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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서울올림픽때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것들

by 썬도그 2008.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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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올림픽>NYT "베이징 올림픽 주도면밀한 연극" 기사보기

기사 내용은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 중국은 자신의 일상까지 바꿔가면서 더럽고 추악한것은 말끔히
지웠습니다. 마치 잡티많고 주근깨많은 미녀가 포토샵으로 백옥같은 피부로 태어난 느낌이죠.
베이징은 지금 거지와 불량건물, 심지어 공해물질 내뿜어낸다고 공장가동도 중단시켰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대형 쇼핑몰이나 심지어 나이트클럽도 올림픽기간동안에 열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

마치 우린 이렇게 살어~~ 라고 전세계에 알리는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집들이 한번 할려고  집을꾸미는것을 넘어서 발코니 확장하고  집을 리모델링한 모습이죠.
좀 상식밖이죠. 있던걸 고치고 꾸미는것은 상식이지만  집들이 할려고 리모델링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지금 중국은 그런 모습입니다. 저는 솔직히 개회식 비를 내리지 않게 할려고 인공적으로 비구름을
없앴다고 하는 중국언론의 말에 경악했습니다.  그렇게 올림픽이 중요하고 꼭 성공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과
얼마나 대단한 열정으로 이 올림픽을 준비했나하는 모습도 함께 느꼇습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것은  차량 2부제를 하고 쇼핑몰을 닫고  공장을 닫아도 정작 중국시민들은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이 뉴욕타임즈 기사 말미의 글에 머리에 땡하는 소리가 들리게 하더군요
한편 뉴욕 타임스는 올림픽 보안을 위해 베이징 곳곳에 배치된 경찰병력과 시민들에 대한 그들의 감시를 언급하며 " 경찰봉을 가지고 보행자들을 통제했던 서울 올림픽 때의 도를 넘은 상황만큼 심하지는 않다" (Yet the police presence is not nearly as intrusive as it was at the Seoul Olympics in 1988, when pedestrians were herded along with batons) 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을 비판하다가 88올림픽때의 서울을 걸고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추억의 88올림픽때 우리의 추악한 모습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 추억몇가지를 풀어보도록 하죠


1. 차량 2부제


일명 홀짝제라고도 하죠. 지금보다 차량이 적었던 20년전 88년 서울이지만 그때도 교통정체는 많았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강력하게 차량 홀짝제를 실시합니다.  이 모습 지금 중국과 비슷하네요. 다른 나라 올림픽할때도
이렇게 강력하게 차량통제를 했었나요?  10부제는 좀 이해는 가지만 홀짝제는 큰 불편을 줍니다.
하지만 88년 서울시민은 어느하나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택시기사를 하시는 제 삼촌도 그때 불평안하셨습니다.  나라가 하라니까 묵묵히 했습니다.  저 또한 그 모습이 잘못된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별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쾌적한 환경 외국인들이 교통지옥 서울을 생각하지 않길 바랬던 모습이었죠.
문제는 이게 인위적이라는게 문제였던것 같습니다.  88년전에 미국의 유명한 코메디언인 밥 머시기라고 (기억안남)
하는 미국 백인 할아버지 코메디가  서울이 어떻냐고 하니까   교통지옥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2. 개고기음식점을 숨겨라


아직도 논란이 있지만 한국의 개고기를 먹는 문화는 외국인들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먹으면 뭐 어때 하면서 당당하게 말할수 있지만 88년 외국인과 외국언론들의 지적에 우린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개고기음식점을 숨겨라.  올림픽 기간전부터 강력하게 단속하고 계도해서 거의다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개고기를 안판것은 아니죠.  이름을 바꿔서 팔았습니다. 기존에 개고기탕를 보신탕이라고 했다면
사철탕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판매합니다.  이름을 살짝 바꿔서 외국인들의 시선을 피했습니다.
저도 사철탕이 뭔지 몰랐습니다. 어른드이 그러더군요. 사철탕이 보신탕이라고 ㅠ.ㅠ 
뭐  외국인들이 싫다면 숨겨야죠.


3. 불량주택(판자촌)을 없애버려라.

중국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불량주택 즉 판자촌을 다 헐어버렸습니다. 제대로 보상이나 해주었나 모르겠네요
공산국가라 쉽게 공권력 동원해서 판자촌을 허물었을것 같습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그런일이 실제로 일어났구요.
하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년전 우리가 그랬습니다.  외국인들이 갈만한 곳은 다 재정돈하고
판자촌이 있는 지역은 공권력으로 마구마구 허물었습니다. 성화가 지나가는 동네에 판자촌이 있다고 상계동의
판자촌은 보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강제 이주시켰슴니다. 전국 200여개의 지역의 판자촌이 이렇게 공권력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 안에서 살던 주민들의 삶도 파괴시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경인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에서 땅을파고거기서 기거합니다. 상계동 올림픽이란 영화 아세요?  그 고통이 담긴 단편영화입니다.
자유국가인 우리나 공산국가인 중국이나 별로 다르지 않네요. 어린 저는 그 모습을 잠깐 봤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그런모습을 담지 않았습니다. 당시 어용방송이었던 KBS가 이런걸 방송할리가 없죠.
또한 어느 언론사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중국처럼 올림픽성공에 올인한 나라
였습니다. 상계동판자촌은 가려야 할것이지 알려야 할것은 아니라고 언론도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대학생들이 그 진실을 알릴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궁금하게 있습니다.
매일 데모하던 그 80년대의 대학생들이 왜 올림픽기간에는 데모한번 안했을까요?  어린 저는 그 진실을 잘
모릅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분들은 알겠지요.  어렴풋이 짐작하건데  사복,정복경찰이 서울전체에 쫙 깔렸을
것입니다.그리고 대학생인듯한 사람을 보면 불러 세우고  가방검사를 했고 데모를 원천봉쇄했을것이라는
짐작이 있습니다.  저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실분 댓글로 알려주십시요.


4.  태극기를 휘날리며  88도로를 청소해라


올림픽개최후 88자동차 전용도로가  한강변을 끼고 만들어졌습니다. 그 88도로가 생긴후 저는 한강근처에 있는 강남의 학교라고 해서 토요일 수업이 끝난후 노량진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돌맹이와 쓰레기를 주었습니다.
학생들의 노동력을  한푼도 들이지 않고 나라에서 그냥 퍼다 썼습니다. 당시에 토요일마다 재미있던 미드라마를
해주었는데 덕분에 못봤습니다. 강변 한강둔치를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할때 강건너편에도 한무리의 중학생들이
보이더군요. 저들은 강북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인듯 합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며 짱돌하나 들어서
한강물위로 던졌습니다. 내 울분을 던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성화지나간다고 태극기를 들고 길가에서 흔들었습니다.

뉴스기사를 보니 개막식때 20대 여자도우미가  3시간동안 박수치고 손흔들다가 쓰러졌다고 하더군요.
그 모습이나 내 중학교때 모습이나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마치 장학사 온다고  평소에 딱지 않던 나무로된 복도를 물왁스 칠해가면서 빡빡닦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전세계에서 장학사들이 온다고  서울을 대학생 시위의 나라, 군사정권의 나라를 평화의 나라 꿈의 도시로 만드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그당시는 그게 무슨 잘못인지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모습은 아니였네요.  동양인이라서 그런가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라.
서양인들보다 집단의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게 너무나 쉽고 그게 옳다고 믿는신념들
거대한 군사공화국 같았던 한국이어서 그랬나요? 위에서 까라면 까라는대로 해야만했던 모습들

중국올림픽을 보면서 서울올림픽과 너무나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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