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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사진에 관한 짧은 이야기

by 썬도그 2008.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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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한 짧은 이야기

내가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것이 언제가 처음이었을까?
아마 기억의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학교떄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친구녀석이 집에 놀러와서 내 앨범을 뒤적이면서  빡빡깍은 내 어렸을적 사진을 보면서 깔깔되고 웃던 모습
그때 나도 내 어렸을적 사진을 보면서 느꼈는데  핀트가 나간 사진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사실에 놀랐던적이
있다. 내가 담긴 사진을 찍어준  부모님들이  카메라를 어디서 빌려와서 찍어준것인데  사진들이 다 핀트가 나갔다. 아마 수동카메라가 아니였을까 한다.  핀트만 나간게 아니다. 구도도 형편없다. 인물사진을 찍으면서
인물은 좁살만하게 나오는것도 있구    지금생각해보면 중학생이던 나는 부모님들을 원망했던것 같다.
사진하나도 제대로 찍지 못한다면서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여행을 경복궁으로 갔는데  내가 친구들을 찍어주게 되엇다. 친구들은 구석에서
V질을 하면서 연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상,인화후 나에게 들려진 사진은  한쪽 구석에 쳐박혀
있는 친구들의 사진이었다.   나 또한 사진을 잘 찍는것이 아니엿다.  자책할것은 아니였다. 사진을 많이
찍어보지도 않았구   지금같이 맘에 든다고  혹 기록으로 혹 기념으로 핸드폰을 꺼내 간편하게 사진을
찍는 시대가 아니였다. 80년대는 그랬다. 사진이라는것은 특별한날 그러니까 졸업을 한다거나 입학을 한다거나
소풍을 간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특별한 날이어야만 찍는게 사진이었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난 무척 자책을 했던것 같다. 내가 찍은 수많은 사진중에 위의 사진이 내 무덤속까지 가져갈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사진이 잘찍어서가 아니다 너무 못찍어서 내가 사진을 배워야 겠다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니까.
찰나가 영원하게 기록된다는 80년댄의 코닥필름 선전문구처럼 이 찰라가 나에겐  사진을 영원히 사랑하게
만들었다.  (80년대라서 아직 일제가 새운 중앙박물관 건물이 있다.  김영삼 정부떄 저 건물은 철거된다)

위의 사진을 다시 캐논 복합기 MP610으로 스캔해서 보니  정말 못찍었따. 컨트라스트는 너무 강하고
하늘은 흐린 날이지만 노출 오바가 되어버리고   그 당시 유행했떤  비닐스포츠가방은 한켠에서 주인공인양
뻐기고 잇다.    이 사진을 친구들에게 인화해서 주면서 친구들은 얼마나 원망했을까?  오랜만에 앨범을 뒤적이니  원망하진 않았을것 같다.  사진중 반정도가 이런 사진들이다.  누군가가 나를 찍어서 나에게 준것일텐데
핀트 나가고  플래쉬 잘못 터뜨려서 하얗게 나오고 ...


그리고 대학을 들어갔다.  
공대라서 여자가 궁했다.  중고등학교를 남자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다보니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증폭되어
있었고  바싹 마른 장작과도 같았다.  그러나 대학교도 공대에 진학하다보니  과에 여자는 한 두명있었다.
이렇게 군대에 가면  이세상엔 XY염색체만 지닌 사람들만 있는줄 알것 같았다.

3월의 교정은 정말 싱숭생숭하다.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와 목련을 보고 있으면
그래서 선택한것이 동아리다. 
여러 동아리를 다녔다.

낚시동아리에 들어가서 가입원서만 쓰고 안올라갔다.  그리고 두번쨰로 들어간곳이 사진동아리였다.
사진동아리의 문을 여니 남자선배가 나를 접대했다. 몇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고  동아리 벽에 걸려진 사진들을
쭉 훓어봤다.  사진을 모르는 나에게  액자에 끼워진 흑백사진들은 경이로웠다.  와~~ 대단하다.
나도 저런사진들을 찍을수 있을까?  얼핏 고등학교떄 사진이 생각나면서 가입원서를 썼다.
같이 올라간 과동기녀석이  여자회원은 많은가요? 라고 질문을 했다. 짜슥 고맙게도 알아서 물어봐주는군.
여자회원이 2이면 남자는 1이라고 간단명료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후에 올라가지 못했다.
선배는 점신시간떄 밥먹고 시간나면 올라와서 놀다가 가라고 했지만  쑥맥인 나에겐  먹히지 않았다.
다만 선배가 가입원서후에 전해준 A4용지에 프린트한  동아리 신입생환영회 일자와 장소 날짜를 적힌 용지를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3월말  신입생환영회때 동아리에 올라갔다. 수많은 신입생들이 모였다. 다 처음보는 얼굴이다.
신입생 환영회전에  선배들과 얼굴을 익히고 자주 올라간 동기녀석은 연신 너슬레를 떨고 있따.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떨리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생겼다.
집에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꾹 참았다. 이 통과의례만 지나면 사진에 대해서 배우고  이성친구를
만날수 있다는 일념으로 버티었다. 정말 버티었다는게 맞는말이다. 다들 친구들과 함께 동아리에 가입했는지
같은과 친구들하고만 이야기를 한다.   보다못한  선배가  일부러 찍어놓아서 자리배치를 했다.
나는 찢어질 친구도 없었다. 같이 가입한 과동기는  낚시동아리에 들어갔으니까

그리고 희멀건한  빛바랜 사진처럼 오래되고 지루한 레크레이션 시간이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엉덩이로 이름쓰기 같은거?  뭐 그런류이다.

