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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봄 2편

by 썬도그 2007.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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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이로당으로 대원군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가 운형궁의 살림을 맡아서 하는곳이다.
명성후 민비도 이곳에서 궁중법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지금의 민비에 대한 평가는 국모라 칭할정도로 융숭하다. 이부분에 대한 평가는 다시 이루어져야한다. 이미연과 오페라 명성황후가 거의 국모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과연 국모스런 행동이었을까?

자신의 친인척을 대거 관직에 올리게하고 자신을 키우고 가르치고 했던 대원군과 싸우질
않나. 결국 임오군란이란  구식군졸들에게 쿠테타를 일으키게하게 하고
결국 뒤도안보고 도망가지 않았나.
친일파의 세력을 보듬어주고 키우고 가까이 하다가  청의 세력을 끌어들여서 대원군을 유배보내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지만 명성황후가 과연 국모의 수준까지의 인격과 품위를 가지고 있는지
는 재조명받아야한다. 단지 일본자객의 칼에 죽었다는 이유로 국모라는건 안될말이다.
내가보기엔 자업자득이다. 뭐 그렇다고 일본놈들 잘했다는건 아니다.
어디감히 한나라의 왕위 여자를 지네집 드나들듯 들어와서 살해를 한단말인가.

그만큼 그시대 조선은 초라한 나라였다. 자기집하나 수비하지 못하는 나라였다.
명성황후 시해이후 고종은 러시아공관에 머무르게 된다. 이름하여 아관파천
이쯤되면 나라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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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년대 말은 정말 하루하루가 사건의 연속이였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전세계가
땅따먹기 경쟁의 도가니였구 인권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
하나라도 더 먹을려는 서구 열강들은 몇 안남은 나라중 하나인 조선 에 그 손길을 뻣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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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유물전시관인데 사랑채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첫느낌은 좁아보인다라는 느낌이다. 정말 병풍을 병품삼아 조선의 앞날에 대해서 논의 했을것이다.

운현궁에는 봄이 왔지만 100년전 운현궁엔 항상 겨울이었을듯하다.
세상권력이 집중하던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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