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메라사진/사진전시회

서울시청 광장에서 전시 중인 한국영화 100년 사진전

by 썬도그 2016. 4. 20.
반응형

서울시청 앞에는 서울도서관이 있습니다. 지역 도서관에 없는 책도 많아서 자주 들립니다. 이 시청 앞 광장에서 우연히 좋은 사진전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의 관공서 중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관공서로 보듬어주고 싶은 곳이 <영상자료원>입니다. 영상자료원이 있는 상암동 영상자료원 건물에서 영화도 보고 책을 자주 봅니다. 씨네필들의 아지트이죠. 덕분에 좋은 영화들을 무료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영상자료원> 덕분에 제 영화 열정의 군불을 지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요즘 영화 잘 안 봅니다. 볼만한 영화도 없긴 하지만 한국 영화들 중에 볼만한 영화도 기억에 남는 영화도 거의 없습니다. 특히 CJ 엔터나 롯데시네마가 직접 제작 한 TV드라마 같은 영화들은 영화 보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최근 한국 영화들이 씨네필이 아닌 좀 더 가볍고 복잡하지 않은 대중성을 극대화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그런 영화들이 돈이 잘 벌리기에 자꾸 그런 가벼운 츄잉껌 같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자본이 점령한 영화계의 한 단면이죠. 그러나 전 그런 가벼운 영화들이 점점 싫어지네요. 그래서 영화 잘 안 봅니다.

아니 영화 잘 봅니다. 흘러간 명화들을 잘 보고 한국 영화도 지나간 영화를 복습하듯 봅니다.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옛 영화들은 왜 이리 다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작품성도 높지만 거기에 추억이라는 필터가 껴 있기 때문이겠죠. 영상자료원에서는 서울시청 광장에 <한국영화 100년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


10,20대 분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지만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서울에 멀티플렉스관이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개봉관이라는 1차 시장과 동시개봉관이라는 2차 시장이 있었습니다. 개봉관은 거의 다가 종로구와 중구에 몰려 있었고 2차 시장인 동시개봉극장은 서울 부심과 변두리에 있었습니다. 

그 1차 개봉관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네요. 국제극장, 아카테미극장, 을지극장, 명보극장, 대한극장, 국도극장, 아세아 극장, 세기극장, 피카디리, 단성사, 스카라가 있네요. 다 추억의 이름이빈다. 세기극장만 빼고 모두 제가 다 아는 곳이고 가봤던 곳입니다. 

지금은 거의다 사라졌고 피카디리는 롯데시네마가 위탁 운영하고 단성사는 건물차압 상태에서 변화가 없네요. 명보극장은 아주 빠르게 멀티플렉스관으로 변신했고 90년대 중후반 영화 개봉관으로 명성을 날렸으나 지금은 실버극장으로 변신을 했습니다. 그나마 명맥을 제대로 이어가는 극장은 대한극장이고 제 아지트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한극장만 가려고 합니다. 영화관 시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나빠지고 있지만 시사회 혜택도 편의시설도 좋아서 애용하고 있습니다. 부디 대한극장은 사라지지도 CJ나 롯데의 위탁 운영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필름 케이스도 전시되어 있네요. 이 필름 보관고가 상암동 영상자료원에 있습니다. 전 시민체험단에 선정되어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상자료원은 도서 발간도 많이 합니다. 저도 한국영화 100선 구매해서 잘 보고 있습니다. 볼 영화 없으면 한국영화 100선 리스트 보고 시간 날때 마다 보고 있습니다. 



사진전은 야외 사진전이라서 사진액자에 담긴 사진은 아닙니다. 영화 스틸 사진들을 프린팅해서 전시하고 있네요. 야간에도 관람할 수 있게 조명 시설도 되어 있습니다. 



흑백과 컬러 사진이 다 있네요.



영화를 좋아해서 수다를 살짝 떨어볼까 합니다. 한국 영화 100선 중에서도 TOP3에 드는 영화가 이 하녀입니다. 국내외에서 극찬을 한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 평론가들이 최고의 한국영화로 꼽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전 아직 못 봤습니다. 


'바보들의 행진', 최근에 본 '삼포로 가는 길'은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인간의 페이소스를 가득합니다. 



80년대는 전두환 공안정권이라서 영화 제작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정권 비판 영화는 당연히 만들기 힘들었죠. 그럼에도 사회 풍속도를 그리는 영화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람불어 좋은날'입니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현실적인 사랑과 점점 계층화 되어가는 한국 사회를 은유법으로 잘 담은 영화입니다. 유지인의 미모도 볼 수 있는 영화죠



또 추천하는 영화는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입니다. 김보연의 미모가 좔좔 흐르는 영화입니다. 이 당시 여배우들의 미모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거대한 스크린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화면을 꽉 채우는 미모들입니다. '꼬방도네 사람들'은 달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았고 마찬가지로 사회비판적인 영화입니다.



80년대는 서슬퍼런 공안정권이었지만 다양한 사회 비판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최근에도 사회 비판 영화들이 많이 제작 상영되고 있는데 공통점은 2016년이나 80년대나 공안 정권이라는 것이겠죠.