그런데 그떄 너를 봤다. 
첫눈에 반한다는게 이런거였던가?  레크레이션으로 하면서 시선은 너에게만 촛점이 맞추어졌다.
모든 사물은 블러처리가 되거나 아웃 오브 포커스가 되었다.  스팟라이트가 너에게만 비추는듯하다.
사랑에 빠진 나~~  그리고  사진에 빠진 나~~   이게 동시에 가능할까?  가능하다.  사랑을 하는 모든사람은
사진을 사랑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를 본 사람은 안다.  그걸 기록해야 하는 의무감이
생긴다.  의무감만 있구 카메라가 없으면 카메라를 사야한다.  그건 인간의 본능이다.  정 없다면 친구의
카메라를 빌리던가  사진찍기를 부탁해야 한다. 이를 외면한 자에게는  훗날  후회의 한숨이 보답으로 돌아온다

내가 사진을 배워야겠다는것을 넘어서 좋아하게 된것은 바로 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를 만난후였다.
매일 봐도  닳도록 봐도 새로운게 그 사랑스러운 피사체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앵글로만 잡으면
지루해질수 있다.  내가 사진에 대한 기술이 가장 혁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진화했던  시기도 그 시기였다.

인화를 할떄 인화지를 가위로 잘게 잘게 잘라서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모자이크로 인화할수 있었던것은
바로 그 얘  떄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폭발적인 사진에 대한 열정을 평생 단 한번뿐인듯 하다.   그렇게 그애와 사귀게 되었는데
그 기간은 단 한달이었다.  주변에서 머뭇거리다가 시간 다 보내고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그 한달동안 사진 한장 못찍었다.  지금이야 디카로 얼굴을 맛대고 찍을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 사진동아리에 있으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뭐에 홀린 시간들이었다.  대신 그 얘가 전해준 사진을 가지고 군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두번쨰 외출떄 헤어졌다.   자길 구속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어쩔수 없었다.  탈영할 위인도 아닌 나에게는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다. 모든 사물들이 흔들리게 보였다.   셔터를 누를떄 생기는  블랙아웃이 내눈앞에
일어났다.  그 블랙아웃이 몇달을 갔다.  온통 사물들은 노출언더로 보여지게 되고  한숨만 나왔다.
매일 군대에서는 핀트나간 행동을 한다면서 구타와 갈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울었다.
그냥 모든게 억울하고 슬프고  억장은 무너져서 흘러가 버리고  그냥 모든게 엉망이었다. 카메라에 필름이 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사는것 같았다.   그 눈물 떄문이인지  모든게 명료해지기 시작했다.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화각이 넓은 광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줌렌즈로 그 얘만 보고 살다가
이젠 세상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얘와 사긴 그 짧은 한달동안  친구들은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했다. 친구들은 안보이고  온통 여자에 미쳤다고 했었다.   줌렌즈로 그얘 얼굴에만 맞추고 살고 있었는데 친구이고  가족이고 뭐건 들어오지 않는다.
헤어진후 그얘에게 맞추었던 줌렌즈를 버려버리고 광각렌즈를 꺼내서 세상을 보게 되었다.
찰학서적을 읽었다.  왜 내가 고통스러운지 답을 해줄것 같았다.  내 고통의 근원을 찾는 여행이 시작되었구
많은 답을 구하고 얻었다. 안보이던 친구들도  다시 내 화각에 들어오고    미안했다고 전하는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친구들 결혼식이나 여행을갈떄는  열정을 다해서 찍어주었다.
한사람에게 맞추었던 촛점을 여러 피사체에 맞추게 되었다.  한사람에 맞추었던 그 열정으로
여러사람에게 맞추고 있다.  지금은  또다른 사랑하는 피사체를 위해 더 진화되고 있다.  당신은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기록해야할 의무를 느낀다. 

오늘 집에오는 버스안에서  첫사랑을 닮은 여자를 봤다.  눈의 조리개가 확장되면서  주변사물이 아웃포커스
처리가 되었다. 그리고 예전의 추억들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추억은 동영상이 아닌 사진으로 남는다고 하던데 .  그 얘는 지금 뭘 하고 살고 있을까?
나에겐 26살의 겨울 까실한 목도리를 두른 모습으로 박제된 그얘   
그리고 사진에 열정을 심어준 그 이름.  그 모든 허물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얘의 이미지는
가우시안 블러로 더 화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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