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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성북동 여행기)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저택 심우장에 가다

by 썬도그 201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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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밑이 어둡다. 지금 사시는 곳에 볼만 한 곳 숨겨진 이야기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까요?
자기가 사는 동네도 다 돌아보지 못하는게 현실입니다. 10년을 살아도  집근처와 마트만 왔다갔다 하는게 대부분의 현대인이자 도시인들 입니다.

자신의 동네를 거주인이 아닌 관광객으로 돌아보십시요. 얼마나 보고 듣고 읽고 느낄게 많은데요.
그런 스토리들이 숨겨져 있지만 볼려고 하지 않고  들을려고 하지 않고 관심이 없다보니 주변에 있는 좋은 것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권하는 것은 관광객의 시선을 동네를 돌아 보십시요.  그럼 새로운 볼꺼리가 생길 것 입니다. 




제가 사는 금천구보다는 성북동이 더 이야기꺼리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종로 근처다 보니 조선시대 살던 사람도 고위 관직자와 유명인들이 많이 살았죠. 금천구야 예전엔 서울도 아니고 그냥 시골의 조용한 마을이었기에 거기에 큰 이야기가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뭐 필부필부들의 이야기가 잘 묘사된 책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으나 조선시대는 철저한 계급사회라서  관직자나 유명인 혹은 왕이 아니면 기록에 담기지도 않습니다.

그런면에서 성복동은 이야기꺼리가 많죠. 성북동은 부자동네입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빛이 강하면 어둠이 강하죠.
불량노후 주택과 고래등 같은 수십억대의 담장 높다란 동네도 있죠

어떻게 보면 브라질 리오 데자 네이루가 생각난다고 할까요?



삼청공원을 넘어 짧은 산행을 마친 곳은 성북동이었습니다. 
내려오니  만국기들이 펄럭이네요. 국기공원이라고 하는데  성북고와 자매결연인지 뭔가를 맺은 나라들이라고 하네요



조금 내려오니 심우장이 보입니다. 심우장?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을 켜고  검색을 해보니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저택이라고 하네요. 전 이런데 빠지지 않고 꼭 들립니다




길을 올라가니 여느 서울의 동네와 다르지 않게 시멘트를 부어서 만든 듯한 비포장과 포장의 중간단계인듯한 길이 보입니다. 



저 앞에 길고양이가 길 안내를 합니다.  하지만 심우장은 왼쪽입니다. 


왼쪽 길에 들어서니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돌담이 보입니다. 푸근한 인상이네요



심우장에 도착했습니다. 큰 철문으로 되어 있어서 가정집인줄 알았는데 사람이 나오기에 들어가 봤습니다.



심우자은 1985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만해 한용운 선생이 지은 집입니다.
이 집은 다른 집과 달리 북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총독부를 보기 싫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대쪽같은 성품입니다.

한국은 첫단추를 잘못 끼웠습니다.
친일파들을 가장 먼저 청산해야 했는데  자주적인 해방이 아닌 미국과 소련군에 의해서 해방이 되니 미국은 한국의 상황을 전혀 모른채  일제강점기에 호위호식하던 친일파들을 다시 기용하는 커다란 우(愚)를 범합니다. 


그렇다고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 청산에 앞장섰나? 그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친일파를 옹호하고 나서죠
이승만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서 반민특위가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된다면서 경찰과 안보를 위협해서는 안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그러나 한나라당 논리와 비슷하죠)로 이 반민특위를 막아냈고 결국은 친일파들은 이승만 정권 품에서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솔직히 이 이승만 정권때 친일파 청산했으면 박정희 라는 인물도 역사속에 등장하기 힘들었을것 입니다.
어디 일본군 사관학교 출신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합니까?  뭐 친일파라도 우리를 배불리 먹게 살게 해주었으니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서 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친일이라도 괜찮아~~ 먹고살게만 해준다면 이런 논리입니까?
뭐 지금 정권도  전과 많아도 괜찮아  먹고 살게만 해준다면~~ 이라고 생각해서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았던 것이죠
그러고 보면 역사는 돌고 돕니다.  먹고 살게만 해준다면 눈감아 줄 수 있고 모른척 할 수 있는게 어디까지 일까요?  

이런 독립투사들이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독립투사하면 3댁 망한다는 말이 사전에 오를 정도니 한국의 역사는 지진난 땅 처럼 뒤틀려 버렸네요



만해 한용운 선생은 승려이자 시인이자 독립투사였습니다.
심우라는 말은  선종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 10가지중 하나인  잃어버린 소(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 다는 뜻의 심우(尋牛)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한용운 선생이 돌아가신후 외동딸 한영숙이 살다가  건너편에 일본 대사관저가 들어서자 집을 떠났다고 하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심우장 건너편에 있나요?  아무리 일본을 감정적으로 보지 않을려고 해도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금천구청이 일본 지진돕기 성금 모금한 돈을  구청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그 돈을  일본 지진성금이 아닌 독도 관련 사업하는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하죠. 그래서 개념구청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저도 일본 지진에 가슴아파하지만  최근 일본 정부의 행동을 보면 좀 짜증이 나네요.
꼴통 자민당과는 좀 다른 정당일줄 알았는데 역시 일본 민주당도 보수정당이라서  똑같이 행동하네요.   



일제강점기때 '님의 침묵'이라는 시로 한민족의 울분을 쏟아냈었죠.
침묵은 이제 끝이 났지만 또 다른 침묵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심우장은 단출한 1층짜리 기왓집입니다.
그 옆에 작은 사무실이 하나 있습니다. 볼꺼리는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 독립운동가의 저택을 보존하는 자체가 유의미한 일입니다. 친일파 재산 환수법으로 이제서야 친일세력들의 재산을 환수하고 있는데  매국한 댓가로 돈을 번 사람들의 재산을 인정한다면 그 나라의 근간을 뿌리채 흔드는 것 일것입니다. 



한국의 유명 보수주의자들중에 친일파가 많습니다.
그들은 국민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반공의 깃발을 흔들어서 시선분산 효과를 노렸고  그 우민정책에 속아서 반공깃발아래서 분노심을 키웠던게 우리입니다.  반공도 해야겠지만 친일파 청산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는데  문제는 친일파들이 반공을 외치니 둘다 할 수 없었고 지금도 그 친일청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 하늘에서 독립투사분들이 후손인 우리를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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