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동주.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에 대한 일갈

by 썬도그 2016. 2. 25.
반응형

이준익 감독 스스로도 이 동주라는 영화는 재미로 보는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준익 감독은 지금까지 메이저 영화 감독이지 단편영화나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였습니다. 더구나 전작인 사도가 620만 명이나 들어서 흥행 성적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저예산 독립 영화 같은 영화를 들고 나오다니요.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볼까 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요즘 영화가 유일한 피난처인데 영화를 봐서 더 힘들게 되면 정신 상태가 헝클어지기 때문에 요즘에는 사회 고발이나 분노가 치미는 영화들은 잘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워낙 입소문이 좋고 그렇게 외면만 한다고 내 일상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뒤늦게 찾아 봤습니다.


영화 동주는 보는 것이 아닌 목격 해야 하는 영화

영화 동주는 이준익 감독 말대로 재미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럼에도 재미는 많지 않네요. 흑백 영화라는 점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은 괜찮았지만 눈을 호강 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흑백이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대에는 더 어울려 보입니다. 재미는 없지만 영화가 재미로만 보는 것은 아니죠. 영화 동주는 재미로 보는 영화가 아닌 목격을 해야 하는 영화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두 빛나는 청춘이 어떻게 세상에 저항하는 지를 똑똑하게 목격을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윤동주의 서시를 배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서시를 우리는 그 서시가 담긴 뜻을 밑줄 쳐 가면서 시험의 도구로만 사용했지 그 시가 어떻게 나왔는지 윤동주가 어떤 사람이었는 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이라곤 일제에 항거하다 바닷물 주사를 맞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시험 도구 서시를 소비했습니다. 

그러나 윤동주가 어떤 인물인지 그가 왜 그런 시를 썼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어떤 선생님에게도 듣지 못했습니다. 영화 동주는 그 '서시'가 '별헤는 밤'이 '자화상'이 '참회록'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의 꽃 같은 나이에 피지도 못하고 일본에서 죽은 동주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동주를 통해서 발굴하는 역사적인 인물 송몽규 열사

영화가 시작되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의를 입고 있는 윤동주가 보입니다. 일본 형사는 동주에게 모든 일을 말하라면서 다그칩니다. 그렇게 동주는 1935년 북간도 신앙촌 마을을 회상하면서 시작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윤동주(강하늘 분)는 절친이 2명 있었습니다. 한 명은 이종사촌인 송몽규 열사(박정민 분)과 문익환이 친구였습니다. 문익환은 훗날 목사가 되어서 거룩한 일들을 많이 하죠. 그리고 그의 아들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 문성근입니다. 영화에서 문성근은 정지용 시인으로 등장하는데 그 장면이 참 묘했습니다. 그렇게 북간도 신앙촌에서 문학도를 꿈꾸는 두 청년인 송몽규와 윤동주는 서로 책을 읽으면서 문학에 심취했습니다. 


동주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몽규는 산문을 잘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몽규가 덜컥 동아 신춘문예에 '술가락'이라는 꽁트로 당선이 됩니다. 동주는 이런 몽규가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납니다. 자신은 노력을 해도 안되는데 몽규는 원하지도 않는데 단박에 문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요. 

두 사람은 참 달랐습니다. 몽규는 외향적이고 남자답고 전 세계를 호령 할만한 배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시정부 쪽을 기웃거리는 등의 독립 운동을 합니다. 반면, 동주는 내성적이고 가녀린 심성을 가진 곱디 고운 청년이었습니다. 감수성이 워낙 예민해서 외부의 활동을 하지 않고 무서워합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흔하디 흔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서로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나이지만 몽규는 동주를 항상 챙겨주고 동주도 그런 몽규를 친구 이상으로 잘 따릅니다. 영화는 수시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동주를 통해서 송몽규를 투영해서 보여줍니다. 

영화 동주는 동주라는 인물을 조명하는 것도 있지만 송몽규라는 덜 알려진 독립 투사를 좀 더 부각시켜줍니다. 감독 본인도 일부러 송몽규를 더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송몽규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자랑스러운 투사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송몽규 열사를 잘 모르죠. 아니 거의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위대한 행동을 했는지 영화 동주는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특히, 일본 본토에서 쿠테타를 도모하는 모습은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심지가 굳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대단한 투지를 보여줍니다. 

