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같은 고궁은 한복을 입은 관람객에게는 입장료 3,000원에서 1,000원을 받지 않습니다. 2010년대 초만 해도 이걸 아는 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안다고 해도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만 입는 한복을 평일이나 주말에 입고 경복궁 같은 고궁에 가지는 않죠. 

2012년 가을, 단풍을 촬영하기 위해서 경복궁에 들렸습니다.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찾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복을 입고 고궁을 방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니 1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고생들은 한복을 입고 집에서 출발해서 전철을 타고 왔나 봅니다. 한복을 입은 여고생들은 인기 스타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지켜보면서 한복의 아름다움이 진짜 한국의 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이 2012년 전후로 여고생들 사이에 한복을 입고 고궁을 방문하는 것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명절이 아닌 평범한 날에 집에서 한복을 입고 고궁을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복 놀이 문화는 점점 퍼지고 퍼져서 평일에도 주말에도 한복을 입고 고궁은 물론 근처에 있는 북촌 한옥 마을에서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집에서 한복을 입고 오는 여고생이나 20대들에게 퍼진 한복 놀이였습니다. 


이 한복입고 고궁 방문하기 놀이가 점점 퍼지자 경복궁 주변에 한복 대여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2014년 전후로 기억됩니다. 사진 갤러리 자리에 한복 대여점이 들어서는 등 한복 대여점은 점점 늘어다더니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한복 대여점에서 한복을 3시간, 반나절, 하루 등의 다양한 대여 시간을 제시하고 한복 대여비를 받았습니다. 한복 대여비가 싸다고 할 수 없지만 4대 고궁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기에 고궁 입장료를 빼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였습니다. 특히 한복을 입어보고 싶으나 대여하는 곳이 없어서 못 입었던 외국인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물론 내국인들도 한복 대여점에서 한복을 대여 받아서 고궁 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이 한복 대여점에서 대여하는 한복들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전통 한복이라기 보다는 퓨전 사극에서 나오는 화려함만 강조한 기이한 한복이나 어우동 같은 기생들이 입는 한복을 대여해주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입는 사람들은 그 옷이 어우동 같은 기생들이 입는 한복이라는 것을 모를 겁니다. 그냥 화려하니까 입는 것이겠죠. 


여전히 단아한 전통 한복을 대여하는 곳도 많지만 점점 전통 한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화려하고 정체 모를 한복들이 계속 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남자들의 한복도 등장합니다. 왕, 호위무사, 도령, 양반 등등 다양한 한복을 대여하기 시작했고 남자들도 한복 놀이에 동참하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한복은 볼 거리가 전각 밖에 없는 고궁에 활력소가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과한 한복, 한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상상력이 많이 들어간 퓨전 한복, 기생들이 입는 한복을 한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년부터는 이 한복 놀이도 한 물 갔는지 한국인들 보다는 외국인들이 더 많이 입고 다닙니다. 이제는 한복 입고 고궁 방문하기가 하나의 외국인을 위한 관광상품이 되었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이 정체 모를 한복, 퓨전 한복의 고궁 무료 입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종로구청은 '우리 옷 제대로 입기 토론회'를 통해서 전통이 아닌 것에 혜택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공감합니다. 전통 한복을 제대로 알려줘야 한국 여행을 끝나고 돌아가서도 한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습니다. 

한복 대여점에서 대여해주는 한복들은 전통 한복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코스튬 플레이 같은 느낌입니다. 이렇게 종로구청이 전통 한복만 고궁 무료 입장을 허용하겠다는 자세를 취하자 한국관광공사는 관광객이 줄어든다면서 난색을 표했습니다. 또한 젊은 분들은 화려한 개량 한복이 더 아름답고 화려해서 사진 찍기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량 한복, 전통 한복을 가르는 기준이 뭐냐고 되묻기도 합니다.

공감이 가는 질문입니다. 지금은 전통 한복을 넘어서 개량 한복도 입장이 가능하다는 가이드라인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한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너무 심한 변형의 한복까지 국민들의 세금으로 무료 입장 시켜주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경복궁 입장을 관리하는 곳에서 전통 한복 가이드를 제시하고 한복 대여점에게 가이드를 배포한 후 전통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은 기존처럼 무료 입장을 허용하고 전통 한복 가이드에서 벗어난 개량 한복이나 정체모를 한복, 코스튬 한복들은 다른 관람객들처럼 입장료를 받게 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래봐야 경복궁과 창덕궁이 가장 비싼 3,000원이고 덕수궁이나 창경궁은 1천원입니다. 

이렇게 차별화를 두면 좀 더 많은 관광객들이 무료 입장이 가능한 전통 한복을 선택할 겁니다. 전통은 지킬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예쁨만 추구하면 전통이 아닌 하나의 액세서리가 됩니다. 유럽에서도 전통 의상을 대여해주는 곳들이 있습니다만 전통 의상을 제공하지 변형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복이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치마가 너무 끌리는 불편함도 있고 치마의 폭을 잡아주는 코르셋 같은 것이 없어서 걷기 편하지 않습니다. 이 불편함 정도만 개선한 한복까지는 전통 한복으로 해주는 건 어떨까 합니다. 물론 편의 때문에 전통 한복의 틀을 훼손 해서는 안 됩니다.

관광 자원이 많지 않은 한국에서 그나마 자생적으로 생긴 한복 놀이라는 관광 자원을 잘 조율해서 계속 활용하면서 동시에 전통도 지켰으면 합니다.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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