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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덕혜옹주. 아름다운 상상화 같은 역사 상상극

by 썬도그 201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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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역사해설사는 관람객들에게 '민비'라는 말을 했다가 큰 곤욕을 치루었다고 합니다. 한 관람객이 '명성왕후'가 맞고 민비는 일제가 만든 말이라면서 큰 화를 냈다고 하네요. 그 모습을 보고 그 역사해설사는 다시는 고궁에서 역사해설을 하지 않겠다면서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민비라는 말도 맞고 명성왕후라는 말도 맞습니다. 민비는 조선시대에서는 민비가 맞고 고종이 대한제국을 만들고 스스로 황제가 된 후에 죽은 아내인 민비에게 명성황후라는 이름을 내린 것입니다. 제가 역사를 배우던 80년대만 해도 명성왕후라는 이름 보다는 민비라는 이름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명성황후> 이후에 민비는 일제가 만든 비하 발언이고 명성황후가 오른 존징이라고 잘못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명칭 논란은 민비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드라마 대사 하나가 마치 민비가 조선을 홀로 지킨 여장부, 말 그대로 국모가 되어버립니다. 
민비는 그렇게 바른 사람이 아닙니다. 민비가 행한 악행과 악덕함은 역사책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민비 친인척들의 비리 때문에 일어난 임오군란이나 동학도 민비 때문에 일어났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민비는 조선 최악의 캐릭터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하나가 민비를 국모로 만들어 버립니다. 웃기는 풍경이죠. 이게 다 역사에 대한 관심도 인식이 약해서 일어난 코미디 같은 풍경입니다. 그래서 영화 <덕혜옹주>를 보지 않았습니다.


가상 역사극이라는 불편함이 가득한 이야기 <덕혜옹주>

영화 <덕혜옹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상당 부분 가공된 이야기를 넣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시작할 때 지어낸 이야기가 많다고 밝히지만 어떤 이야기가 지어낸 이야기이고 어떤 이야기가 실제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아서 대부분의 관객들이 실제 이야기라고 믿을 것입니다.

따라서, 실존 인물을 다룬 가상 역사극은 이런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져서는 안됩니다. 정말 만들고 싶으면 드라마 궁처럼 아예 가상극을 만들면 됩니다. 그러나 요즘 퓨전 사극이나 사극 대부분이 실존 인물과 실재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듭니다. 문제는 역사 고증을 거치지 않고 그냥 쉽게 허구를 진짜와 섞어 버려서 보는 관객들이 뭐가 진짜고 뭐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최근에 개봉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주인공인 <고산자, 대동여지도>도 마찬가지죠. 
이러다보니 영화 <덕혜옹주>에 대한 시선은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허진호 감독 영화라도 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영화이기에 역사 미화 논란에도 5백만이 본 영화일까 궁금했습니다. 마침 SKT 옥수수에서 <덕혜옹주>를 무료로 보여주기에 냉큼 봤습니다.


예상대로 처음부터 오글거리기 시작합니다. 고종은 한일합방을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고 덕혜옹주는 애국심이 투철한 인물로 나옵니다. 여기에 고종이 수정과를 먹고 독살 당합니다. 이후, 덕혜옹주는 강제로 일본으로 강제로 유학을 갑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일본이라는 가해자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가해서 피해를 받는 선량한 피해자 분위기입니다. 물론, 일제의 강제병합의 부당함은 맞는 이야기지만 조선왕조의 무능함과 외척세력에 휘둘리는 등의 내분도 큰 문제였습니다. 이런 시선은 싹 거두고 일본제국의 흉포함과 조선 왕가의 투철한 애국심만 강조합니다. 


영친왕과 덕혜옹주(손예진 분)는 왕족의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활을 합니다. 여기에 장한(박햬일 분)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장한은 가공의 인물로 독립투사의 아들로 덕혜옹주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호위무사입니다. 장한은 일본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해서 옹주를 보위하지만 밤에는 일본 내 독립군 세력을 지원하는 이우 왕자와 함께 조선 독립을 꿈꾸는 인물입니다.

덕혜옹주는 이 독립군 세력으로부터 일본에서 갖은 고생을 하고 있는 백성들 이야기를 듣고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공주처럼 살았는데 백성들 앞에서 일제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 달라는 일제의 연설 부탁을 받습니다. 일제의 부탁대로 연설을 해야 아픈 어머니를 만나러 조선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단상에 오른 덕혜옹주는 손발이 부르튼 조선 백성들을 보고 일본 연설을 접고 또렷한 한국어로 조금만 더 견디어 달라고 읍소를 합니다. 

