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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깨고 싶지 않은 꿈을 담은 영화 <춘몽>

by 썬도그 2017.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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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고 싶지 않은 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또는 짝사랑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이거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과거가 상영되는 꿈을 꾸면 깨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꿈은 결국 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꿈을 일장춘몽이라고 합니다. 영화 <춘몽>은 깨고 싶지 않은 꿈이였습니다. 보는 내내 꿈을 꾸는 느낌이었고 지금도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아서 행복합니다.


가장 완벽한 관계인 우정과 사랑의 교집합 여자 1, 남자3

장률 감독의 영화 <춘몽>은 2016년 가을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전작인 <경주>를 너무 좋게 봐서 차기작인 <춘몽>을 볼까 했지만 기회가 되지 못해서 보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보게 되었는데 영화 <경주> 못지 않게 아니 <경주>에 없는 유머가 너무 많아서 이 감독님이 이렇게 개구진 구석이 있었나 할 정도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주인공은 4명입니다. 4명의 주연 배우들의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예리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옵니다. 작은 주점을 운영하는 예리는 바보 삼총사와 함께 작은 주점을 꾸려갑니다. 건달이지만 마음씨는 너무 좋은 익준, 예리가 사는 집의 주인인 어벙한 종빈, 탈북자인 정범이 매일 같이 예리가 운영하는 주점의 단골손님이자 친구이자 연인입니다. 

세 명의 남자는 순박함이 절절 흐릅니다. 모두 세상 평균의 시선으로 보면 결함이 있는 남자지만 누구보다도 예리를 짝사랑합니다. 그렇다고 육체적 관계를 가지는 관계는 아닙니다. 여자 1명을 3명의 남자가 짝사랑한다? 전 이 관계를 가장 완벽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남자 2명에 여자 1명은 남자들끼리 연적이 되고 치고 박고 싸우다가 한 명이 떠납니다. 그러나 남자 3명은 다릅니다. 남자 3명에 여자 1명은 연적이 아닌 우리가 됩니다.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갈등하지 않고 모두 우리가 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전 이 남자 3명 여자 1명의 관계를 가장 완벽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공감대는 낮을 수도 있지만 제 경험상 가장 완벽한 관계입니다. 

사랑도 우정도 아닌 우리의 관계. 영화는 이 우리의 관계를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에 예리는 익준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영원히 지냈으면 좋겠어" 이 대사를 몇 번을 되새김질 했습니다. 긴장감과 활력을 주면서도 안정감 있는 관계. 그렇게 판타스틱4의 관계가 계속되길 진심으로 기원하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변두리에 사는 변두리 인생들의 행복 동화

장률 감독의 영화를 <경주>로 입문했습니다. 명성은 알았지만 실체를 몰랐는데 영화 <경주>를 보고 이 감독에 반했습니다. 한 지역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몽환적이면서도 깔끔하고 유머도 적절히 섞어서 펼치는 마법은 공간의 마술사 같았습니다. 마치 우디 알렌이 한 도시를 잘 투영한 영화를 잘 만드는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장률 감독은 '우디 알렌' 같은 감독입니다. 영화 <춘몽>은 서울에서도 변두리인 은평구 수색'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색은 아주 독특한 지역입니다. 경의선이 지나가는 지역이자 서울의 변두리 지역입니다. 이 수색은 상당히 변두리이자 최근에 연트럴파크와 함께 재개발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색을 가로 지르는 경의선 철길 건너편은 방송국들이 몰려 있는 핫플레이스인 상암동 DMC지역입니다. 

제가 즐겨 찾는 영상자료원도 이 상암동에 있죠. 지상파 방송국과 종편 그리고 유명 케이블 방송사들이 몰려 있습니다. 그러나 철길 하나 사이로 수색은 그 상암동 DMC의 불빛만 바라보는 지역입니다. 한 번은 상암동 DMC 전철역 출구를 잘못 나와서 수색으로 나왔다가 상암동으로 다시 찾아가는데 30분 이상이 걸리기도 할 정도로 두 지역은 가깝지만 지역적인 온도차는 많이 다릅니다. 그 온도차를 영화 <춘몽>은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수색에 사는 4명의 주인공은 변두리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건너온 예리는 식물인간처럼 거동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고 종빈은 예리의 집주인이지만 어벙벙 합니다. 익준은 고아 출신 건달입니다. 정범은 탈북자로 6개월치의 월급을 받지 못해서 매일 같이 사장의 차를 막고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저항을 합니다. 

