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기가 왔습니다. 왜 사는 거지?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일까?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서 10시에 퇴근하는 일이 반복되자 사는 이유에 대한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매일 야근을 하다 보니 특별히 야근할 일이 없어도 습관적으로 야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야근을 안 하면 하루가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주 가끔 보통의 회사원들이 퇴근하는 오후 7시에 퇴근하면서 만난 퇴근길의 지옥철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심부름 지시를 받고 나 혼자 궤도에서 벗어나서 고요한 복도를 지나는 일탈의 괘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불태우다가 주말이 되면 의무적으로 만나는 듯한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일요일은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번아웃 증후군에 걸렸습니다. 아무리 충전을 해도 충전이 안되는 고장난 배터리처럼 아무리 쉬어도 마음의 병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좀비처럼 다니다가 무단 결근을 했습니다. 며칠 지난 후 회사에 출근한 후에 그런대로 지내다가 사표를 내고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만약 그런 내 상태를 누군가가 알아채고 잡아주었다면 좀 더 오래 다닐 수 있었을텐데 아무도 내 상태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회사는 내 영혼을 파먹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직장부터 쭉 그랬습니다. 최근 1주일에 52시간 근무제를 법으로 명시한 대한민국이 놀라웠습니다. 이게 가능한 것일까? 평생 회사에서 일하고 회식하다 가정을 여관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가득한 나라가 아니였던가?. 한국도 이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물론 '구로디지털 단지의 등대'라고 불리는 모 게임회사가 여전히 존재하기에 갈길은 멉니다. 그러나 법으로 정했다는 자체가 아주 중요합니다. 

영화 리뷰는 안 하고 웬 사적인 이야기냐고요! 네 사적인 이야기지만 직장을 다니는 분들은 제 말이 사적이지 않을 겁니다. 다 우리들 이야기니까요. 한국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입니다. 여기저기 번아웃 증후군에 걸린 직장인들이 좀비처럼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이런 직장인들에게 약간의 힘 또는 위로가 되는 영화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입니다


블랙기업에 다니는 다카시, 죽을 순간에 야마모토를 만나다

아오야마 다카시(쿠도 아스카 분)은 광고 인쇄물을 제작하는 회사에 다니는 평사원입니다. 취직하기 어려운 세상이라서 적성이 맞지 않고 독사 같은 상사가 있는 회사지만 묵묵히 다니고 있습니다. 

아오야마가 다니는 회사는 전형적인 블랙 기업입니다. 블랙 기업이란 과도한 야근은 기본 폭압적이고 군대 같은 회사 분위기는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영업사원인 아오야마는 회사에 보탬은 되지 못하고 피해만 준다면서 상사에게 매일 같이 깨집니다. 

깨질 수 있습니다. 깨질 수 있는데 폭력과 심한 언어적 모욕을 다른 사원 앞에서 합니다. 매일 깨지지만 상사의 지시에 따라서 혼자 남아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합니다. 점심은 회사 건물 옥상에서 혼자 합니다. 이런 블랙 기업에 다니다 보니 아오야마는 정신이 피폐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머니가 보내준 포도는 날파리가 들끓고 은둔형 외톨이처럼 방 가득히 쓰레기를 방치하고 삽니다. 

번아웃 상태에서 그날도 상사에게 신랄하게 깨진 후 집으로 가는 전철역에서 멍하니 걷다가 다가오는 전철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야마모토(후쿠시 소타 분)가 달려와서 아오야마를 플랫폼 안으로 끌어 당깁니다. 죽음의 순간에 생명을 구해준 야마모토, 야마모토는 아오야마에게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면서 술 한잔 하러 가자고 부축입니다. 아오야마는 황당했습니다. 기억에도 없는 동창이 갑자기 등장해서는 자신을 구해줬고 둘은 그렇게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친해집니다. 

술집에서 친한 친구에게 야마모토 이야기를 했더니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 온 야마모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친구에게 확인을 받고 둘은 친한 친구가 됩니다.






