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이 엄청나게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 평론가들이 극찬은 아니지만 모두 보라고 권하는 영화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포함에 무려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런 영화를 안 보고 넘기기가 쉽지 않죠. 


괴물 취급 받는 언어장애인과 괴물의 사랑이야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괴물로 여기고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여기던 군비 경쟁이 한창인 냉전의 시대입니다. 영화는 이 1960년대 분위기를 스크린에 담뿍 담아서 1960년대 공기를 관객들에게 주입합니다. 냉전의 시대였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의 부를 거머쥔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 됩니다. 경제를 활황기라서 먹고 사는데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흑백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같은 인간이지만 흑인과 장애인들은 하층민으로 생각합니다. 같은 백인이라고 해도 소련에 사는 백인은 괴물로 여기고 제거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강제 퇴직을 당한 늙은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분)와 함께 사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은 들을 수는 있으나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인입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팬타곤으로 출근해서 청소일을 합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실험실을 청소하다가 인어 같이 생긴 괴생명체를 들어온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괴생명체는 아가미가 있어서 물속에서 살지만 물 밖에서도 어느 정도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처럼 직립 보행이 가능하지만 언어가 달라서 말을 주고 받지는 못합니다. 이 괴생명체는 남미 강가에서 잡아온 괴물로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분)'와 함께 팬타곤으로 왔습니다.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는 이 괴생명체를 연구 조사해서 군사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를 알아보는 책임자로 전형적인 백인 꼰대입니다. 장애인인 엘라이자에게 성추행을 하고 청소부를 똥과 오줌을 닦는 미천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스트릭랜드 보안책임자 아래 과학자들은 괴생명체를 조사합니다. 그렇게 조사하던 어느 날 육군대장이 소련이 알면 안되기에 해부를 명령합니다. 해부를 해서 신체의 비밀을 알면 좋고 몰라도 소련이 이용할 수 없기에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이 괴생명체는 인간과 언어가 달라서 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고문을 당하면서 버티던 괴생명체는 실험실을 청소하는 엘라이자와 둘이 남게 됩니다. 엘라이자는 이 괴생명체에 호기심을 가집니다.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없다는 점과 자신을 괴물로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철저히 외톨이입니다. 괴명생체의 고통스럽고 외로운 눈빛을 본 엘라이자는 괴생명체에게 연민을 느끼고 동질감을 느낍니다. 계란을 주면서 괴생명체와 소통을 시작한 엘라이자는 괴생명체를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수화를 시도하자 괴생명체도 따라하면서 매일 서로에게 이끌립니다. 괴물로 취급받는 엘라이자와 외모가 괴물인 두 생명체는 그렇게 사랑을 키워갑니다. 

 정말 독특한 영화입니다. 괴물과의 사랑! 이런 사랑 이야기가 있을까요? 있긴 했습니다만 그건 우정이었습니다.  영화 <세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E.T와 비슷합니다. 외계인과 아이들의 우정을 담은 아름다운 영화죠. 이 영화도 스토리가 아주 비슷합니다. 괴생명체가 점점 매말라가는 모습이나 탈출을 하는 모습 등등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E.T와 비슷합니다. 비슷하지만 육체적인 사랑까지 담고 있어서 E.T의 성인 버전 같습니다. 동시에 사랑의 관념을 깨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외모가 아닌 마음이고 언어 보다는 눈빛이자 공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괴물로 여기는 소수자들의 연대

엘라이자는 소수자입니다.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조롱을 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엘라이자와 함께 사는 늙은 화가도 가발을 쓰고 엘라이지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지만 거기서도 거부를 당합니다.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엘라이자 밖에 없습니다. 흑인 청소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괴생명체를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러시아 스파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소수자이고 자신의 신분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고통을 받고 살아서인지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잘 느낍니다. 이 고통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엘라이자는 상처 받아서 고통스러워하는 괴생명체에게 연민을 지나 사랑을 느낍니다. 장애가 비정상이 아닌 그 자체로 완전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괴생명체가 좋습니다. 오히려 비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장애인들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핍박을 받고 고통을 받는 소수자들이 뭉쳐서 괴생명체를 해부되기 전에 연구소에서 빼낼 궁리를 합니다. 


