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니콜라 테슬라와 에디슨

by 썬도그 2007. 6. 21.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교류의 아버지이자 무선 라디오 개발자 형광등 엑스레이발명가 그가 발명하는것마다 
이 발명들은 그 당시에엔 획기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이 역사상 최고의 발명가인 니콜라 테슬라 
하지만 그는 에디슨보단 유명하지 않다.  거기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의 몽상가적인
 기질과 크로아티아 출신이라는 시선도 한몫 할것이다


그가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전기를 쓸수 있을것이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때 이 사람에 대한(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독후감을 써서 상을
받은적이 있었다. 난 이사람이 누군지도 몰랐구 그냥 생각나는건 교류를 발명한 사람에 대한 주제로 독후감을써서 큰상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가 바로 이 니콜라 테슬라였다.

국민학교 3학년이면 에디슨 전기나 읽어야 할 나이일텐데  니콜라테슬라를 들고 나온
나를 기특하게 선생님이 여기셨나보다.  내가 지금생각해도 기특하다. ㅎㅎㅎㅎ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교류로 인해 전세계는 빛의 제국을 이룰수 있었다.
이 유럽귀족같은 잘생긴 청년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한후 에디슨밑에서 일을하다가
교류를 발명했구 독불장군이나 저돌적인 에디슨에게는 그 교류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오직 전기는 직류만 있다는 생각으로 에디슨은 그 발명을 받아들이지 않았구
이 천재발명가는 같은 천재발명가인 에디슨를 떠난다. 두 천재의 짧은만남이 이렇게 끝난다.

하지만

에디슨은 천재는 아니였다. 대학교도 가지 않았던 에디슨은 모든 실험을
이론에 근거하지않고 그냥 해보는것이었다. 어쩌다가 뭘 발명해도 그 이론이
없어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응용제품도 없다.
오로지 진공전구와 직류전기에 매달리던 에디슨 . 
그에 비해 책을 읽기보단 한권 통채로 외우고  시를 외우고 다니는 이 고풍스런 청년
테슬라는 에디슨과 헤어진후 웨스트하우스를 만나 그의밑에서 처음으로 교류를 완성시키고
나이아가라폭포를 이용해 전기를 도시까지 끌어 오게된다.

직류는 긴 거리 송전에 문제가 있다 중간에 저항이 발생하기도 하고 저항이 있으면
 발열이되어 전기손실이 크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한게 교류였다.  교류는 긴거리 송전을 해도 전기손실율이 적다. 그래서 저 외딴곳에 발전소를 세우고 전봇대를 통해 가정에서 쓸수 있는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에 들고 있는 전구를 켜는 마술과 같은 묘기(?)를 선보였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40킬로미터 밖의 전구를 무선전기송신을 통해
켜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기술은 현대과학자들도 알고 있지 않다.

몇일전에 무선전기송신의 시대가 열린다고 기사를 보았다. 니콜라 테슬라가 70년전에 보였던
기술을 이제 실현하나보다. 이 모습 하나로도 그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 그것도 짧은거리나 가능하다고 하니 말이다.


무선충전의 시대, 본격 열리나
기사보기

테슬라는 이 외에도 엄청난 발명들이 많고 그로 인해 파급된 발명품들은 우리들의
미래를 10년이상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그에게 에디슨은 자존심에 많은 구김을 당한다.

세계최초로 사형수에게 전기의자라는것을 만들어 제공한것은 바로 에디슨이었다.
에디슨의 심성은 너무나 고약하고 악독하여  그 전기의자에 교류장치를 연결하여
교류의 위험을 미국인들에게 알리려고 했고 처음에는 그 효과가 먹혀들어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에디슨 부하직원들은 강아지에게 교류장치를 걸어서 전기에 감전되어 죽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교류의 부정정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바빴다. 
 그래서 발명의 대가답게 전기의자까지 만든것이다
하지만 그건 잠시일뿐 많은 사람들은 교류의 편리함을 인정하고 지금도
전세계가  교류전기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테슬라코일 동영상보기 (강추)

하지만 테슬라는 그런 악덕업자인 에디슨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뢴트켄이 처음 발명한것으로 알고 있는 엑스레이를 먼저 발명하고도  뢴트켄에게
공을 돌렸다.
그후 1년이 지난후  자신의 두개골 엑스레이 사진을 뢴트켄에 보냈고  뢴트켄은 그의 그런 공을 인정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테슬라는 그때서야 대중들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는 돈과 명예를 원하지 않아  노벨상도 거부했을 정도로 욕심도 없었다.
이런 품위있는 발명가는 조국 크로아티아에서는 국경일로 지정하여 그를 기리고 있다
아직도 그의 발명이나 이론을 연구중이지만 실현 못하는 것들도 많다.
생전에 테슬라가 프라즈마 구체를 자유자제로 움직였던 실험은 아직 실현이 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랬나 영화 프리스티지에서 니콜라 테슬라는 발명가를 넘어서 마술가의 모습으로
나오기도한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니 발명가보단 마술가로 보인 이 몽상가적인 모습에
그는 사람들에게 각인되지 못했고 그 악덕한 에디슨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것이다.

그의 마지막꿈은  무선으로 전세계에 전기를 공급하는것이었다고 하니
그 꿈마져도 존경스럽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