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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내 인생 최고의 시집 에리히 케스트너의 마주보기

by 썬도그 201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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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는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본지가 한참이 지났는데 마지막 장면만 떠오르면 가슴한켠이 서늘해지면서 비가 후두둑 떨어집니다.
영화 시는 시를 소비하지 않고 생산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팍팍한 삶을  시라는 거대한 그물로 덮어버리는 비상한 영화입니다.

왜 우리는 시를 읽지도 만들지도 않을까요?
시가 어려워서요? 재미없어서요? 무슨말인지 모르겠어서요? 바뻐서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것 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우리들의 삶이  상상의 영역에서  비쥬얼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은근한것보다는  직설적이고  자극적인것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의심하면서 인증샷을 요구하는세상.  모든것을 자기눈 앞에 보여져야 믿는 비쥬얼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는 눈으로 보이는 문학은 아닙니다. 동양화처럼 채워야 할 공간이 많고 독자의 상상으로  그 많은 여백을 채워야 하는데  그걸 쉽게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를 어렵다고 말합니다.  분명 대중소설이나 뮤직비디오나 액션영화를 보는것 보다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조금만 단련하면 시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조금을 하지 못하면서 살고 이습니다.

영화 시는  우리가 너무 자기 편의위주로 살며  남들을 세심히 바라보지 않고 관찰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시가 사라진 삭막한 현재의 우리들을  기름종이를 대고 윤곽선을 똑같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윤미자 할머니가 그 어렵다던 시를 후두둑 떨어지는 빗줄기처럼 쏟아내며 그 시가 스크린에 맺히면서 영화는 끝이 났고  제 눈에는 그 시들이 그렁그렁하게 맺혔습니다.

아네스의 노래 - 이창동


그곳은 얼마나 적막할까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좋아하는 음악 들려올까요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고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을까요

한 번도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해야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 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이제 어둠이 오면

촛불이 켜지고 누군가 기도해줄까요

 

하지만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당신을 축복하리

 

마음 깊이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영화를 보고 난 후 책장에 있는 아무 시집이나 찾아봤습니다.
그러나 아무 시집이 없었습니다.  시집하나 없는  내 책장을 보니 경제관련서적, 소설책.  IT관련서적, 자격증서적. 직장에서 해야될 하지말아야 살면서 꼭 가봐얄 죽기전에  꼭 해봐야할  수 많은 MUST HAVE를  외치는  처세관련서적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죠. 내가 최근에 시집을 산게 언제였던가?
그 기억은 90년대 초에 가서 멈췄습니다.  원태연 시인의 시집이 가장 최근에 산 시집이네요

포스트 제목을 내 인생의  시집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좀 부끄럽네요. 시집을 접하고 산것은  중고등학교 대학교때가 전부이니까요
하지만  요즘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코너에 시집 코너가 아예없고 시집이 팔리지도 않습니다.  인기가 없으니 시집 코너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시집.  수필, 소설 이렇게 장르를 구분해서 순위를 매길정도로 시집이 많이 팔렸는데 요즘은 인기시집은 없습니다.

시를 읽지 않은 시대에 사는 우리 영화 시에서 처럼 우리가 시를 잊고 살면서  물질은 풍요해졌으나 마음에는 여유가 없고 영혼은 가난해지지 않았을까요?  시가 풍년을 이루던  그 80년대를 추억하면서  내가 기억하는 시집과  내 인생 최고의 시집을  말해보겠습니다.


80년대 후반 시의 거대한 인기폭풍이 몰아치다


인기 시인 서정윤의 홀로서기가  우뚝섰던 88년  그 어떤 아이돌스타보다 그 어떤 소설가보다 그 어떤  스포츠스타보다 청소년들의 인기스타는 서정윤시인이었습니다. 집집마다 홀로서기라는 시집이 없는집이 없었고   여학생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300원짜리 연습장 표지에는 꼭 홀러서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시원한 감수성의 향연은   이 홀로서기를 88년 교보문고 집계 베스트셀러 1위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 홀로서기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우리가 어른이 되면  이 홀로서기가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겠다라고 지나가는 소리로 했는데  아직까지는  교과서에 오르지 않은것으로 알고 있고 오르기도 힘듭니다. 그 이유는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그때 읽은 홀로서기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시였으나  예술적인 면은 그닥 많지 않아 보이네요.  


88년 교보문고 집계  베스트셀러 1위에서 10위까지

88년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그해 1위는 서정윤시인의 홀로서기였고  2위는 에리히 케스트너의 마주보기
3위는  도종환 시인은 접시꽃 당신입니다.   88년 그해 1위부터 3위가  모두 시집인 이 기괴하기만 현상은 이후에 사라지고 맙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집의 열풍의 시대에 제 감수성의 폭풍시대인 사춘기를 지냈고  그래서 제가 남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해졌나 봅니다.
홀로서기와 함꼐 인기를 끈 접시꽃 당신.  이 접시꽃 당신은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고 흥행에 성공합니다. 시집을 영화로 만들어지던 시대. 시가 칭송받았던  88년에 제 사춘기시절이 겹칩니다.