야마모토는 상당히 활달한 친구입니다. 보자마자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하더니 주말에는 아오야마가 혼자 사는 집에 찾아와서 놀러 가자고 합니다. 기성 양복을 입고 짜여진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사는 야오야마에게 헐렁한 반팔 남방을 입고 찾아와서는 마트 카트 타는 놀이를 하고 튀는 색깔의 넥타이를 골라주는 야마모토. 아오야마는 이런 붙임성 좋고 활달한 야마모토에 동화되어서 우울을 떨치고 점점 활력을 얻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전화가 오고 실제 초등학교 친구인 야마모토는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는 연락이 옵니다. 아오야마 앞에 있는 야마모토는 누구일까요? 이런 사실을 야마모토에게 말했더니 야마모토는 순순히 자신은 아오야마의 친구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친구처럼 지냈으니 이제부터 친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묻죠. 

아오야마는 친한 친구가 없었고 있다고 해도 야마모토처럼 진심으로 대해주고 살갑게 대해주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판 모르던 두 청년은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아오야마는 야마모토의 존재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합니다. 놀랍게도 야마모토 준은 3년 전에 블랙 기업에 다니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그럼 내가 만나는 야마모토는 유령일까요?






번아웃 증후군을 앓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영화

소설이 원작인 작품으로 국내에도 출간되었습니다. 소설로 읽을 기회가 있었지만 영화로 먼저 보게 되었네요.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제목이 아주 강렬합니다. 회사 관두는 것을 마치 화장실 갔다 오는 정도로 말하는 제목에 훅 끌립니다. 동시에 나도 그러고 싶다라는 생각도 동시에 듭니다.

죽지 못해서 당장 먹고 살 걱정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아도 일이 너무 짜증나도 꼰대 같은 상사가 있는 회사에 나가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천근만근의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합니다. 그럼 영화에서 실제로 그러냐? 예상과 다르게 영화 후반에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아오야마는 야마모토와 지내면서 서서히 변해갑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심혈을 기울이고 공을 들인 거대한 광고계약을 따내지만 발주 실수로 아오야마는 큰 위기에 봉착합니다. 발주 실수로 인해 회사에 큰 피해를 주자 상사는 다른 직원들 앞에서 엎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크게 말합니다. 보는 내가 불편할 정도로 아오야마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다시 아오야마는 죽음을 떠올립니다.


그때 다시 야마모토가 찾아와서 니 삶은 너의 것만은 아니라면서 네가 죽으면 남은 가족은 눈물로 남은 세월을 보내게 된다면서 손을 내밉니다. 아오야마는 야마모토가 궁금했습니다. 3년 전에 죽은 야마모토 준이 유령으로 환생한 것일까?

야마모토는 진지하게 아오야마에게 말합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회사 관 두는 게 어때" 쉽지 않겠지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회이자 희망이고 삶은 살아 있으면 어떻게 든 살아가게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아오야마는 오랜만에 고향집에 방문해서 부모님을 만나고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야마모토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한국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을 아주 좋아하죠. 엄청난 반전이나 놀라운 비밀을 기대합니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엄청난 반전이나 비밀이 있지 않습니다. 약간의 트릭이 있지만 그렇게 놀라운 비밀은 아닙니다. 게다가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후반에 굵은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눈물의 정체는 공감입니다. 나도 저랬는데.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다 큰 어른에게 고민과 고통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회사 생활로 지친 직장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영화입니다. 이 회사가 아니라도 괜찮아. 당장 백수가 되어도 괜찮아. 니 영혼을 갉아 먹는 회사를 뛰쳐 나와서 살아만 있으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거라고 속삭입니다. 

넥타이를 멘 회사원이 아이처럼 방방 뛰면서 번화가 건널목을 건너는 장면을 본적 있어요? 전 그 사람에게 참 고마워요. 야마모토는 아오야마에게 큰 희망을 보고 기운을 차립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함께 공진화하는 관계. 야마모토와 아오야마는 그렇게 서로에게 기쁨과 희망이 됩니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투박합니다. 야마모토의 의뭉스러움으로 전반부를 끌고 가지만 기교가 뛰어난 스토리는 아닙니다. 또한 대단한 사건 사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메시지는 강합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다니기 힘든 회사라면 죽지 말고 그만 둬!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 될 수 있지만 길은 한 가지가 아니라고 속삭여줍니다. 

지친 어깨를 하고 억지로 회사 다니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살아 있는 자체가 희망이고 기회야.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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