남화 앞으로 힙지로는 없다

썬도그 2023. 10. 1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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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구도심인 종로와 신도심인 강남으로 구분됩니다. 구도심인 종로가 역사와 전통과 골목과 한옥이 가득한 공간이 많다면 강남은 뽕밭이었던 곳이라서 역사적인 공간이 거의 없고 평지가 발달한 공간이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모던하고 세련되고 현대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만드는 곳이 되었습니다. 

사실 관광이라고 하면 뭔가 근사하고 으리으리하고 역사적인 뭔가를 보는 재미가 큰데 강남은 역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들이 많아서 관광객들도 쇼핑이나 현대 한국 문화를 즐기러 가는 관광객은 많지만 대부분은 종로를 기본으로 관광을 합니다. 종로도 명동 같은 곳은 강남삘이 가득하고 쇼핑 천국이라서 한 공간에서 다양한 한국 문화를 체험하기에는 종로구, 중구가 가장 좋죠. 

허름한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다

앞으로 힙지로는 없다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발표할 때 을지로 골목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서 요즘 20,30대들이 트렌드가 레트로 갬성임을 확실하게 알게 해 줬습니다. 을지로는 최근 힙지로라고 해서 위와 같은 20,30대들이 주로 찾는 허름한 골목길에 다양한 이색 주점과 음식점이 가득 들어섰습니다.  솔직히 너무 낡아서 뭘 이런 곳으로 찾아올까 하지만 서울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레트로한 풍경과 함께 독특한 인테리어와 맛을 제공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이색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힙하다고 힙지로라고 불리었습니다. 

힙지로로 불리던 을지로의 강남화 앞으로 힙지로는 없다

이 힙지로가 된 것이 오래된 건 아닙니다. 코로나 바로 전인 2019년 경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을지로 일대는 노포들이 참 많습니다. 낡은 건물들이 가득한데 이 건물 상점들을 먹여 살리는 건 을지로의 대기업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기업 직원과 함께 근처에 가득한 철공소, 조명가게, 인쇄출판 그리고 사진 카메라 관련 상점 등등 한 마디로 하나의 제조 유통 클러스터가 만들어낸 수많은 직장이 만든 직장인들의 퇴근 후 참새 방앗간이었습니다. 

을지로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남산

세운상가에서 보면 주변이 온통 2층 이하의 저층 공장 및 상가들로 가득합니다. 

세운상가에서 내려다본 풍경

자세히 보면 너무 낡아서 곧 무너져내릴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보시면 발암물질이라고 사용이 금지된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철공소와 각종 소규모 공장이 가득합니다. 당장 무너져서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았죠. 이 낡음이 주는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많은 상가들이 먹고살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공간이 서울 곳곳에 있습니다. 문래동, 독산동, 성수동 등등 준공업 지역 풍경들이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을지로가 가장 낡았습니다. 이런 공간이 한국전쟁 이후 자연스럽게 생겼기에 자생력은 아주 강했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시내 나갔다 올께 하면 찾는 곳이 종로와 을지로 일대입니다. 저도 아무것도 안 사도 뭔가 구경하고 싶을 때는 을지로 일대를 자주 돌아다닙니다. 재미있는 것도 많이 보고 골목도 많아서 어딜 가도 좋고 길을 잃어도 좋았습니다. 물론 걷는 거 싫어하고 이런 오래된 것, 낡은 걸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비추천이죠. 

이 을지로 일대가 낡았기에 낮은 임대료를 파고 든 문화예술인들이 을지로 일대에서 아틀리에를 꾸미고 작업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종로는 을지로 걷기 관광코스도 마련하고요. 그런데 이 낡고 오래된 무질서한 것 같지만 나름 질서가 있는 을지로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운상가 야경

저 멀리 종로와 충무로, 명동 일대의 고층 빌딩 앞에 있는 낮은 높이의 을지로가 개발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세운상가 힙지로

아직 개발이 안되고 있고 앞으로도 안되는 곳도 있지만 

대림상가

세운상가 밸트 주변으로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네요. 

사라지고 있는 을지로의 골목과 옛 공간들

예장동 세운4구역

이미 예장동 시계골목은 싹 분쇄되어서 문화재 발굴을 하고 있습니다. 고층 주상복합 건물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단언하지만 전국 모든 주상복합건물들의 상업공간이 채워지지 못하는 걸로 보면 쉽게 상가들이 채워지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기존의 상가들이 주변 상가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돌아오긴 하고 건물주이자 상인인 분들은 불허받은 상가로 다시 돌아오겠지만 세입자인 분들은 높은 임대료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예장동 세운4구역

아세아 극장도 사라졌습니다. 

예장동 세운4구역
예장동 세운4구역

현재 을지로의 핵심 건물인 세운상가 밸트 주변을 여러 6 구역까지 나눠서 개발하고 있는데 예장동 지역은 4 구역이고 

세운 3구역 푸르지오

세운 푸르지오는 3구역으로 이미 완공이 되어서 입주를 하고 있습니다. 을지로에 저 높은 건물을 보면서 이게 을지로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운 3구역 푸르지오

그리고 세운 푸르지오 뒤에 있던 유명한 을지면옥 건물이 있는 지역도 사라졌습니다. 개발 논리에 밀려서 이전을 했습니다. 저 건물을 한 5분 동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을지로는 이제 사라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힙지로 지역인 충무로 밑 출판 인쇄 골목은 아직 개발 이야기가 없고 이해득실이 복잡해서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이 다 변하는데 같이 개발이 되겠죠. 

을지로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개발 = 강남 빌딩숲이라는 식으로 너무 천편일률적인 개발로 인해서 개성이고 골목이고 모든 것이 편의로만 돌아가다 보니 가고 싶은 을지로에서 지나치는 을지로가 될 것입니다. 

대단지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거길 일부러 가나요? 그 지역 사람들이나 이용하는 정크 스페이스가 됩니다. 대표적인 곳이 피맛골을 개발한 종로 1~2가 일대로 가보면 대형 건물이 들어선 곳은 다양한 상업 시설이 지상 지하로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를 일부러 종로까지 가서 체험하고 싶은 일이 일도 없죠. 마찬가지입니다. 을지로의 고층빌딩들은 다양한 상업 시설을 짓겠지만 그 상업 시설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브랜드는 프랜차이즈 밖에 없을 겁니다. 

을지로 아베베

을지로를 따릉이 타고 지나다가 아베베라는 제주도에서 올라온 빵집 앞에서 웨이팅이 수백 미터가 서 있는 걸 보면서 이게 을지로인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경도 앞으로 10년 안에 많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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