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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어느 가족의 쇼타가 오사무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은 이유

by 썬도그 2018.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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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인 <아무도 모른다>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섞어 놓은 듯한 작품입니다. 원제가 '도둑 가족'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혈육이 아닌 가족이 진짜 가족보다 더 정겹게 사는 모습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혈육이 아닌 가족도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혈육이라서 따뜻함도 깊게 느끼지만 혈육이 주는 상처는 그 누구보다 차갑고 상처가 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교사가 부모라고 합니다.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자식이 길러지고 나쁜 부모에서 나쁜 자식이 길러집니다. 부모 팔자 반 팔자라고 부모 잘 못 만나서 고생하고 고통 받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최악의 부모는 자기 자식을 버리는 부모입니다. 천륜을 이기는 강하게 못 되고 드럽고 비열하고 추잡한 인간들입니다. 그런 인간들은 근처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어느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선택한 가족입니다. 보통 가족은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언제든지 떠나도 되고 언제든지 돌아와도 됩니다. 또한 상처 받는 일이 발생하면 혈육으로 이루어진 가족보다 쉽게 떠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혈육보다 혈육이 아닌 가족이 더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오사무는 아들 같은 쇼타에게 아빠라고 해보라고 하지만 쇼타는 끝까지 아빠 대신 아저씨라고 합니다. 왜 쇼타는 아빠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아래 글은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 보신 분만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쇼타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는 오사무는 왜 아빠가 되고 싶었을까?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지만 쇼타는 쇼타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 같은 오사무와 함께 마트에서 도둑질을 합니다. 쇼타는 빨간색 도요타 차와 함께 부모가 버린 아이입니다. 오사무의 아내인 노부요의 표현을 빌리면 버린 아이를 주워왔습니다. 쇼타는 오사무와 노부요에게 세상을 배웁니다. 학교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오사무의 말을 찰떡같이 믿습니다. 

도둑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둑질도 나쁜 행동인지를 잘 모릅니다. 오사무는 진열대에 있는 물건은 가게 주인 것도 손님 것도 아닌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의심이 가지만 도둑질이 크게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엄마 같은 노부요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가게가 망하지 않을 정도의 도둑질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말로 쇼타를 안심시킵니다.


어떻게 보면 오사무는 나쁜 행동을 어린 쇼타에게 가르치는 나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영화 후반 검사 앞에서 배운 것이 도둑질 뿐이였다는 말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살짝 드러냅니다. 그렇다고 쳐도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은 나쁜 행동입니다. 더구나 새로 데리고 온 유리라는 5살 여자 아이에게도 도둑질을 가르칩니다. 이런 행동을 가족 누구도 말리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오사무도 노부요도 폭력에 노출된 불우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폭력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폭력에 움추린 유리의 행동에 그 누구보다 마음 아파합니다. 오사무, 노부요 부부는 자식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쇼타와 유리를 거두어 키우면서 이 부부는 자식이 없는 것에 대한 대리 만족을 했습니다. 

"낳았다고 다 엄마는 아니잖아요"라는 노부요의 항변은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자식을 낳지 않았지만 유리와 쇼타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노부요 그리고 오사무. 그래서 오사무는 쇼타에게 아빠라가 불러보라고 어르고 달래보지만 쇼타는 고민을 하지만 결코 오사무를 아빠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쇼타는 오사무를 아빠라고 부르기를 고민했을까요?


친부모가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던 쇼타

쇼타가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해도 오사무 아저씨가 아빠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빠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쇼타는 자신이 어떻게 오사무 아저씨와 함께 살게 되었는 지 잘 모릅니다. 주차장에 있던 자신을 아저씨가 데리고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친 부모가 쇼타를 잃어 버린건지 키우기 싫어서 버린건지 모릅니다. 

쇼타에게는 친부모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약간의 희망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감옥에 간 노부요 아줌마가 교도소로 쇼타와 오사무에게 찾아오라고 한 후 쇼타에게 구체적으로 "도요타 빨간 자동차에서 버려져 있던 널 데리고 온거야"라는 구체적으로 버려진 아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노부요는 쇼타가 상처 받을 수 있지만 친부모를 찾고 싶으면 찾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이 말에 쇼타는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친부모가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했는데 친부모가 자신을 버린 것을 확인하게 되자 친부모 찾기를 포기합니다. 