가슴 속에 깊은 슬픔을 가진 주인공들이죠. 여기에 동성애자인 주영도 함께 합니다. 모두 슬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4명이 함께 있을 때는 세상 모든 사람 보다 행복합니다. 행복한 완벽에 가까운 4명이지만 서로의 아픔을 간간히 드러낼 때 누구보다 그 아픔을 잘 압니다. 


보는 내내 주영을 포함한 5명의 슬픔이 묻어 나올 때마다 마음은 큰 요동을 칩니다. 슬픔을 드러내지 않아서 더 슬픈 주인공들을 보면서 영화에 대한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올해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큰 미소를 짓게 한 영화 <춘몽>

전 이 영화를 코미디 영화로 분류하고 싶습니다. 미소는 자주 웃음은 가끔 나옵니다. 먼저 감독 조련사인지 감독이자 배우들을 배치합니다. 양익준 감독은 배우이자 <똥파리>같은 뛰어난 영화를 연출한 감독입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과 <군도 : 민란의 시대>를 감독하고 검사외전을 제작한 윤종빈 감독의 연기도 무척 좋았습니다. 딱 동네 바보형 같은 느낌을 제대로 담고 있습니다. 연기의 디테일로 뛰어나서 영화 후반에 4명이 사진관에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빵터졌습니다. 

인위적인 웃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이 계속 베어나오는 영화입니다. 전 이 미소와 웃음 속에서 채플린이 생각났습니다. 희극을 잘 만드는 감독이지만 웃음 밑에 흐르는 슬픔을 잘 담는 채플린. 장률 감독은 바로 한국의 채플린입니다. 


특히 많은 까메오가 나오는데 까메오를 허투로 쓰지 않고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적재적소에 배치합니다. 정범이 북한 김정은의 아내인 리설주보다 예쁜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말에 모두 비웃었지만 영화 후반에 깜짝 까메오가 정범의 여자 친구로 등장할 때 깜짝 놀라면서 크게 웃었습니다. 까메오로 영화의 메시지도 잘 전달하고 웃음까지 유발하는 연출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여기에 자기 영화에 대한 조롱을 하는 모습에서 대인배의 품격도 느껴지네요. 


호접몽 같은 영화 <춘몽>

독특한 점도 꽤 있습니다. 먼저 영화가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나서 영화 이름과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영화 중간에 영화 제목이 나오는 것이 흔하지 않지만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경계가 이 영화의 중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흑백입니다. 그러다 영화 끝 부분에 컬러로 변합니다. 

그 색정보의 넣고 뺌 하나로 이 영화는 예리가 꾸는 꿈과 바보 삼총사가 꾼 일장춘몽이라는 2가지 해석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예리가 순박한 바보 삼총사와 함께 지낸 봄날의 꿈이였을까요? 아니면 바보 삼총사가 예리라는 뮤즈를 만난 꿈이였을까요? 전 둘 다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긴 꿈 아닐까요? 일장춘몽을 다룬 영화이지만 전 이 영화가 일장춘몽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꿈,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꾼듯한 영화입니다. 올해의 영화로 선정할 정도로 무척 빼어나고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한예리라는 배우를 참 좋아합니다. 독립영화계의 여신인 한예리는 필모그래피가 화려합니다. 그러나 전 한예리에게 있어서 이 영화가 무척 중요하고 큰 의미가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한예리라는 배우는 아주 예쁜 얼굴을 가진 배우는 아니지만 매력이 철철 넘치는 배우입니다. 이 매력을 이 영화에서 무한대로 발산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웃깁니다. 그리고 쉬운 영화입니다. 가끔 이해가 안 가는 환상을 담은 장면이 나오지만 그런 장면이 이해가 안 갈 수 있지만 무시해도 괜찮은 영화입니다. 일장춘몽 같은 삶. 꽃길만 걷고 싶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를 행복동화라고 생각합니다.

힘들 때 가끔 꺼내 읽는 행복동화. 전 이 <춘몽>이라는 영화에서 깨고 싶지 않네요. 


별점 : ★★★★
40자 평 : 봄향기 가득한 한 여자와 세 남자의 꿈결 같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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