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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봄 1편

by 썬도그 2007.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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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을 지나 종로3가쪽으로 내려가다가  운현궁을 발견했다.
우리에겐 쇄국정책의 흥선대원군이 거처하던 궁으로 알고 있다.

그 쇄국정책으로 인해 자율적인 근대화를 늦추게 하는 결과를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건 결과론적인 얘기이구  유교문화가 조선의 국시이던 시절에 흥선대원군 아버자의
묘를 파헤친건 독일인 이었다. 왜 파해쳤는지 모르겠지만  그놈 때문에 쇄국정책을 결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것이다. 오히려 개화파들이 일본가의 을사늑약의 디딤돌을 만들어준것은 자명한일이다. 힘이없는 나라이고 국력이라든 개념도 없던 시절이니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다
일본이 통치하는 가슴아픈일이 생긴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절에 일본 프랑스 러시아 미국 영국등등 일본이 아니였어도 누군가의 속국이 되었을것이라 본다.

운현궁은 안국역 바로앞에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종로3가쪽으로 내려가는길 왼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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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700원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한명밖에 없었다. 혼자 사색하면서 걸을수 있다는게 100년전으로
시간여행을 온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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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은 노락당,노안당,이로당으로 나누어져있다. 원래는 더 컸으나 사랑채들만 남겨두고
업무를 보단 곳은 덕성여대에게 팔렸다고한다. 이문은 노안당으로 가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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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노안당이다. 운현궁의 사랑채로 대원군이 일상에 거처한 곳이였으며 고종 즉위 이후에
대원군의  섭정기간동안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 되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건물안에는 당시생활을 재현해 놓은 마네킹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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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당에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방이 두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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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당 바로옆에는 경비를 맞던 치안담당하는 경호원 성격의 군졸들이 상시대기하고 있었다.
방이 너무 좁아보인다. 조선시대 최고계층이 거처하는 궁궐이지만 화려함은 찾아볼수가 없다.
그만큼 100년전의 한국과 지금은 천지개벽이 이루어졌다는 수준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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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런 공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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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당의 부엌인데 냄새를 맡아보니 곰팡이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루종일 저곳에서 있었을 하인들을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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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노락당이다. 락이 즐거울 락인가보다 이곳에서 각종 연회를 했다고 한다.
건물 너머로 드라마 궁에서 황태자부부가 살던곳으로 나온 서양식건물이 보인다.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이다.
툇마루에 걸터 앉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어린고종와 어린 민비가 뛰어놀았을 궁과
드라마 궁에서 나온 현대식궁~~

다음포스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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