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많은 분야에서 일본과 비슷해지거나 앞서고 있지만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비슷해질 수 조차도 없는 분야가 바로 애니메이션입니다. 워낙 시장 자체의 차이가 크죠. 다만 한국이 웹툰 시장 쪽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화가 아닌 애니 쪽은 결코 일본을 뛰어넘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이를 한국도 잘 알기에 일본이 약한 아동용 드라마 애니 쪽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한국도 많은 시도를 했었습니다. 수많은 극장개봉용 애니를 시도했지만 대부분은 망했습니다. 그나마 성공한 것이 있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입니다. 한국도 애니 실력이 없는 나라가 아닙니다. 돈만 많이 쥐어준다면 잘 만들 수 있죠. 그러나 옆나라 일본이 워낙 잘하다 보니 투자조차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나마도 한국이 잘 했던 건 애니 하청업이었는데 애니 작화도 이제는 중국을 지나 동남아시아 쪽으로 넘어가면서 한국에서 이렇다 할 순수 창작 애니가 나오지 않게 되었네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한우물을 파던 한예종 출신 감독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지원 감독입니다.
한지원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애니 <이 별에 필요한>

2023년 6월 60분짜리 중편 애니가 개봉했습니다. 당연히 일본 애니겠지 했는데 한국 애니네요. 퀴어 애니인 <그 여름>은 입소문은 좋았지만 퀴어물 별로 안 좋아해서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어려운 한국 애니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분이 있구나 눈여겨봤죠. 그런데 이 한지원 감독이 넷플릭스의 은총을 받고 장편 애니를 선보였네요. 5월 30일 어제 오픈했습니다.

<이 별에 필요한>을 보면서 한국 애니의 한계와 아쉬움과 희망을 모두 느끼게 되네요. 애니 그 자체로 느껴지는 것이 반, 한국 애니의 현주소를 느끼는 것이 반이네요. 먼저 스토리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이 별에 필요한>은 205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은 화성을 갈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박사 주난영(김태리 목소리)와 뮤지션인 제이(홍경 분)의 로맨스를 담고 있습니다. 난영이 어머니의 유품 같은 턴테이블을 고치려고 세운상가에 왔다가 둘은 충돌하고 제이가 고장 난 턴테이블 부품을 구해서 고쳐주겠다면서 가까워집니다.

상점에서 나오다 우연한 충돌로 가까워진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이런 식의 우연으로 인연을 만들면 욕먹는 시대입니다. 이에 애니는 난영이 좋아하던 노래를 작곡한 것이 제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살짝 유치함을 비틀었지만 역시나 우연입니다.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부실합니다.
그렇게 가까워진 둘은 연인이 됩니다. 그리고 난영은 화성 탐사 미션에 참가하게 됩니다. 이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게다가 난영의 어머니는 화성 탐사를 하다 화성 지진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딸이 다시 화성에 간다? 좀 설정이 과격합니다만 그럼에도 이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스토리와 작화 모두 투박함이 꽤 보이네요. 그럼 따져보겠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애니를 보는 듯한 뛰어난 배경

저예산일 겁니다. 넷플릭스가 돈이 많은 회사라고 해도 검증도 안 된 한국 애니에 큰 투자를 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애니를 보다 보면 예산의 부족함이 꽤 많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칭찬부터 하자면 배경의 신인 '신카이 마코토' 애니처럼 배경이 엄청 화려합니다.
영상과 그림이 다른 점은 그림자 처리입니다. 그림은 그림자를 넣을 수 있지만 그림자가 없이 그리는 것이 가장 그림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향을 담으니까요. 그림자는 사진과 영상의 세계에만 가득 존재합니다. 그래서 마치 HDR 영상을 보는 듯한 화려한 빛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게다가 제가 자주 즐겨가는 세운상가 일대가 배경인데 이 공간을 멋지게 재해석 및 재현했네요.

물론 직접 하나하나 그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요즘은 배경을 영상으로 사진으로 촬영하고 그걸 변환해서 사용하니까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그렇고 이 <이 별에 필요한>도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보다 보면 광각 렌즈 화각의 장면이 꽤 많이 보입니다. 애니인데 렌즈 효과가 나온다는 건 원 소스가 영상이라는 소리죠.
물론 그걸 일부러 노려서 그릴 수 있지만 저예산으로 만드는 애니들은 그런 여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배경이 생동감 있고 현실감 있어 보입니다. 마치 실제 영상을 보는 느낌과 그 이상이 들 정도로 배경과 빛 처리는 일품이네요.

