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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1천엔 화폐모델인 노구치 히데오 와 황우석 박사

by 썬도그 2008.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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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에서 빅히트했던  일본의 교수이자 과학저널리스트인 후쿠오카 신이치씨가 쓴
생물과 무생물사이라는 책에 푹 빠졌습니다. 처음엔 딱딱한 과학책일줄 알았는데  손을 놓지 못하겠더군요.

이 책에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걸 살짝 소개하겠습니다.

지금 일본의 1천엔화폐의 모델은  생물학자로 일본에서 영웅시 되는 노구치 히데오(1876~1928년) 가 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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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돈으로 하면 1만원짜리인데 가장 많이 쓰이는 돈일듯 합니다.
노구치 히데오가 누구냐면 그는 황혈병을 평생 연구했으며, 매독균을 발견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지에서 황혈병을 연구하다가 황혈병에 걸려 죽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젊은시절  뉴욕 록펠러대학에
다녔다고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이죠. 록펠러재단이 미국의학을 부흥시키기 위해 만든 대학입니다.
그런데 이 대학에  일본의 영웅인 노구치 히데오가 다녔고 수십년간 이곳에서  세균에 대한 연구를 합니다.

그런데 뉴욕토박이도 잘 모르는 대학에 최근들어서  일본깃발관광객들이 문을 두들기면서  노구치히데오 동상을
볼수 있게 해달라고 한답니다.  일본의 영웅이 다닌 학교가 이곳이기 때문이죠. 록펠러대학측은 아주 귀찮아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 노구치히데오에 대해 대학관계자들에 묻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대답을 꺼려하더군요
그 이유는 잠시후에 설명하구요.. 노구치의 입지전적인 일대기를 짧게 풀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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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치 히데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본의 대부분 가정이 그렇듯 그는 가업을 물려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삶을 거부하고 학업에 열중합니다.  어려서 얻은 화상으로 왼손은 불구가 되었지만 운이좋아서
미국의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록펠러대학에 입학하게 되죠.  그의 뜨거운 학업에 대한 열정은   논문을 200편이나 발표하는 엄청난 결과물로 승화됩니다. 노벨후보상까지 거론되기도 하며 파스퇴르의 뒤를 잇는
세균헌터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수많은 병원균을 발견하였고 덩달아 록펠러대학의 명성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는  오지에서 황혈병으로 죽게 되었구  록펠러 대학은  애정어린 장례식을 치루어 주었고  그의
흉상을 만들어 지금의 도서관에 두도록 합니다.

그런데 왜  록펠러 대학사람들은  노구치 히데오를 잘 알지도 못하며 알더라도 얼굴을 찌뿌릴까요?
그에 대한 재평가는 그가 죽은후 50년후에 이루어 지는데  그의 수많은 연구와 논문중에 가치가 있는것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연구가 다 잘못되었다는것이죠. 그가 발견했다는 병원균은 다 잘못된 연구의 산물이었다는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노구치 히데오에게 반론을 할수 없었습니다. 
노구치 히데오를 후원하는 사람이 바로 사이먼 플렉스너라는 당시 거물급 인사가 그를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의 연구가 왜 잘못 되었는지 한가지 예를 들어주겠습니다.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는 병중에는 세균이 일으키는 병이 있구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이 있습니다.
세균은 덩치가 커서 보통 현미경으로도 잘 보입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작아서  일반 광학현미경으로
보이지는 않고 전자현미경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노구치 히데오가 발견했다는  광견병과 황혈병은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입니다. 이 바이러스라는 정체는  일반현미경이 아닌 전자현미경일 개발된후  정확한
정체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노구치 히데오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전자현미경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구치 히데오는  병원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성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과 일본에 대한 왠지모를 적개심도 있었을것이구요. 여러가지 이유가 그를 그렇게 거짓연구를 하게 했을것입니다.
또한 연구방법도 틀렸죠.  눈에 보이는 병원균이 원인균인줄 알고  누명을씌워 옥에 가둬   내가 병원균을 잡았다고
세상에 발표했으나 정작 범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시에는 볼수없는 바이러스 였죠.  

노구치 히데오가 잘못된것은 병과 원인균을 찾는데 상관관계까지는 잘했으나  인과관계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노구치 히데오가 발견한 균을 이용해 병을 일으키는 것이 백이면 백 다 발생하는것이 아닌 발생할때도 있구
없을때도 있는데 히데오는 무조건 발생한다라는 인과관계로 혼자 슬쩍 넘어가 버립니다.

노구치 히데오의 학자로써의 양심도 문제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도 발견장비도 없는 시대적 배경도
있을것이구  성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그를 후원해주는 거물급 후원자가 있던것도 한 몫했을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사기꾼취급을 받고 최근에는 그가 결혼사기행각까지 했다는 책 (머나먼 석양)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에서는 그를 국민적인 과학자로 칭송하고   2004년도에는 1천엔모델로
씁니다.

좀 어처구니가 없죠. 일본인들이 집단적 최면에 걸린것일까요?  그가 생물학자로서 이렇다할 연구성과를 낸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가 일반인보다 우러러 볼수 있는것은 19세기말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선진의학과 학문을 배웠다는것 뿐입니다.  뭐 일본 특유의 죽음에 대한 예찬도 한몫했을것입니다.   병을 연구하다가 오지에서 죽다~~~~ 캬아
얼마나 드라마틱한 모습입니까 그래서 만화책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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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책 본 분들 많더군요.


얼마전에  종로에 있는 현대사옥을 지나가면서 어느 한무리의 시위대를 봤습니다.
그날이 아마 황우석박사 연구승인인지 뭔가가 결정되는 날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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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우석박사를 찾은 사람이 참 많더군요. 위에 사진에서 보듯이  한국인들중 88퍼센트가 
황박사의 연구를 다시 해야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노구치 히데오라는 인물을 보면서  한국의 황우석박사가 떠올랐습니다.
황우석박사도 수십년이 지나서 한국지폐에 모델로 올라갈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노구치 히데오는 이렇다할 존경할만한 구석이 없는데  전국민이 인지부조화에 걸렸는지
화폐모델로 썼을까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왜 일본인들이  노구치 히데오라는 인물을 존경하는지
아시는분 알려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노구치 히데오의 재평가가 있기전인 70년대에 이미 신격화가 이루어져서 그 신이된 사람을 땅으로 끌어내릴수
없다는게 일본인가요?  전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합니다.  한국과 일본 서로 으르렁 거리고 미워하지만 하는 행동들을 보면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사회시스템을 보면  너무나 비슷합니다.  민족의 성격은 많이 다르지만
집단으로 뭉뚱그려서 보면 비슷해 보인다는 생각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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