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은 추억이 많은 곳입니다. 작은 명동 같은 안양1번가는 정말 많이 들락거렸네요. 이 안양에 대한 전시회가 지난 주에 끝이 났습니다. 그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2017/11/22 - [삶/알아두면 편리한것들] - 안양의 과거를 담은 안양박물관의 '굴뚝도시 안양의 기억' 글에 이어집니다. 


안양의 과거를 재조명한 전시회 '굴뚝도시 안양의 기억'은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있는 '안양박물관 특별전시관 1,2층에서 전시를 했었습니다. 1층은 안양의 산업을 재조명했고 2층은 안양의 과거 핫플레이스를 소개하는 전시회였습니다. 



2층은 계단을 통해서 올라갔습니다. 계단에 뭔가 문장들이 적혀 있네요. 경양식하면 들판이라는 글이 눈에 쏙들어오네요. 경양식은 일본에서 들어온 문화로 서양 음식 문화를 간편하게 만든 것을 경양식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음식이 돈까스와 함박스테이크 같은 음식입니다. 그런데 안양에 들판이라는 경양식 식당이 있었나 보네요. 전 처음 들어 봅니다. 


안양은 서울에서 밀려 내려온 공장들이 많았던 도시입니다. 요즘은 공장들이 다른 지방으로 많이 이전해서 공장이 많이 줄었지만 섬유, 제지, 전자, 식품, 약품 공장들이 많았습니다. 공장 노동자가 많았던 안양. 2층에는 안양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과거의 안양 핫플레이스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전시 공간이 꽤 넓고 큽니다. 


한쪽에는 80년대 사용했던 공산품들이 전시되어 있네요.



카세트 테이프 재생이 가능한 라디오. 지금은 카세트 테이프가 나오지 않지만 mp3 파일이 담긴 SD카드를 꽂아서 듣는 미니 라디오도 많이 나오고 있고 지금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쥬단학 가방을 든 누나가 우리 집에 자주 찾아 왔었는데 와서 어머니 얼굴 열심히 주무르던 기억이 나네요



80년대 가정에 1대 정도 있었던 재봉틀도 있네요. 



법랑 식기 그릇 세트도 있네요. 저기에 밥 먹으면 밥맛이 더 좋았어요. 



공장이 많았던 안양은 월급날이 되면 안양 전체가 후끈 달아 올랐습니다. 공장 노동자들이 월급날 술 한잔 하거나 사고 싶었던 걸 사기도 하고요.  물가 비교표가 눈에 들어오네요. 라면은 1970년대에 20원 하던 것이 760원이 되었고 짜장면은 100원에서 4591원이 되었고 담배는 35원에서 4500원이 되었습니다. 

곤로 또는 풍로라고 하던 제품이네요. 70년대 초에는 연탄불로 밥을 지었는데 풍로가 나오면서 연탄불 대신 석유로 밥과 음식을 해 먹었습니다. 심지를 올리고 불을 켠 후 라면을 끓여 먹던 기억이 나네요.


금성사의 미닫이 TV입니다. 미닫이 문처럼 브라운관 앞을 열고 닫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작은 연극무대 같다고 할까요? 저 미닫이 문에 살이 찝혔던 기억도 나네요. 


오디오의 시대이기도 했던 70,80년대 고급 오디오가 있던 집들이 많았죠. 



들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많이 찾았던 경양식당 들판. 그러나 전 여기서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도 유명한 '안양 1번가'에는 1970년대 중반부터 음식점과 상점이 늘어서게 됩니다. 공장 근로자들은 이 '안양 1번가'에서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경양식당 들판은 박성수씨가 운영하던 곳입니다. 1978년부터 2005년까지 27년간 들판 경양식을 운영했습니다. 



함박스테이크 500원, 들판 정식 500원, 오므라이스 250원, 돈까스 300원, 비후스테이크 500원. 맥주 250원에서 300원. 양주도 팔았는데 패스포트가 2500원에서 6000원이나 했네요. 