소통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소통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언어가 다른 괴생명체에게 육체의 언어이자 폭력의 언어인 전기 몽둥이와 영어로 일방적인 말을 하는 '스트릭랜드 보안책임자'는 괴생명체와의 소통에 실패합니다. 소통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반면 엘라이자는 계란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자 자신의 언어인 수화를 합니다. 이에 괴생명체도 수화로 응대하면서 두 생명체는 두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영화에서는 아주 통쾌한 장면이 나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약점으로 삼아서 성추행을 한 스트릭랜드에게 





엘라이자는 수화로 쌍욕을 합니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그게 욕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눈빛을 읽을 능력이 있었다면 달랐겠죠.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말로 명령하고 따르는 군인 출신이라서 말 그것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말만 신뢰합니다.  이 언어에 관한 장면은 또 있습니다. 엘라이자가 같이 사는 화가 자일스에게 그 괴생명체를 탈출시키겠다고 하자 그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에 엘라이자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 

자신의 수화를 그대로 영어로 말해보라고 다그치고 천천히 자신의 말을 합니다. 그제서야 그것은 그 사람으로 언어가 되어서 나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소통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전혀 언어가 다른 장애인과 괴생명체가 소통하는 모습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언어가 사랑의 장벽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개와 고양이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 동물들도 주인에게 사랑을 주는데 언어를 통해서 전할까요? 그냥 눈만 봐도 서로 잘 알잖아요. 감독은 사랑은 언어도 외모가 달라도 느끼고 전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샐리 호킨스의 사랑 충만한 연기는 좋지만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들은 조금 식상하다

샐리 호킨스를 영화 <패딩턴>에서 처음 봤습니다. 너무 친근한 인상에 처음 보고 인상이 많이 많이 남았습니다. 영화 <세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가 괴물이 나오지만 사랑 충만한 영화로 만든 것은 샐리 호킨스의 사랑 충만한 눈빛 연기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괴물도 눈이 아주 초롱초롱합니다. CG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CG가 아닌 괴물 탈을 쓰고 연기해서 그런지 거북스러운 느낌도 없습니다. 괴물이 나오지만 괴물이 무섭거나 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노래도 아주 좋습니다. 1960년대를 느끼게 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옵니다. 노래의 역할이 아주 훌륭합니다. 여기에 소리와 모양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화면 전환도 흥미롭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나 영화들이 꽤 많이 떠오릅니다. 가장 먼저 E.T와 여러모로 참 비슷합니다. E.T의 바다 버전 또는 성인 버전 느낌이 강합니다. 전하는 메시지는 다르지만 그 괘는 비슷합니다. 여기에 영화 <오아시스>도 떠오릅니다. 영화 후반 두 연인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난 오아시스의 공주의 상상 장면과 비슷합니다. 또한 오아시스가 전하는 메시지와도 비슷합니다. 이렇게 여러 영화들이 떠오르다 보니 영화는 기시감이 많이 느껴집니다. 창의성이 좋은 영화이지만 동시에 여러 영화를 섞은 느낌도 강합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라스트 씬 

이 영화는 모르고 보는 것이 좋긴 하지만 영화 E.T를 본 분들이면 영화 중반부터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예상이 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대로 진행이 됩니다. 가장 무난한 스토리이지만 동시에 예측 가능합니다. 그러나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은유를 집어 넣었고 선과 악의 구도도 강하고 스릴도 있습니다. 동시에 흥미로운 장면들도 많이 집어 넣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마지막 장면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마지막 장면까지 예상을 했지만 하나의 상징이 발화되면서 놀라운 변신을 합니다.

그 장면에서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은 슬프거나 웃길 때만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아름다운 장면을 봐도 눈물이 납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서 바로 일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드러운 째즈 음악이 흘러 나오는 영화관에서 한 없이 스크린을 바라봤습니다. 





괴물을 막 대하는 인간이라는 괴물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들은 같은 인간을 괴물로 보고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모가 괴물 같은 괴물 보다는 우리와 똑같이 생긴 인간 속에 사는 인간 괴물들이 있습니다. 편견과 멸시가 주식인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다 보고 명령하고 지시를 하려고 합니다. 자신과 다른 언어를 쓰는 너는 괴물이고 니가 내 말을 따르고 내 말을 이해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시선을 가진 괴물들이 있습니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그런 인간 괴물들에게 말합니다. "사랑은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 주변에 항상 있고 가득하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돌아보세요. 그게 사람일 수도 책일 수도 미술품 일수도 사진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고양이로 다가오고 강아지로 다가옵니다. 강물로 다가왔다가 바다가 되어서 떠날 때도 있습니다.  나무처럼 서 있기도 하고 라디오처럼 소근거리기도 합니다. 

사랑은 형태가 아닌 느낌이라는 것을 영화 <세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전하고 있습니다. 
좋은 영화이자 보고나면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입니다.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폭력에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해독제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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