열사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비록 거룩한 일을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그래서 역사에서 자세히 기록 안했겠지만)그의 배포와 혈기와 올곧음은 영화 전체를 지배합니다. 송몽규 역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은 2010년 개봉작 '파수꾼'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 영화에서 인생 연기를 펼칩니다. 앞으로 주목해야만 할 대단한 배우네요. 

물론, 강하늘도 연기 및 노래까지 참 잘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이 흐르는 가운데 강하늘이 직접 부른 '자화상'이라는 노래는 아직도 흥얼거리고 있네요. 영화 전체로는 밋밋한 면이 많았지만 강하늘의 노래가 흐르자 저절로 눈물이 흐르네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꼭 봐야 할 영화 동주

경복궁을 끼고 부암동으로 가는 언덕은 '시인의 언덕'입니다.  시인의 언덕인 이유는 윤동주 시인이 이곳 근처에서 연세대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시인의 언덕'으로 조성했습니다. 이 '시인의 언덕'에 가면 서시가 적힌 큰 비석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가 서시이고 국민 모두가 다 아는 시입니다. 이 서시는 너무나도 서정적인 시입니다. 
저는 이 시의 처음 부분이 참 궁금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여기서 부끄럼이 뭔지 궁금했습니다. 많은 의미가 있긴 했지만 윤동주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습니다. 영화 동주는 이 부끄럼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먼저 시인 정지용과의 첫 만남에서 이 엄혹한 시절에 시를 쓴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자 시인 정지용은 이런 말을 합니다.

"부끄럼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야"라는 말을 합니다.
제가 요즘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이드는 이유는 점점 사람들이 부끄럼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남에게 피해를 줬으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했지만 요즘은 가해를 한 가해자가 피해를 받은 니가 이상한 것 아니냐고 삿대질을 합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너무 자주 많이 일어나다 보니 넌덜머리가 납니다.

특히, 권력자들의 이런 몰염치스런 행동이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는 부끄럼 멸종의 시대에 사는 자체가 참으로 부끄러워서 몸둘 바를 모를 정도입니다. 특히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열정과 노오오오력'만 외치죠. 


윤동주는 일본 형사가 쓴 조서에 서명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서명을 하지 못하겠다고 울부짖습니다. 저 젊은 청년이 저렇게 부끄러워 하는 것이 양심인데 우리는 왜 이리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울컥하게 되네요. 


친일 교과서 만드는 교육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군 위안부 항목을 삭제 했습니다. 현 정부는 일본과 군 위안부 문제를 생존자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마음대로 합의했습니다. 친일파 후손이 국회의원을 하고 친일파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영화 후반부는 두 열혈 청년의 일제에 대한 저항의 모습이 가득 그려지고 그 모습에 자꾸 눈동자가 흔들리게 됩니다. 

송몽규는 일제가 말하는 대동아공영을 외치는 일제에게 그건 열등감일 뿐이라고 포효를 합니다. 누굴 이길 필요가 없는데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일제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비슷하죠. 항상 1등만 외치는 경쟁주의 사회, 이 자체가 열등감의 반로가 아닐까 합니다. 부끄럼을 모르는 일제에 대한 일갈은 속이 다 시원할 정도였습니다. 




아우의 인상화   윤동주 / 시인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숫기 없고 내성적인 모습과 함께 엄청난 감수성의 소유자를 잘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가 섬섬옥수 같은 호수의 잔물결 같은 떨림을 가지고 있었네요

동주는 아우에게 묻습니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사람이 될거야"

어린 아이 입에서 나오는 설익은 대답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어른인 저에게는 그리고 동주에게는 큰 울림이 됩니다. 사람이 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끄럼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부끄럼을 알았던 한 청년이 저 하늘의 별이 되었네요. 

영화 동주는 재미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과서를 읽듯 한 번은 봐야 할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저 하늘의 있는 2개의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하나의 별은 잘 알고 있는 별이지만 그 옆에서 작게 빛나는 몽규라는 별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입니다.


40자평 : 부끄럼을 모르는 짐승이 가득한 세상을 정화 시키는 부끄럼
별점 : ★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