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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가족이라는 애증의 관계를 잘 담은 영화 토니 에드만

by 썬도그 2018.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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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스(산드라 휠러 분)은 유명 컨설턴트 회사의 유능한 중간 간부입니다. 회사일로 너무 바빠서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습니다. 이네스의 아버지인 빈프리드(페테르 시모니슈에크 분)은 우연히 전처의 집에 놀러 갔다가 딸 이네스의 생일잔치를 함께 하게 됩니다. 이네스가 바빠서 생일보다 일찍 생일을 치르는 것을 빈프리드는 몰랐습니다.  


약간은 섭섭한 마음에 딸 이네스와 대화를 해보려고 시도하지만 이네스는 마당에서 누군가와 아주 길게 통화를 합니다. 아버지 빈프리드는 항상 바쁘게 사는 딸 이네스가 있는 루마니아로 찾아갑니다. 


빈프리드는 유머러스한 사람입니다. 항상 의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우수꽝스러운 얼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농담도 아주 잘 합니다. 다만 그 농담이 농담인지 모르는 상대방이 썩은 미소로 대답할 때가 많을 뿐이죠.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농담을 던지고 남을 웃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날도 딸 이네스가 근무하는 건물 로비에서 슬쩍 다가갔지만 딸은 사무실 직원들과 휑하고 건물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이네스는 아버지가 장난이 많고 항상 유머를 즐기는 분인 것을 알지만 그 장난으로 인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칩니다. 저돌적이고 계산적인 전형적인 간부 회사원의 모습입니다. 빈프리드는 딸이 안쓰럽습니다. 저런 철두철미하고 웃음 한 방울 없는 삶이 행복일까?

다음 날 빈프리드는 마사지를 받다가 서비스가 엉망이라면서 화가 나 있는 이네스에게 행복이란!이라는 작은 훈계를 하려고 하지만 이네스는 매몰차게 말합니다. "행복은 거창한 거예요" 사무적으로 인생,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힐난의 단어를 담아서 찬 바람을 일으키고 사라집니다. 





전 세계가 극찬한 영화 '토니 에드만'

BBC와 국내에 많은 영화 매체들이 올해의 영화 10편 중에 꼭 들어가는 영화가 3편 있었습니다. 하나는 덩케르크, 또 하나는 컨택트 그리고 이 영화 <토니 에드만>입니다. 이 <토니 에드만>만 보지 못해서 새해 들어서 찾아서 봤습니다. 작년에 한국에서 개봉을 했지만 유명 배우도 감독도 나오지 않고 크게 입소문도 나지 않아서 2만 관객도 들지 못하고 상영을 끝냈습니다. 

영화가 좀 깁니다. 162분으로 약 3시간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지루하지 않냐? 아닙니다. 이 영화 초반 1시간은 지루합니다. 별 사건 사고도 없고 두 사람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무려 1시간이나 허비합니다. 요즘 대중 영화와 다른 괘를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 전체로도 시선을 확 끄는 장면이나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간간이 웃기고 간간이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다면 느린 호흡의 영화입니다만 생경스러운 장면들 자극적인 장면들이 꽤 나와서 괴이할 망정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전 세계가 극찬할 만한 영화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분명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가족이라는 애증의 관계를 긴 호흡으로 아주 잘 담은 영화입니다. 


딸만 바라보고 사는 딸 바보 아빠와 일 중독자 딸 사이의 간극을 담다

"고통받는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 -프레디리히 니체-
의 말처럼 빈프리드는 이혼한 후 홀로 사는 외로움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인지 농담을 온 몸에 묻히고 삽니다. 그 농담이 통할 때도 있지만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것도 낯선 사람이 아닌 가족에게도 툭툭 가볍게 농담을 던지지만 누구하나 웃지 않고 왜 저래?라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딸 이네스를 만나기 위해서 루마니아에 가서도 딸의 중요한 거래처 거물과 함께하는 리셉션에서도 딸이 너무 바빠서 새로운 딸을 고용했다는 농담을 던졌지만  거래처 거물은 동공 지진을 일으킵니다. 

핀트가 맞지 않은 농담은 마치 딸 이네스와 아버지 빈프리드 사이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빈프리드는 남은 여생 딸과 함께 웃으면서 지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딸은 오로지 자신의 성공 만을 향해서 진격하는 독일 전차 같습니다. 아버지의 인생 충고도 가볍게 무시하고 모든 것을 홀로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으려고 하죠. 똑똑하고 똑 부러진 딸은 웃음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이네스는 일 중독자입니다. 아버지가 찾아왔지만 중요한 컨설팅 발표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지내지 못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일 생각만 합니다. 아버지가 사온 와인도 스파게티도 먹지 않고 중요한 약속이 있는 저녁에 깨워 달라고 부탁하고 잠든 이네스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했고 전화가 수차례 왔음에도 자신을 깨우지 않은 아버지 빈프리드 앞에서 폭발을 합니다.


무거운 어깨를 메고 루마니아를 떠나는 아버지 빈프리드의 모습을 보고 딸 이네스는 흐느껴 웁니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있지만 일에 방해되자 아버지도 매몰차게 대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기 연민이었을까요? 그렇게 아버지는 자신의 곁을 떠날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이네스는 동료들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가 지난 주말에 아버지가 찾아와서 끔찍한 주말을 보냈다고 아버지 흉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노 신사가 끼어들었습니다. 이네스는 가발을 쓰고 의치를 낀 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렇다고 아버지! 여기서 뭐하세요라고 하지도 못합니다. 이네스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는 할 수 있지만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냥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것이 최적의 관계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 <토니 에드만>에서 가장 웃기는 장면이자 영화 후반의 재미를 이끌어내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아버지는 이네스를 모른척하면서 자신은 인생 코치라는 직업을 가진 '토니 에드만'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렇게 에드만은 딸 친구들과 함께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친해집니다. 그렇게 리무진을 타고 떠난 에드만은 딸 회사와 딸 주변에서 서성입니다. 