이 장면은 상당히 감동적이고 영화 전체에서 유일하게 덕혜옹주가 어떤 행동을 한 유일한 장면입니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전반부는 오글거리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가상극이자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화 같은 영화라고 하지만 덕혜옹주가 조선인 노동자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장면은 오글거림의 절정입니다.

실제 덕혜옹주는 일본에서도 귀족대접을 받고 조선백성을 향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덕혜옹주를 미화시키는 장면들은 너무 오글거리네요. 또한,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일제가 덕혜옹주의 이런 행동을 용납할리도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가 초반에만 오글거림과 미화가 집중되었다는 것입니다.


초반의 미화구간을 지나서 역사적 사실과 만나는 후반. 꽤 볼만해지다

조선 왕가가 독립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모양새는 거의 다 허구입니다. 영화는 중반에 독립 세력과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려는 조선 왕가를 그리면서 클라이막스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그 클라이막스를 찍고 서서히 내려갑니다. 그리고 역사기 기록한 실제 덕혜옹주와 영화 속 덕혜옹주가 만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역사가 기록하는 덕혜옹주는 대마도 귀족과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정신병원에 갇혀 살게 됩니다. 그러다 1961년 귀국하고 1989년까지 창덕궁 낙선재에서 살다가 돌아가십니다. 이 정도의 팩트만 가지고는 드라마를 만들기 어렵기에 초반에 호위무사에 덕혜옹주 미화가 꽤 들어간 듯하네요. 

영화는 역사가 기록한 덕혜옹주와 겹치면서 사실이 주는 힘이 강력하게 살아납니다. 먼저, 대마도 귀족과 결혼한 후 정신병원에 갖혀 사는 덕혜옹주를 초로의 장한이 찾아갑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조선 황족이 귀국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에 방해가 된다면서 조선 황족의 귀국을 반대합니다. 

박정희 정권 들어서 장한의 노력으로 조선 황족의 귀국이 허용이 된 후 덕혜옹주는 자신이 뛰어 놀던 궁궐로 돌아옵니다. 관람객 신분으로 자신이 살던 궁궐을 회상하는 장면은 눈시울을 적시웁니다. 이게 바로 사실의 힘입니다. 영화는 덕혜옹주가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을 그리지 않고 이덕혜라는 옹주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둘리는 기구한 운명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덕헤의 비극의 힘이 후반에 풀리면서 영화에 대한 악감정도 서서히 풀어졌습니다. 차라리 이 뒷부분만 좀 더 길게 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에는 볼만한 요소가 적다고 판단했는지 전반부에 너무 가공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뿌렸네요. 

사실, 이 덕혜옹주라는 인물 자체는 국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딱히 한 게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덕혜옹주를 바라보게 하는 시선은 한 나라의 황족이었다가 기구한 운명에 빠졌다는 그 비극이 소구할 요소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 점을 덕혜옹주도 알았는지 영화 마지막에 자신은 조선을 위해서도 백성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한 일이 없다는 자기 고백을 합니다. 이 대사는 자기 고백이자 아주 중요한 대사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잘 안다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영화 <덕혜옹주>는 일본 안에서의 독립운동과 조선인 노동자를 보여주긴 하지만 덕혜옹주는 말 그대로 공주처럼 삽니다. 딱히, 그녀의 행동을 통해서 감동 받을 요소 보다는 장한과의 러브라인만이 더 도드라집니다. 조국보다는 사랑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런 자신을 자신이 잘 안다는 그 자체로 덕혜옹주를 보던 날카로운 시선은 부드럽게 변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응분이 보입니다. 특히, 아버지인 고종에 품에 안기는 장면은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이는 덕혜옹주가 살아온 삶에 대한 연민의 눈물입니다. 

좋은 영화는 아닙니다. 추천하는 영화도 아닙니다. 하지만, 덕혜옹주의 삶에 대한 재조명은 괜찮네요. 그럼에도 허진호 감독 특유의 색도 없고 과장과 가상이 너무 많은 점은 아쉽네요. 

별점 : ★★
40자평 : 미화 구간을 지나 진실 구간으로 이어지는 흔한 애국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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