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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미술작품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도 다른 명화들을 표절했다?

by 썬도그 2010.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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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의 미술은  주로 신을 그렸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주로 그리다가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상주의 화가들이 나오면서 세상의 풍경이나 정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꽃이나 해바라기 사과 등등을 그린다는 것은 물감 낭비였죠.  하챦은 것들을 그릴 만한 가치가 없었으니까요.

18세기가 프랑스 미술은  아카데미즘이 주류였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화가가  1863년 살롱전에 벌거벗은 여인 둘을 그린 그림을 들고 나와서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1863)입니다.  이 풀밭위의 식사는 두명의 여자가 나옵니다. 한명은 뒤에서 목욕을 하는듯 하구요. 한명은 남자들과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옷을 다 벗고 있네요.   옷도 방금 벗은것이 아닌  옷을 벗고 풀밭위에서 점심식사를 한듯 합니다.

사람들이 놀란것은 이 두 여인 때문이었습니다. 19세기만 해도  누드는 허용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이 아닌 신이 벗은 몸만 허용 했습니다.  그래서 중세시대 그림들 중 누드그림들은 다 신이 벗은 것이였죠.   그러나 사람이 벗으면 안되었습니다.  그 차이를 확연히 구분해 놓았던것이 서양 미술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요.  그래서 그랬나요? 수년전에 한나라당 진모 여자 의원은  시사프로그램인 헤딩라인뉴스에서  중세의 명화에 여성의원의 머리를 우겨넣어 패러디를 했든데 그 명화가 바로  누드그림이었습니다..  여자의원은 노발대발했고  명예훼손과 압력을 넣었고  그 헤딩라인뉴스는  외압에 의해  폐지되었습니다.

몰이해와 상식없음이 더 웃기던 일화네요. 

오프 더 레코드 현대미술 - 8점
정장진 지음/동녘
라는 책에 이 풀밭위의 식사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어  소개합니다.
이 풀밭위의 식사는  마네의 그림이지만 오로지 상상으로 그려진 그림은 아니라고 합니다. 

16세기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동판화인 파리스의 심판


가장 먼저  풀밭위의 식사의 남 녀의 포즈는  라이몬디의 동판화 파리스의 심판에서 차용했습니다.
위 붉은 테두리 안의 인물들의 포즈를 보세요. 상당히 유사하죠.

티치아노의 전원교향곡

또 하나의 작품은 티치아노의 전원교향곡입니다.  이 작품은 포즈가 아닌  두 여자가 옷을 벗고 있고 두 남자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참고 했습니다.  따라서 풀밭위의 식사에서 옷을 벗고 있는 여자가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죠.  마네는 그냥 두 작품을 참고해서 재해석해서 그린것이니까요.
이 주장은 저자의 주장인지 정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정답은 마네 자신만 알고 있을테구요.
이렇게  세상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죠. 다른노래를 듣고  그 노래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서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이구요.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는  위 두작품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걸 그림에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도 보면  존경하는 감독의 작품을 오마쥬해서 영화속에 삽입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오마쥬를 하면 감독이 인터뷰를 할때나  영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오마쥬라는것을 알게 하는 장치를 삽입합니다. 그러나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는 그런 장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표절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얼마전 모 미술 작가가 서양유명 화가의 그림속 주인공들이 나오는 한국홍보물 CF를 고소했습니다. 자기작품을 배꼈다 이거죠.
참 어려운게 표절시비입니다. 그걸 기계적으로 걸러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판사가 무슨 전문가도 아닌데 일일이 옳바르게 판단할 수도 없구요.  가장 중요한것은  창작자들의 양심이겠죠.

이 글도  저 오프 더 레코드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참조했으니까 표절일까요?
표절은 막아야 겠지만  너무 옥죄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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