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리 헉슬리가 1932년에 쓴 공상과학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디스토피아를 다룬 명저입니다. 두 소설은 디스토피아를 그렸지만 그 시선은 사뭇 다릅니다. 

1984는 공산당식의 계획, 통제, 감시 사회이고 '멋진 신세계'는 보다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쾌락을 통제의 도구로 삼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멋진 신세계'가 그린 세상이 요즘 한국이 점점 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개,돼지 계급이 존재하는 계급 사회

최근 교육부 정책기획관인이 술자리에서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라는 말을 했다가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이 말은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를 인용한 것으로 영화를 볼 때는 허구의 세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실제로 듣게 되고 실제로 고위층과 상류층이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자 수 많은 개,돼지로 취급 당한 국민들은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정책기획관은 결국 퇴출이 되었습니다. 그가 술자리에서 한 말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어쩌면 그 말이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시겠지만 한국은 점점 계급이 견고해지고 있고 개천에서 미꾸라지도 나지 않는 계층의 고착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서울대 집안에서 서울대생이 나오고 가난이 대를 이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설 '멋진 신세계' 속 세상이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인공수정으로 태어납니다. 태아 상태에서 계급에 맞는 수면 암시 교육을 받고 사회 지도층 계급인 알파, 행정 업무를 맡는 중산층을 감마는 하층민으로 배치 받습니다. 델타와 엡실론 계급은 단순 노동 업무에 배정이 됩니다.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계급이 정해진 사회를 '멋진 신세계'는 보여줍니다. 한국이 바로 이 태어나자마자 인생이 결정되는 계급 사회의 초기 단계에 접어 들어가는 것 같네요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게 하는 소마라는 쾌락제

인간들의 감정 과잉으로 인해 세계 대전쟁으로 지구가 초토화 된 후 인류는 감정을 위험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우울과 분노와 같은 감정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통제를 합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인공 수정을 통한 출산과 양육을 모두 국가가 합니다. 이러다 보니 가족도 형제도 없습니다. 

감정을 느낄 대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울한 감정이나 이상한 감정이 들면 국가가 지급해주는 쾌락제인 소마를 먹습니다. 소마는 쾌락제로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알약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는 세상도 비슷합니다. 고통과 우울하면 쾌락제를 찾게 되죠. 그 쾌락제 이름은 술,담배, 영화, 연예인, 가십, 스낵컬쳐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다를 뿐 우리가 사는 세상도 쾌락제를 통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쾌락제를 취하게 되면 정치, 사회 이슈에 관해서 멀어지게 됩니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떨어지면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소마가 가득하고 새로운 소마들이 쾌락에 중독된 대중을 양산할 것입니다. 쾌락에 중독되면 정치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멀리하려고 듭니다. 


혐오하는 감정이 넘치는 한국

일베, 메갈리아, 워마드의 공통점은 혐오를 주로하는 커뮤니티입니다. 이성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쌓아 올리는 곳입니다. 최근 한국은 이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게 사회 문제까지 될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성 혐오자도 아닌데도 정의를 위한다면서 이 개미지옥 같은 감정 소비 언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영화 이퀄스의 한 장면>

감정이라는 것은 좋게 사용하면 큰 에너지가 되고 활력이 됩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자신을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멋진 신세계'에서는 모든 감정을 제거하고 이상한 감정이 들려고 하면 소마를 통해서 쾌락만 즐깁니다. 요즘 한국 사회의 이성 혐오 감정은 자기 파괴적인 악감정입니다.  긍정적인 곳에 써도 모자를 감정을 자신까지 힘드는 것을 알면서 혐오하는데 사용합니다. 

이런 한국 사회를 보면 차라리 '멋진 신세계'가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분명 '멋진 신세계'는 자본주의의 디스토피아를 잘 그린 소설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회,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 사회가 계급화, 쾌락제, 감정소모라는 모습을 통해서 '멋진 신세계'에 점점 근접해가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멋진 신세계'가 그린 디스토피아로 가는 한국. 올들릭 헉슬리가 무덤에서 일어나 현재 한국을 봤다면 자신의 소설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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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6.09.02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점점 "아수라"판이 되갑니다
    착한 사람,성살한 사람은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나쁜 사람,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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