때로는 황당하게 때로는 무례하게 딸 주변을 서성이는 아버지를 딸 이네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실망하면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하늘이 맺어준 관계라서 아버지는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네스와 또 다른 인격체 같은 '토니 에드만'은 함께 다닙니다. 





 휘트니 휘스턴의 노래 greatest love of all 가사가 영화의 모든 것을 담다

'토니 에드만'은 자신의 딸을 비서라고 소개하고 한 루마니아 가정집 파티에서 부활절 달걀 선물에 감사하다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버지의 느닷없는 노래 선물에 딸 이네스는 당혹해 하지만 아버지가 키보드를 연주하자 딸은 마지못해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는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를 부릅니다. 아주 유명한 노래고 아름다운 노래이지만 노래 가사는 잘 몰랐습니다. 딸의 노래에 맞춰서 노래 가사가 자막으로 찍히는데 노래 가사 자체가 이 영화의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제 안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가장 위대한 사랑을 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게 가장 위대한 사랑이에요"

아버지 빈프리드는 이네스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으면 합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성공 가도에서 홀로 질주하는 딸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은유적인 인생의 가르침도 딸에게는 잘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딸은 무례한 아버지의 행동에 토라지고 아버지도 딸과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자 절망하게 됩니다.


잠시의 포옹 후 다시 거리를 두는 아버지와 딸

철의 여인 같은 이네스도 아버지의 농담에 영향을 받습니다. 자신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던 이네스는 갑자기 누드 파티를 제안합니다. 사무적인 이네스의 이런 당혹스러운 행동에 동료들은 놀랍니다. 놀라긴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루마니아의 전통 캐릭터를 뒤집어 쓰고 딸의 생일 파티에 방문하지만 딸이 너무 놀랍니다. 그렇게 쓸쓸함만 느끼고 파티장을 떠나는 아버지를 가운만 입고 이네스는 따라갑니다. 

그러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 가서 탈을 쓴 아버지를 안습니다. 아빠!

이 장면은 딸과 아버지의 화해를 담은 듯한 모습이지만 딸은 그렇게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만 아버지가 다시 다가가려고 하자 딸은 또 뒤로 물러납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그렇습니다. 가족임에도 거리를 두고 살 때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 아빠 엄마의 부비부비에 자지러지게 웃고 놀던 그 시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가끔 살갑게 대하려는 부모님을 보고 흠칫 놀라서 한 발 물러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달아나지는 않습니다. 거리를 두고 맴도는 지구와 달처럼 항상 바라보고 관심을 주지만 포옹은 하지 않습니다. 

영화 <토니 에드만>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담았습니다. 특히 딸과 아버지의 관계가 소원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애정과 증오가 함께 공존하는 가족이라는 관계. 이 관계를 잘 담은 영화가 <토니 에드만>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 당하고 사는 우리들을 돌아보게 하는 <토니 에드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는 딸과의 행복한 순간을 담기 위해서 카메라를 찾습니다. 아버지는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과 늙은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미래를 믿지 않습니다. 당장 여기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딸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당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인들 특히 일에 치여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재의 고통을 참으면서 삽니다. 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죠!

그러나 그렇게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산다고 미래가 꼭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사진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행복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서 미래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도는 도구입니다. 사진은 결코 현재를 즐기는 도구가 아닙니다. 적어도 셔터스피드 만큼의 시간은 현재를 희생 당합니다. 

그러나 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온몸으로 느낀 아버지 빈프리드는 그게 다 부질없음을 압니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즐기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가장 간단한 길임을 압니다. 이를 딸에게 주입하려고 하지만 딸은 그걸 잘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행복 전도사나 행복에 대한 훈계를 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딸이 어머니가 되지 못하면 이해 못하는 어머니의 삶처럼 젊은 사람이 늙은 사람이 되지 못하면 느끼지 못하는 소소한 일상과 현재의 행복에 대한 태도를 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가 없어서 좋았습니다. 





천륜이라는 인력으로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 않는 가족이라는 관계. 가까이 지낸다고 항상 행복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가족이라서 강요하고 원치 않는 애정을 받아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판 싸워도 또 금방 화해를 하고 가까워지는 것이 가족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배운다고 하지만 가장 많이 배우는 세상은 가족이라는 세상입니다. 가족이 살아가는데 큰 버팀목입니다. 그러나 점점 가족이라는 인력에서 벗어난 외로운 행성들이 늘고 있습니다. 

항상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행복했었다고 깨닫는다는 아버지의 말이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행복이 과거형이 아닌 그렇다고 미래의 확실하지 않는 행복을 위해서 정작 행복을 느껴야 하는 이 순간의 연속인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우리들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가 담겨 있습니다.

좋은 영화이지만 지루함도 있습니다. 초반 1시간은 정말 많이 지루합니다. 또한, 미성년자 관람불가에서 알 수 있듯이 자극적인 장면도 꽤 있습니다. 그럼에도 두 주연 배우의 뛰어난 연기와 감독의 달뜨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담는 세상 이야기가 매혹적인 영화입니다. 현재의 행복이 리얼 행복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행복은 멀리 있지도 과거에 있지도 미래에 있지 않다. 바로 현재 당신의 주변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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