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배우가 우리 곁을 떠나죠. 그런데 오늘은 글을 안 쓸 수가 없네요. 가수 신해철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한 동안 정신이 혼미했는데 어느 정도 예견은 했지만 그럼에도 슬픔은 준비 없이 흘러내리네요. 고마웠다는 말부터 나오는 배우입니다. 정말 큰 어른이자 삼촌이자 형님 같은 분이었죠.
한국 영화계는 거목 중의 거목을 잃었습니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쓰러져가는 한국 영화를 움켜쥐고 일으켜 세운 배우가 바로 안성기입니다. 80년대 당시만 해도 인기도 많았지만 다양한 영화에 출연을 한 다작을 해서 인지도는 무척 높았습니다. 여기에 연기도 잘하고 인품도 훌륭해서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은 분이었고 신인감독 영화에도 출연을 해서 감독들에게도 좋은 형님 같은 분이었습니다.
미소가 참 아름다웠던 배우 안성기

1987년 개봉한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 스틸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구본창 사진가입니다. 유럽에서 사진을 배우고 입국했는데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당시는 사진작가라는 개념도 희미했죠. 그런 그에게 영화 포스터 사진 및 스틸 사진 작업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한 배창호 감독은 80년대 한국의 삶을 리얼하게 담은 명 감독이었습니다. 한국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끈 감독이죠. 이 배창호 감독의 대학 동문이자 절친이 바로 구본창 작가입니다. 위 사진이 가장 안성기 다운 사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워낙 선 굵은 연기도 많이 하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한국 영화에 출연했지만 가장 어울리는 역할은 순박한 청년의 모습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눈물겨운 순애보를 담고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 순박한 지고지순한 청년의 이미지가 안성기의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이 사진을 선택한 분은 아내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남편의 사진이라고 해요. 그러고 보면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한가 봅니다.
고래사냥과 투캅스로 알게된 배우 안성기

80년대 베스트셀러 소설가였던 최인호 원작의 1984년 개봉한 영화 <고래사냥>은 당시 할리우드 영화가 영화관을 휩쓸던 시절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켰던 영화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는 방화(한국영화)를 만들어야 외화 수입권을 제공했습니다. 서로 좋은 외화를 수입하려고 한국 영화를 대충 만들어서 납품하기도 했죠.
그래서 질 낮은 한국 영화에 대한 편견이 꽤 심했습니다. 실제로 영화 수준이 많이 떨어졌죠. 군사정권이었던 70,80년대는 한국영화 암흑기였습니다. 반공 영화나 만들고 툭하면 사전 검열이 난무했던 시절이니 좋은 영화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에로 영화들이 참 많이 만들어졌고 극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라서 어른들이 성인관람가 영화들을 담배 뻑뻑 펴가면서 봤습니다.
그럼에도 이 엄혹한 시기에도 꽃은 핀다고 몇몇 한국 영화들은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고래사냥>입니다. 이 영화를 영화관이 아닌 명절 때 TV로 봤습니다. 지금 봐도 아주 좋은 로드 무비입니다. <삼포로 가는 길>과 함께 한국 최고의 로드 무비가 아닐까 해요.
이후 1993년 개봉한 빅히트작인 <투캅스>를 통해서 코믹 배우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꽤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더라고요. 또한 <미술관 옆 동물원>을 보면 당시에도 대스타였음에도 과감하게 조연을 하기도 합니다. 보통 주연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하려고 하지 않죠. 보세요. 한국 톱클래스 배우들이 갑자기 조연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좋은 배우들은 합니다. 좋은 배우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평생 스캔들 없고 한국의 3대 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다 타고 흥행 성적도 좋고 연기도 잘하고 인품도 좋은 완벽한 배우를 꼽으라면 다들 안성기 배우를 꼽을 겁니다. 흥행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거절을 못하는 성격에 한국 영화를 위해서 신인 감독의 영화에도 과감하게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지는 해임을 알고 스스로 물러서는 지혜를 가진 배우 안성기


안성기 배우가 아역 출신이라는 건 잘 아실 겁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1위에 꼽힌 <하녀>에서 아역으로 출연했죠. 안성기 배우 아버지가 영화 제작자이고 친구인 김기영 감독의 부탁으로 촬영장에 놀러 온 안성기가 아역을 합니다. 이후 몇 개의 영화에서 아역을 하다가 영화 출연을 그만두었다가 20대가 되어서 다시 영화계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때가 80년대 초였습니다. 안성기의 전성기는 80년대 전체와 90년대 중반까지입니다. 정작 한국 영화 제 2의 르네상스였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는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80년대 9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 영화를 이끄는 남자 여자 배우가 많지 않았다가 문민정부와 김대중 정부 이후에 영화계에 돈이 몰리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옵니다.
정작 한국 영화 전성기 시절에는 새로운 신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켠으로 밀리게 됩니다. 90년대 후반에 40대 중반이 되었으니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보통 탑스타들은 주연으로 생을 마감하려고 하지 조연으로 잘 출연을 안 합니다. 그러나 몇몇 배우들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알기에 알아서 조연으로 계속 영화판에 머무르죠.
안성기가 그랬습니다. 1998년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조연인 인공으로 출연하는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안성기 배우를 달리 보게 된 영화가 1998년 개봉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였습니다. 액션 영화에서 본 적이 없지만 완벽하게 킬러로 이미지 변신을 하자 영화관이 술렁거렸습니다.
저 배우가 안성기라고????
로맨틱 가이 안성기가 과묵한 킬러로 완벽 변신해서 돌아오자 안성기에 대한 극찬은 참 대단했습니다. 워낙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배역의 연기를 한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인 줄 알았지만 이렇게 넓은지는 몰랐네요.
뒤늦게 보게 된 안성기의 80년대 영화들을 보다

