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언제부터 좋은 편, 나쁜 편을 찾았을까요? 본능일까요? 아닐겁니다. 엄마 아빠가 이건 좋은 것, 이건 나쁜 것.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구분 짓기를 해주었고 그걸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부모나 어른들은 서 있는 언덕에 따라서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거나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 복잡한 세상을 어린 아이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유식을 먹이 듯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은 착한 편인 슈퍼히어로나 로봇으로 악당들을 물리칩니다. 그러나 이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할 줄 알았던 세상이 점점 커가면서 설명이 안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착하게 살았는데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지?  나쁜 짓을 했는데도 큰 벌을 받지 않는 등. 어른들이 가르쳐준 세상과 실제 세상의 괴리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바로 사춘기입니다. 

사춘기 소년에게 나무 괴물이 들여주는 세 가지 이야기

중학생 코너(루이스 맥두걸 분)는 학교에서 학원 폭력에 시달립니다. 이런 사실을 아픈 엄마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암에 걸려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빠는 코너가 어렸을 때 이혼 하고 미국으로 떠나갔습니다. 아픈 엄마와 둘이서 사는 코너는 세상이 온통 두렵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원 폭력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이는 엄마와 함께 삽니다. 

세상이 온통 잿빛입니다. 코너는 창 밖의 공동묘지에 우뚝 서 있는 주목 나무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목 나무가 벌떡 일어나서 코너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앞으로 3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네 번째 이야기는 코너가 이야기 해야 한다면서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어느 왕자의 이야기입니다. 현명한 왕이 사는 어느 왕국에서 세 아들이 전장터에 나가서 죽자 왕비도 자살을 합니다. 왕은 손자를 지극적성으로 키웠고 왕국의 백성들은 착하고 어질고 용감한 왕자를 사랑합니다.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이했으나 사람들 사이에서 왕비가 마녀라는 소문이 돕니다. 왕이 사망하자 왕비가 왕국을 지배하게 됩니다. 새로운 왕비는 왕자에게 결혼 요청을 하자 왕자는 사랑하는 농부의 딸과 도망칩니다.

주목 나무 아래서 잠시 자고 일어나보니 연인인 농부의 딸은 죽어 있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왕자는 이건 분명 마녀 같은 왕비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백성들과 함께 왕국을 쳐들어가 왕위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녀 같은 왕비를 유배 보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코너는 왜 왕비를 죽이지 않았냐고 묻죠! 아이의 세상인 선과 악이 확실한 세계관에서는 악인은 처단을 해야 옳은데 죽이지 않는 모습이 의아해하죠. 이에 나무 괴물은 진실을 말해줍니다. 사실은 왕비는 마녀이긴 하지만 왕을 죽인 것도 아니고 살인을 한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농부의 딸을 죽인 것은 왕자이고 그걸 이용해서 백성들의 여론을 형성해서 왕국을 쳐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코너는 혼란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선과 악이 뚜렷한 세상이 아닌 착하다고 알려진 왕자가 살인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반면 마녀라고 생각한 왕비가 실제는 그렇게 악독하지 않았음에 혼란스럽습니다. 


매일 밤 12시 7분이 되면 나타나는 나무 괴물은 이번에는 목사와 약제사 이야기를 해줍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치료는 믿음이 반이라는 말을 나무 괴물에게 들은 코너는 아픈 엄마에게 전해줍니다. 엄마는 점점 더 아파만 갑니다. 미국에 있던 아빠가 잠시 들렸지만 코너를 미국으로 데러 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증조 할머니 시절부터 사용하던 것이라서 코너의 공간도 코너의 것도 없습니다. 박물관 같은 집이 싫고 마녀 같이 느껴지는 할머니는 더 싫습니다. 그렇다고 아빠는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가지도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코너는 다시 나무 괴물의 세 번째 이야기를 기다리지만 나무 괴물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수렁에 빠진 코너를 학교에서 괴롭히던 놈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생각해보니 넌 나에게 맞길 원했어. 앞으로는 안 때릴거야. 널 없는 사람 취급 할거야" 그렇게 나무 괴물이 세 번째 이야기인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 이야기를 합니다. 


소년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안내 해주는 나무 정령

코너는 나무 괴물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나무 정령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병을 고쳐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그러나 나무 정령은 자신은 엄마의 병이 아닌 코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나무 정령은 이제 네 번째 이야기를 코너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무 정령은 코너가 밤마다 꾸는 악몽을 진실을 담아서 말하라고 다그칩니다.

코너는 그렇게 꾸역꾸역 자신의 악몽을 나무에게 토해냅니다. 

그렇게 코너는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갑니다. 영화 <몬스터 콜>은 성장 영화입니다. 그러나 내가 본 성장 영화 중에 가장 사춘기 소년의 감성을 섬세하게 잘 담은 영화입니다. 보통 사춘기 시절의 성장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고 <몬스터 콜>도 그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만 다른 영화와 다르게 나무 정령을 호출해서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고 해쳐 나가는 내면에 천착하는 영화입니다. 

착한 킹콩을 공격하는 인간들을 이해 못하던 소년이 점점 두려움의 실체를 깨닫고 이치에 맞지 않고 논리에도 맞지 않는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점점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2개의 상충하는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해서 진흙탕 속에 빠져 있는 코너가 나무 정령의 도움을 받아서 홀로서기를 하기 시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홀로서기에는 코너가 너무나도 미워하는 할머니와 학교 선생님 아빠도 동참합니다. 나쁜 짓을 하면 체벌을 받는 원인과 결과가 또렷한 소년의 세계에 살던 코너에게 집안 집기와 할머니가 소중히 여기는 시계를 박살내도 "그럼 뭐 하겠니"라고 용서를 해주는 할머니, 아빠, 선생님의 용서를 접하면서 점점 성장해 갑니다. 


정답이 없는 어른의 세상 입구에서 용서를 구하다 

두려움이 몬스터를 불러 냈고 엄마랑 헤어지기 싫은 두려움이 외할머니를 마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소년인 코너가 만든 피조물입니다. 엄마 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것도 두렵고 엄마를 잃는 것도 두렵습니다. 이 두려움을 뒷 동산 큰 나무가 니 잘못이 아니야!라는 부드러운 말로 안내를 해줍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마녀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엄마의 사랑을 가득 느끼게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 합니다. 어른으로 향하는 코너 앞에 엄마가 만들어준 몬스터 등대가 밤마다 길을 잃지 않게 불을 밝히는 모습이 상상이 되네요. 

꽤 감수성이 뛰어난 영화입니다. 따라서 액션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추천하기 어렵습니다만 잔잔하고 사춘기 시절 혼란스러움을 겪은 경험을 한 분들에게는 그 시절의 혼란을 되집어 보고 돌아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또한,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봐도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 중간에 나무 정령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됩니다. 이 애니메이션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작화가 무척 기억에 많이 남네요. 여기에 '리암 니슨'이 목소리 연기한 나무 정령의 부드럽지만 강한 말투도 영화 전체를 부드럽게 합니다. 청소년을 위한 동화 같다고 할까요? 어른이 되기 위한 안내서 같은 영화가 <몬스터 콜>입니다. 

별점 : ★★★☆

40자평 : 흔들리는 사춘기 시절 우릴 잡아주던 착한 어른들이 있었다.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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