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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아빠 어렸을 적에는 말이지 (서울교육박물관 관람기)

by 썬도그 2011.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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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렸을 때는 책보를 싸서 산 두개를 넘어서 학교에 갔어"

책보가 뭔지도 모르겠고 교과서가 없어서 친구와 함께 봤다는 것도 당췌  머리속에서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쌀이 없어서 밥을 굶었다고 하면  '라면 먹으면 되잖아요' 라고 당돌하게 말했던 아이들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예전에 비해 70,80년대를 담은 영상이나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관심을 가질 나이가 아니죠.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아버지의 인생까지 돌아 보기 전까지는 그 과거로의 여행을 하기 힘듭니다.

우리 어렸을적엔 말이지라고 시작되는 이야기의 삽화가 되는 곳이 있습니다
삼청동 입구 정독도서관 입구의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 보면  꼬마아이 둘이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70년대 도덕 교과서의 모델들 이네요.  이 곳은  서울교육박물관입니다. 
2007년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시절 찾았던 곳이기도 하네요. 2011년 약 4년만에 다시 찾아 봤습니다. 



4년이란 세월이 짧은 것 같지만 이렇게 2007과 다른 내부 모습에 세월의 변화를 느낍니다. 조선시대와 책보를 둘러맨 모습 그리고  일제식 교복시대를 지나서 현재의 다양한 교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왜 우리는 일본어를 못쓰게 하고 일본이라면 무조건 척결의 대상 지워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면서도 정작 일본의 그것과 똑같은 호크달린 교복을 80년대 초반까지 입고 다녔을까요?



저 교련복 생각나네요. 아침에 교련복 입고 가는 날은 왜 그리 짜증났는지 얼룩덜룩한 교련복을 입고 총검술을 배우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요즘은 교련없죠?


교복 광고네요. 예전 저 호크 달린 교복도 광고가 있었군요. 
요즘은 아이돌 가수들이 광고를 하는데 모델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교복비용이 너무 비쌉니다. 아이돌 가수들은 알까요?
그런 모델을 선 교복이 너무 비싸다는 것을요. 



이제는 급식시설이 보급되어서 도시락 싸가는 학생들 거의 없습니다.
저는 대방초등학교를 나왔는데  80년대 그러니까 82년도로 기억되는데 그때 대방초등학교가 급식 시범학교가 되었습니다.

급식 시범학교라서 도시락 대신에 급식을 먹었는데요. 주식이 빵이였습니다. 빵과 잼과 국이 주식이고 가끔 밥이 나옵니다
그때 급식 너무 맛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처럼  교실 앞까지 음식을 배달해주지 않았습니다.

반에서 키 큰 학생 5~6명이 점심시간 되기 20분 전인가에 미리 가서 빵하고 국하고 식판하고 부식, 우유등을 타왔습니다.
저는 별 친하지도 않는 녀석하고 식판 배달을 했는데  이 놈이 꼭 점심먹고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다 먹은 음식을 다 털어서 식판을 포개야 하는데 먹다 말고 포개고 해서 다시 급식실로 반납할려면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같이 운송을 해야할 녀석이 사라져 버려서 혼자 낑낑대고 가져갔던 기억도 나네요. 그러다 착한 주번 형을 만나면 그 형이 같이 들어주기도 하고요

선생님이 그런 것을 보면 따끔하게 혼내줘야 하는데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그런것 고자질도 안하고 소처럼 일했습니다.
그런 배식도우미 한다고 점수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열심히 했나 모르겠습니다.  

한번은 떡볶이를 배식하다가 담임선생님 치마에 좀 묻게 했습니다. 그 여선생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저를 잡는데  아..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그때 제가 엄청 놀랬나 봅니다. 고의도 아니고 실수인데 그냥 얘를 잡더군요

어제 김태원이 싸닥을 맞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의 선생님들이 좀 변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말고도 학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좋지 못한 분들이 많을 것 입니다.  스승같은 선생님은  일부고 대부분은 별로였습니다
몇몇 선생님은 인성에 문제가 있던 선생님도 참 많았고요. 

학교가 학원화 되어가는데  그나마 학교라고 부를 수 있는게 본받을 행동을 하는 선생님이 많아야 할텐데요.
요즘은 많이 달라졌을까요?  


난로 보니 또 한바탕 쏟아내고 싶은데  그만 할렵니다. 너무 길어질것 같네요
시간표를 보고 발길이 멈췄습니다.  H,R.. C.A    무슨 약자인지도 모르고  이 시간이 참 싫었습니다
특활활동은 글짖기반에 갔습니다. 가서 놀다온 기억밖에 없네요. 선생님도 열정이 없고 니들은 글써라 나는 숙제만 내준다 식이였습니다. 


전 태극기가 남쪽은 파랗고 북쪽은 붉은 이유가  한반도 때문인지 알았습니다.
기묘하죠. 북한의 인공기의 주색은 빨간색이고  남한의 태극기의 주색은 빨강, 파랑, 검은색입니다.
뭐 저런 반공포스터나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던 시절에는 인공기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북한도 국기가 있다는 것을 중학교때인가 알았네요.  

태극기의 태극문양의 색과 남북한의 모습.   분단이 운명은 아니겠죠. ㅠ.ㅠ







시대별 교과서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국어, 산수, 도덕, 자연, 체육, 국사,  다 기억납니다
아!  저 미술책 기억나요. 음악책도요.   

이건 50.60년대 책 같네요


달걀과 사이다 하나면 소풍의 전부였습니다. 왜 우리들은 능으로 소풍을 많이 갔을까요?
중학교때 선정릉으로 소풍을 갔는데  그때 2호선이 막 뚫렸거든요. 선릉에서 내렸는데 정말 허허 벌판이었습니다.
딱 하나 있던 높은 건물이 한국학원이었죠. 지금은 한국 최고의 번화가가 되었습니다.

태릉,서오릉, 헌인릉등등 능으로 참 많이 갔는데 가서 김밥먹은 기억밖에 없습니다.


명찰과 함께 달고 다녔던 산불조심, 쥐잡기의 날등 저 종이를 쫙 펴서 항상 달고 다닌 기억이 나네요



구슬과 딱지, 화약  이 3종세트면 하루가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닌텐도DS, PSP, 엑스박스겠죠




서울시 학교들의 뱃지입니다. 제가 나온 학교도 저기 있더군요.  


완장차면 사람들이 권력자가 되죠.  6학년때 주번 완장차고 뛰어다니던 저학년들 잡아서 수첩에 적곤 했는데
그거 적어서 어따 쓰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적었습니다. 쩝 권력의 쓴맛을 보여준것도 아니고 ㅋㅋㅋ 주번의 특권중 하나가 교실지키지였는데 음악과 야외 미술시간 체육시간은 해방구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주번들중에 못된 놈들은 남의 도시락 까먹곤 했습니다. 






서울교육박물관, 혹 삼청동 놀러가신다면 삼청동 입구에 있는 정독도서관옆 서울교육박물관 한번 들려보세요. 우리 어렸을적 추억이 가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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