박중훈 배우가 안성기는 콤비라고 할 정도로 많은 영화를 같이 했습니다. 두 배우가 80년대 한국 영화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투캅스> 이전에 유명 연극을 영화로 만든 <칠수와 만수>가 있었습니다. 80년대 한국 영화는 에로 영화와 함께 사회 비판적인 영화들이 꽤 있었습니다. 군사 정권임에도 검열을 피하는 은유를 많이 담았어요.
그러나 80년대 다른 많은 안성기 영화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고전영화채널'에서 안성기의 80년대 영화들을 많이 올려놓았습니다. 그 영화들을 보면서 왜 안성기가 대배우인지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중 추천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인 <꼬방동네 사람들>은 왜 이 감독이 한국의 뉴웨이브인지 잘 보여줍니다. 이전에는 한국 사회를 정면으로 담은 영화들이 없었는데 이 영화는 8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사는 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야만과 폭력의 시대에서 나부끼는 민초들의 삶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잘 담았습니다. 이런 영화가 전두환 정권에서 탄생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하네요. 그 어려운 삶에서도 배려라는 희망을 잘 보여준 영화입니다.
선한 마음이 악한 마음을 이겨낸다는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
명숙은 도시의 한 빈민촌에서 구멍 가게를 운영하면서 삽니다. 그녀는 항상 검은 장갑을 끼고 있어서 검은 장갑이라고 불리웁니다. 학교를 두 번이나 퇴학 당한 아들과 새 남편과 살아갑니다.
photohistory.tistory.com

많은 사람들이 박중훈과 함께한 <라디오 스타>를 안성기 최고작이라고 하지만 전 이 작품을 꼽고 싶어요. 영화 자체보다는 안성기가 다시 연기자가 되게 한 영화라는 점에 큰 가산점을 줍니다. 영화도 물론 좋은 영화였습니다. 아역을 하던 시절 상처가 있었는지 안성기는 한 동안 영화계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청년이 된 후 외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베트남 관련 일을 하려고 했지만 베트남이 패망하는 바람에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이에 안성기는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옵니다. 참 우연이라고 하기엔 절묘하죠.
1980년 11월에 개봉한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지방에서 올라온 3명의 청년을 보여줍니다. 순박한 청년들은 서울에서 버티면서 살려고 하지만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이 힘겨운 서울살이를 잘 담고 있는 영화가 이 영화입니다. 특히 80년대 초 서울의 분위기, 한국의 분위기를 기록 사진처럼 아주 잘 녹여냈습니다.
70~80년대 그리고 지금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청년들이 많죠. 그들은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서울에 살면서 여러 멸시과 괄시를 당합니다. 지금은 서로 거리 두기를 하기에 텃새가 사라진 느낌이지만 80년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순박한 청년들이 급가속 중인 자본주의 열차에 올라탄 후 멀미를 하는 영화입니다.
. "서울에 와서 2년을 살았는디요. 한마디로 살아 볼 만한 뎁디다. 이렇게 맞다 보면 뭔가 알 것 같기도 해라우
2년 동안 보이지 않는 누군가 한티 줄곧 맞아온 것처럼 생각되는디요. 누구냐구유?
덕배 연기를 한 안성기를 보면서 덕배가 안성기이고 안성기가 덕배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연기 너무 좋았습니다.

80년대 감독하면 배창호와 이장호 감독이 가장 유명했습니다. 서편제의 임권택 감독도 있었지만 신진 감독은 이 2명이 가장 유명했습니다.
배창호 감독은 1984년 <고래사냥>으로 대박을 낸 후에 흥행 감독이 되었지만 1987년 <기쁜우리 젊은날>은 <고래사냥>과 괘가 꽤 다릅니다. 흔한 멜로 드라마라고 하기엔 좀 심심한 면이 있습니다. 순백의 영화라고 할까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함을 담았고 그 당시 유행하던 서사인 시한부 인생을 담은 점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안성기가 순박한 청춘과 사랑을 너무 잘 담아서 영화 자체는 참 고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배창호 감독의 친구이자 동문인 구본창 사진작가가 스틸 사진과 포스터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포스터 속 황신혜 사진도 구본창 사진작가의 사진입니다. 한국에서 인물 사진 잘 찍는 두 명이 있는데 한 분은 김중만 사진작가고 한 명은 구본창 사진작가입니다.
계속 인물 사진가로 남으셨으면 어떨까 할 정도로 정말 인물 사진 잘 찍습니다. 안성기 배우의 영정 사진이 이 촬영 장소에서 촬영한 안성기 배우의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안경을 안 끼시지만 이 배역에서는 안경을 끼고 나왔어요.
저 하늘에서 한국 영화계를 보고 계실 거목 안성기

사람 좋고 연기 잘하고 인품 빼어난 배우라는 설명으로도 부족한 배우입니다. 그 어렵던 한국의 80년대 영화계를 이끈 분이라서 더 기억해야 하고 간직해야 합니다. 이는 영화계 사람들이 더 잘 알죠. 영화 제작자 아버지 밑에서 영화계에 들어와서 많은 나이에도 영화계 행사에 참여해서 힘을 주었던 배우 안성기
저 하늘에서도 한국 영화계를 지켜보실 듯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아직 안 본 안성기 영화가 참 많은 것이 그나마 안성기 배우를 만날 시간이 좀 더 있다는 것이 마지막 행복이 아닐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