카페 이름이 '곧.망할'입니다. 빵 터지네요. 곧 망할?? 통기타 카페인가 봅니다. 70,80년대는 DJ가 음악 신청을 받고 틀어주던 음악 다방이 많았습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음악 다방에서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듣고 싶은 노래 신청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음악다방 문화는 90년대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요즘은 듣고 싶은 노래를 검색해서 바로 들을 수 있기에 음악에 대한 가치가 확 떨어졌습니다. 뭐든 구하기 어렵고 듣기 어려울 때 가치가 있지만 요즘은 음악이 그냥 공기처럼 가벼워졌네요. 

미국 백인 문화인 포크 음악이 한국의 청년 문화가 되었던 70년대는 포크송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습니다. 성인들은 트로트, 10,20대들은 포크송을 듣다가 80년대 들어 브레이크 댄스와 랩음악 같은 흑인 음악과 세련된 팝 음악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팝 음악이 세상을 점령합니다. 한국의 K팝도 미국 팝의 변주죠. 


다방에서 성냥개비 쌓기는 필수 시간 때우기 스킬이었습니다. 성냥갑은 다방의 명함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안양에 갈 일이 딱히 많지 않습니다. 여전히 서울보다 물가가 살짝 싼 것 같지만 대부분 서울과 동시간대가 되어서 안양의 지역색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90년대까지만 해도 안양에 갈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 때문입니다. 

80,90년대 초 당시는 개봉관과 동시개봉관이 있었습니다. 개봉관에서 수 개월 동안 개봉을 한 후 2차 시장인 동네 2편의 영화를 같이 볼 수 있는 동시개봉관에서 영화를 상영한 후에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개봉 영화를 비디오로 보려면 빨라야 6개월 후 늦으면 1년 후에 볼 수 있었습니다. 개봉 영화를 보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은 서울 개봉관 대신 같은 개봉 영화지만 가격이 영화표 가격이 30% 이상 더 싼 안양 같은 경기도 도시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저도 참 많이 봤네요. 삼원극장, 안양극장이 유명했습니다. 시설이요? 안 좋았죠. 쥐도 나오고 스크린도 작았지만 싸다는 이유로 다 감수하고 봤었습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관이 들어서면서 두 영화관은 사라졌습니다.



대동서점도 유명한 안양 명물입니다. 서점이 거의 다 폐점하는 이 험한 세상에도 풍파를 이기고 우뚝 서 있습니다. 



그러나 대동문고도 맞은편에 대형 서점이 생기면서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안양시민들의 후원과 응원으로 아직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 안양은 안양역 주변의 구 시가지와 90년대 신도시 개발로 크게 발전한 동안구 평촌의 신시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기울기가 평촌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전 구시가지인 안양1번가가 더 정감이 가고 좋습니다. 평촌은 분당이나 산본처럼 계획 도시의 냄새가 나서 정이 안 갑니다. 



안양예술공원의 옛 이름 안양유원지는 관광지도에도 소개될 정도로 서울 근교의 유명 유흥지였습니다. 


봉암식당도 핫플레이스였네요. 그런데 안양유원지가 이런 식당들이 계곡을 걸치고 운영하면서 계곡을 즐기기 보다는 먹고 마시는 유흥의 계곡이 되면서 사람들의 눈살을 지푸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주 잘 정비 되어서 계곡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식당들 탓만 할 수 있나요. 계곡물에 발 담그고 각종 술과 음식을 먹고 음악을 틀어 놓고 놀았죠.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은 참 못 놀아요. 요즘은 그나마 시민 의식이 좋아져서 음주가무 하는 분들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해변가에 가보면 여전합니다. 


안양의 공업화에 대한 이야기만 담긴 것은 아니고 안양 노동 운동의 역사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굴뚝산업이라는 공장들이 안양에서 떠나면서 안양은 새로운 도시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가리봉동이 가산디지털단지로 변하듯 굴뚝산업에서 IT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0년 11월 안양시는 안양벤처벨리를 조성해서 아파트형 공장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공업도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베드타운으로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안양은 작으면서도 큰 도시 같습니다. 평촌과 안양 구시가지를 보면 마치 종로와 강남 같이 보입니다. 안양에 대한 역사를 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전시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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