이보희의 미모는 국보급입니다. 지금은 드라마에서 나오는데 80년대 이보희는 스크린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강수연 장미희도 빼 놓을 수 없죠. 그러고 보니 스크린을 꽉채우는 미녀 배우들이 요즘은 거의 없네요. 한효주가 활약하지만 한효주의 미모도 이 선배들의 미모에 비할 바도 아니고요. 


80년대는 바보들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고래사냥, 바보선언 같이 바보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길소뜸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아주 잘 담은 수작입니다. 작년에 유튜브에서 봤는데 남북 문제를 다룬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영화입니다. 또한, 가장 현실적이고요

그러나 80년대는 한국 영화의 침체기였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이 때는 청소년 관람가격이 한국영화는 2,000원 외국 영화는 2,500원으로 가격 차이가 있었습니다. 500원이 더 싸도 한국 영화는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시절입니다. 거리엔 온통 애로 영화 포스터만 가득했죠. 

전두환이 애로 영화에 관대한 정책을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들은 애로영화만 줄창 만듭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깬 '서편제'가 개봉합니다. 90년대는 문민정부의 시대가 되었고 영화계에도 해빙기가 불어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영화는 재미없다는 공식이 꽉 잡고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도 재미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1990년에 개봉한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였습니다. 고인이 된 '최진실'을 TV 스타가 아닌 은막의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빼 놓을 수 없습니다 1992년에 개봉한 김의석 감독의 '결혼이야기'는 한국 영화 트랜드를 바꾸었습니다. 이전 영화들은 관객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그냥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객들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을 분석해서 만든 기획영화입니다. 

이후 지금까지 한국 영화는 철저한 시장 분석과 관객들의 취향을 조사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기획영화의 부작용을 적실하게 느끼게 하는 요즘입니다. 기획영화는 최고의 보편성을 위해서 의외성과 같은 짜릿함을 싹 제거한 잘 만들어진 TV드라마 같은 영화만 만듭니다.

최근에 본 '히말라야'가 대표적입니다. 저렇게 흘러가겠지하면 그렇게 흘러갑니다. 억지 감동에 억지스러운 대사, 무슨 80년대 배달의 기수라는 반공 드라마 보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대기업 자본의 한국 영화들이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흥행에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 오히려 CJ엔터나 롯데시네마가 만든 영화는 일단 제외하고 봅니다. 




또 하나의 문제작이 있죠. 1999년 개봉한 쉬리는 한국형 블럭버스터 영화로 소개 되었고 흥행에 큰 성공을 합니다. 지금보면 유치한 액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총격씬을 보면 무슨 장난감 화약총을 사용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총격 반동에 대한 표현이 없어서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쉬리는 달랐습니다. 헐리우드에서 무기를 수입해와서 촬영을 했다고 대대적으로 자랑을 했을 정도로 총격씬이 미국 스타일이었습니다. 
여기에 내용도 좋고 연출도 좋아서 큰 성공을 하죠. 이 1998년부터 2004녀까지를 한국 영화 제 2의 전성시대가 시작됩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박하사탕' 


'8월의 크리스마스', '강원도의 힘'


'꽃잎', '넘버3' 같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 한국 영화 제2의 전성시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한 명 때문이기도 합니다.
바로 영화제작자로 유명한 '차승재'입니다.

당시 차승재는 이 영화 만들어도 될까요?라는 말에 일단 만들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영화에 투자를 하고 제작을 지원하고 직접 제작을 하면서 한국 영화의 다양성에 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지구를 지켜라'같은 저주 받은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걸작 만나기 힘듭니다. 




2천년대 초 한국 영화의 활황기 또는 부흥기를 이끈 감독들이 있습니다. 올드보이의 박찬욱,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조용한 가족의 김지운 감독입니다. 이 감독들은 이 당시는 신인감독이었지만 엄청난 흥행 성공과 평론가들의 호평 속에 세계적인 감독이 됩니다. 그리고 이 3명의 감독을 뛰어 넘는 신인 감독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영화 보고 감독 이름 보는 한국 감독들이 있나요? 거의 없을걸요. 요즘 한국 감독들 특히 대기업이 만드는 영화의 감독들은 자기 운신의 폭이 넓지 않습니다. 대기업이 앉혀 놓은 마리오네트 같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감독만의 자기 색도 없죠


제작사와 자본을 이기는 감독이 10명도 안 됩니다. 저예산 독립영화들은 예외입니다. 



그중 한 명이 이창동 감독입니다. 제가 꼽는 한국 최고의 감독은 이창동입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에 최고의 작품은 '시'입니다. 양심이 무너지고 먹고사니즘 때문에 불의를 꾸역꾸역 참고 사는 우리의 자화상을 담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감독이 '김기덕'감독입니다.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도 에너지 충만한 영화들을 잘 만듭니다. 항상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불펴한 영화를 만드는 '김기덕'감독, 이런 감독이 흔하지 않아서 더 좋습니다. 요즘 영화 뜸하시던데 다시 영화로 만나 봤으면 합니다. 

너무 수다를 떨었네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 일시: 2016. 4. 18(월) ~ 23(토)
■ 장소: 서울광장 서편 (서울시청 앞 광장)
■ 내용: 필름보존고 재현, 필름 복원 전후 비교 영상 상영, 1920~50년대 영화 스틸, 포스터, 한국영화 100선 하이라이트 영상 등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