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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강릉 선교장

by 썬도그 2008.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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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여행을 떠났는데 원래 주문진의 맹방 해수욕장을 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볼것이 없을것
같다는 생각에 강릉 경포대로 행선지를 바꾸고 바닷가로 갔습니다.  경포대갈떄 카메라 렌즈뚜껑 잃어버린 생각과 경포호수 보는 바람에  선교장을 못보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나오다가 보니까  선교장이라고 있더군요.  남산 한옥마을처럼 한옥이 너무 근사하게 서 있어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찾아가는 방법은  강릉고속터미널에서 시내버스 202번을 타고 경포대 전전 정거장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경포호수가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왼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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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강릉 선교장 홈페이지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이라는 소리에 솔깃하여 입장료 2천원을 내고 들어갔습니다.
사실 별 기대는 안했습니다. 고궁도 많이 다녀보고 운현궁도 가보고 남산 한옥마을도 가봐서 그저 그러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나올떄 정말 잘 들어왔다고 생각이 들정도로   고궁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은 고궁이 아닌 조선시대 양반집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한국식 정원도 봤구요.
이미지와 함께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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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야 물레야가 여기서 촬영했다고 하네요.  요즘 사극은 셋트를 만들어서 촬영하는데  이곳을 활용해도 좋을듯 합니다. 아주 한옥이 잘 보존되었더군요.


활래정


활래정은 1816년에 건립된 조선후기양식의 건축물입니다. 예전엔 이 연못의 물이 고여있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경포대까지 갔다고 하네요.  활래정에는 다실, 온돌방, 누마루가 있습니다.
아흑 저기서 녹차 한사발 하고 싶어질정도로 운치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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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연못이 있더군요. 여기에서 맹꽁이 소리가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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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래정안에 온돌이 있다는 증거가 바로 옆에 있떠군요. 굴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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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별당

외별당은 맏아들의 신혼살림이나  분가하기전의 작은아들 혹은 손자들이 놀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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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별당의 항아리들이  눈길을 사로 잡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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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곳보단 이곳 외별당은 좀 단촐해 보입니다.



이 선교장의 한옥은 남산 한옥마을과 같은 거대함은 없지만  사람들의 손떄를 타지 않아서 그런지 방금이라도
집주인이 버선발로 뛰어 나올듯한 정감이 있더군요.  또한  관람객이 저 혼자여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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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이곳은 사당인데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는 곳입니다. 길이 참 아름답더군요.  못올라가게 막아서 사진도 이게 최고의 각도에서 찍은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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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주옥


안채입니다. 조선시대 남존여비의 시대에서 고생을 하시던 여인들의 거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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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답게 항아리들이 뒷뜰에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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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칸 양반집답게 방들이 많더군요.  댓글의 함부르거님의 지적에 의하면 선교장만 예외로 120간 건물이라고 합니다. 댓글 달아준 함부르거님 감사합니다.

한명의 양반가문을 돌볼려면 얼마나 많은 종이 필요할까요?
이곳은 종들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저 방마다 사람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니  거대한 사람들이 있었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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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손님들이 오면 묵는 방인데  다른 방들보다 깔끔하게 해 놓았더군요.  조선시대 사람들 방을 보면
아주 좁습니다. 하도 좁아서 이런데 어떻게 살까 하는데  가진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니 방이 클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야원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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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뜰에서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벗삼아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네요.   이곳을 찍는데
산새소리가 들려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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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1815년 지어진 열화당은  선교당 주인인 남자들의 쉼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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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건물이 특이하죠?   앞의 테라스는 분명 한옥의 모습이 아니였습니다.  열화당의 앞의 모습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준것이라고 하네요.   러시아가 강릉까지 와서 선물을 해주다니 교통이 불편한
조선시대에 어떻게 왔을까 했는데  강릉이 바닷가라서 오히려 더 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접사렌즈 낀것 아닙니다.
정말 꽃이 큽니다. 세상에 이런꽃만 있으면 좋겟네요. 그러면 접사렌즈 안사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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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꽃인지 참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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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연못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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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기념품 파는곳인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자미재(맛을 내는집)

참 특이한 건물입니다.  기와도 아니고 돌기와로 얼기설기 기와대신 지붕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너와집과 비슷한것 같기도 하고  더 신기한것은 기와 사이로 풀들이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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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재를 인터넷에 검색하니  자세한 정보가 있네요

http://cafe.naver.com/kblee480.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029

조선시대에 만들어진게 아닌 96년도에 만들어진 집이네요. 삼척에서 적송과 폐가의 돌기와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곳에서  전통요리 강의를 했다고 하니   입과 눈이 황홀한 정말 멋진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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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을 만들고 체험할수 있는 민속 목공방입니다.  한적하더군요.
이곳말고도  아주 거대한 곳간도 있구  볼거리가 많더군요.

서울의 4대궁이 왕의 삶을 엿볼수 있다면 이곳 강릉 선교장은 조선시대 후기의 양반들의 삶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양반이란 신분은  정말 안정된 직장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마디로 준재벌이자 권력가였죠.    조선시대에서 귀족으로 산다는것은 과연 어땠을까
내 생각대로 놀고 먹고 마시고 하던 삶이였을까?  아니면  엘리트의식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흉년이 들면
자기들의 음식을 배풀고 지냈을까?   뭐 사람사는곳이 다 그렇지만 나쁜양반도 있고 좋은 양반도 있었곘죠.
조선이 몰락한 이유중에는 양반떄문이라는 말도 있듯이  결코 환영받았던 모습들은 아닌것 같네요

하지만 내가 찾아간 이곳 선교장의 주인장은 어떘을까 궁금하네요.  매일 경포호로 뱃놀이를 하고
지냈는지 아니면 백성들과 함께 더불어 살았는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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