그런데 제가 홀로서기가 아닌  베스트셀러 2위인  에리히 케스트너의 마주보기를  내 인생 최고의 시집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 마주보기는  다른 시집즉 원태연시인의 시집같이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추상적인  이성에 대한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다듬어서  달달한 시럽같은  사랑에 대한 달콤함과  콜라같은  짜릿함  초콜렛 같은 달콤쓸쓸한 이별의 고통을  담는  연애시집이 아니였습니다.

이 마주보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 보다는 삭막한 현대를 사는  영혼에 구멍이 난 현대인을 위한 영혼의 처방전을 담은 시들이 가득했습니다. 

마주보기라는 제목은  너무나 작위적으로 보였습니다.  당시 홀로서기가  큰 성공을 하니  수입업자가  비슷한 제목으로 만들었나 생각이들었죠. 홀로서기 짝퉁시집인가 해서 무시했었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과 다르게 마주보기가 계속 회자되고 라디오에서도  소개되면서 무슨 시집인가 했습니다.

이 시집의 원제는 케스트너 박사의 서정적인 가정 상비약이고  놀랍게도  1936년 작품입니다.한세대가 지나서 동방의 한 작은나라에 소개된  마주보기.  명작은 세월을 뛰어 넘는 정수가 있었고 그 정수를 알아본 한국의 독자들은 이 작품을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립니다.

 
       도시가 끔찍하게 싫어질 때
    너와 내가
    당신과 당신이
    마주봅니다.
    파랑바람이 붑니다.
    싹이 움틉니다.

    고급수학으로
    도시의 성분을 미분합니다.
    황폐한 모래더미 위에
    녹슨 철골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서로서로
    핏발선 눈들을 피하며
    황금충떼가 몰려다닙니다.
    손이 야구장갑만 하고
    몸이 미이라 같은 생물들이
    허청허청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립니다.

    우리가 쌓아 온 적막 속에서
    우리가 부숴 온 폐허 위에서
    너와 내가
    당신과 당신이
    마주봅니다.
    파랑바람이 붑니다.
    싹이 움틉니다.

    피곤에 지친 눈을 들어
    사랑에 주린 눈을 들어
    너와 내가
    당신과 당신이
    마주봅니다.

    마술의 시작입니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마주보기는 참 재미있는 시집이기도 합니다.  케스트너 박사의 서정적인 가정 상비약 이라는 원제처럼
여러가지 상황에 꺼내 먹을수 있는 영혼의 알약처럼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사소하거나 자주있는 상황을 담으면서  따스한 위로를 해줍니다.  

제가 이 시집이 좋았던 이유는  사랑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대부분의 남고생 여고생들이  사랑의 감정도 잘 모르면서 사랑타령 가요들을 왜 들 그렇게 따라 부르고 사랑시를 소비하는지 이해가 안갔습니다. 그러나 이 마주보기는   고등학생의 거북 등껍질 같은 갈라진 져서 쓰라인 영혼을 치료해주는 치료밴드 같은 시집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상당히 염세적이였는데  이 시집이 그나마 그 염세적인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은 치료약이 되어주었습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이 시집이 1936년에 나왔다는게 놀랍기만 하네요. 도시에 시달리고 경쟁에 시달려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최근에 만들어진 시집이라고 생각했는데 1936년도에 나온 시집이라나니  놀랍기만 하네요.

마주보기는 쉬운 시집입니다.교과서에 있는 수많은 용법과 은유와 알레고리 비유가 난무하지 않습니다. 쉬운단어과 그 쉬운단어로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또한 쉽습니다.  거기에 약간의 기교가 있구요. 

저자 에리히 케스트너는  에밀과 탐정들. 하늘을 나는 교실로 잘 알려진 독일 작가입니다.
최근에 이 마주보기가 리뉴얼되어서 다시 출판되고 있다고 하네요.  기회되시면 서점에서 몇장을 복욕해 보시고 가정의 영혼상비약으로
보관하셔도 좋은 시집입니다.

마주보기 - 8점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윤진희 옮김, 경연미 그림/한문화


시는 찾으면 어디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시는 사물과 사람을 진득하게 관찰하는 사람들만이 발견할 수 있죠
거미가 허공에 집을 짓는 모습을 10분이상 관찰하면  허공에 도로를 내는 거미라는 싯구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관찰력이 부족해진 현대인들. 멀티태스킹 인간형이 가져온  집중력 부족이 만든 풍경들이 시를 멸종시켰습니다.
시가 멸종되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체되는 세상또한 좋아보이지 않으니까요. 다만 시를 읽는 사람은 차별화가 될 수 있을듯 하네요.  결국은 처세를 위해서라도 시를 읽어라라는 말로 마무리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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