도둑질이 나쁜 행동임을 알게 해준 구멍가게 할아버지 

쇼타는 가족 모두 도둑질을 나쁘게 보지 않기에 도둑질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게 그날도 여동생 같은 유리를 데리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눈짓을 주고 유리가 도둑질 하는 걸 돕습니다. 그날도 그렇게 쉽게 도둑질에 성공하고 가게를 나가려는데 할아버지가 두 아이를 불러 세웁니다.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쇼타를 혼내지 않고 동생에게는 시키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지금까지 가게 주인 할아버지는 쇼타의 도둑질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쇼타의 사정을 알아서인지 도둑질을 눈감아 주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 충격을 받은 쇼타는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한 말을 오사무 아저씨에게 말하지만 오사무 아저씨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나마 노부요 아줌마는 가게가 망하지 않을 정도만 훔치는 건 괜찮지 않을까?라는 말을 합니다. 안심이 된 쇼타, 그러나 며칠 후 그 구멍가게에 가니 상중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고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상중이기에 며칠 후면 다시 가게가 열리지만 상중이라는 단어 뜻을 모르는 쇼타와 유리는 자신들의 도둑질이 가게를 망하게 했다는 충격을 받습니다.

며칠 후 다시 쇼타는 마트에서 도둑질을 하려고 하지만 유리에게는 들어오지 말라고 합니다. 도둑질이 나쁜 행동임을 알게 된 쇼타는 유리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빠 같은 쇼타를 돕기 위해 유리는 마트에 들어와서 도둑질을 하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쇼타는 일부러 물건을 흐트러트리고 물건을 훔쳐서 도망가다가 마트 직원에게 걸립니다. 

쇼타는 이제 도둑질이 나쁜 행동임을 압니다. 이 사실을 오사무 아저씨에게 말하지만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이러다가는 이 도둑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넘어서 유리까지 계속 도둑질을 하는 것이 싫었던 쇼타는 도둑질을 하다가 걸리는 방법으로 이 도둑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쇼타가 도둑질 하다가 걸린 후 도둑 가족은 경찰에 적발되고 유리 유괴 사건으로 큰 화제가 됩니다.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어린 쇼타의 도둑질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으면 쇼타가 변했을까요? 할아버지가 경찰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타이르듯 말한 그 모습에 쇼타가 충격을 받고 변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회초리보다는 나즈막하게 눈감아 주면서 타이르듯 말하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도둑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아빠를 내려 놓을 때 아빠라고 부른 쇼타

아내 노부요가 모든 죄를 뒤집어 써서 오사무는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정부 지원의 위탁 가정에서 살게 된 쇼타는 혼자 사는 오사무 아저씨 집에서 하룻밤을 잡니다. 오사무는 쇼타에게 다시 아저씨로 돌아갈께라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아빠가 되고 싶었던 오사무. 그러나 친 아빠도 아니고 쇼타를 감당할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말을 찰떡같이 믿고 따르던 쇼타가 아닌 왜요?라는 물음표를 던지는 쇼타를 오사무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사무는 쇼타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강요를 내려 놓습니다. 그러나 몸은 내려놓지 않았는지 위탁 가정으로 떠나는 쇼타가 탄 버스를 하염없이 따라서 달립니다. 그 모습을 본 쇼타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따라오는 오사무 아저씨를 보고 "아빠"라고 말합니다.

강요할 때는 부르지 않던 아빠라는 말을 아저씨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아빠라고 부릅니다. 저는 쇼타의 이 행동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빠 엄마가 아빠 엄마 같을 때는 강요가 아니지. 그러나 아빠 엄마가 아빠 엄마 같지 않을 때는 강요지'

오사무 아저씨가 아빠가 되려면 아빠 같아야 했습니다. 먼저 도둑질이 나쁜 행동임을 알고 쇼타에게 강요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또한, 학교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나 가는 것이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키워준다고 그 사람이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낳았다고 다 아빠는 아닙니다. 친아빠, 친엄마라도 아빠 엄마라는 책임을 다 했을 때 아빠 엄마가 됩니다. 

오사무 아저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잘못했다고 말하고 아빠라는 강요를 내려놓자 아저씨는 아빠가 되어갔습니다. 그런 반성하는 모습, 강요하지 않는 관계를 보면서 쇼타는 오사무 아저씨가 아빠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런 해석은 제 개인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라서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석은 각자 다르니까요. 또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특히 쇼타를 집중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더 빛이 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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