이 스틸 샷 뒤로 보이는 저 풍경이 바로 세운상가 옥상에서 또는 공중 보행로에서 보이는 풍경입니다. 반면 아쉬웠던 것은 두 주인공의 작화입니다. 보면서 왜 이렇게 못 생겼지? 너무 못 생겨서 몰입이 안 될 정도입니다. 보통 애니 주인공들은 거지도 왕자처럼 그리는데 너무 투박한 두 주인공의 얼굴에 아쉬움이 크네요.
물론 어디서도 못 본 듯한 개성은 있지만 대신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네요. <그 여름>의 두 주인공이 더 멋져 보이네요. 그렇다고 인물 작화력이 떨어지냐? 아닙니다. 중간중간 보면 일본 애니 속 주인공 같은 인물도 잠시 나오고 같은 난영도 몇 순간은 너무나도 매끈한 모습으로 담기기도 합니다. 그럼 예산 부족인 듯한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적응을 좀 하게 됩니다.
2050년에 대한 설정의 깊이가 얕다

마치 미대생이 담은 SF 로맨스 물 같다고 할까요? 2050년이라는 배경에 대한 설정의 깊이가 깊지 않네요. 근 미래라는 설정은 스마트 워치와 공중에 떠 있는 디스플레이와 홀로그램을 많아 활용합니다. 이는 일본 애니에서 본 설정과 참 비슷하죠.
그러나 이 애니가 다른 점은 SF라고 하기엔 실현 가능한 근 미래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좀 더 현실 기반으로 만들었으면 했는데 홀로그램은 이해해도 평면 디스플레이가 공중에 떠 있는 건 무리수라고 느껴지네요. 뭐 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터치하는데 톡하고 물리적 소리가 난다는 것은 설정 오류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화성에서 행하는 행동이 훈련받은 과학자의 행동이라고 하기엔 너무 독단적이고 이걸 질끈 감고 허용한다고 해도 기초적인 기본 상식에서 벗어난 모습을 애니 클라이막스로 사용하는 건 너무나도 아쉽고 아쉽네요. 과학적 조언이나 검증을 전혀 하지 않고 만들지 않았나 할 정도로 퀄리티가 떨어지네요.
사람들이 모를 것 같지만 하나하나가 다 몰입에 큰 요소인데 계속 실제 현실과 어긋나는 설정과 오류가 애니 전체의 재미도 깊이도 다 낮게 만드네요.
단순한 20대 청춘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음악하는 남자, 화성 가는 여자의 로맨스. 아주 빛나는 시절에 만나서 빛나는 이야기를 담고 싶은 열정은 잘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청춘 일기 느낌이고 무게감도 깊이도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기만 합니다. 다만 이걸 계기로 '신카이 마코토'처럼 큰 성장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응원도 동시에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음악을 이용한 두 연인의 이어짐은 좋긴 하네요.
배경은 정말 좋더라고요. 세운상가의 하나하나가 바로바로 떠올려질 정도로 좋네요. 그리고 더빙도 홍경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김태리는 영 적응이 안 되네요. 전문 성우와 두 배우의 톤의 차이도 그렇고요. 한국 애니의 단점 중 하나가 성우와 배우의 톤이 달라서 몰입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애니도 비슷합니다. 유명 배우를 기용해야 인기가 올라가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차라리 배우 말고 전문 성우 고용하고 그 돈으로 작화나 스토리 라인에 좀 더 투입하면 어떨까 하네요.
어차피 해외 관객들은 영어 더빙으로 볼거잖아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죠. 넷플릭스의 버프를 받아서 한국의 제2의 넷플릭스 창작 애니가 나왔으면 합니다. 요즘 한국 드라마 제작비와 배우 출연료가 높아져서 일본으로 많이 이동하는 넷플릭스인데 반대로 일본 애니 말고 한국 애니도 좀 투자를 해줬으면 하네요.
별점 : ★ ★☆
40자 평 : 배경만 빛나는 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