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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열정과 노력이 가득한 성실공화국을 비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by 썬도그 2015.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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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노오오오오력만 있으면 못할 게 어딨어! 하면 된다! 악이다 깡이다! 이런 전 근대적인 구호가 먹힐 때가 있었습니다. 매년 연 경제성장률이 10%대였고 은행 이자가 1년에 15%나 주던 그 시절에는 일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어디든지 취직해서 먹고 사는데 문제는 간편하게 해결되고 5년 정도 월급을 모으면 차도 사고 집도 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제보다 밝은 내일이 있던 그 시절에는 독재자가 나라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컸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이 되니 정치에 대한 깊은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기도 했죠. 그렇다고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사람들이 진보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유신 시대를 만들어서 선거 없이 장기 집권하는 것은 짜증나도 내손으로 보수주의 대통령을 뽑는 것은 좋아했으니까요.


성실하게 살아온 수남의 슬픈 이야기

한 심리상담소에 칼을 들고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수남(이정현 분). 수남은 심리상담소장 경숙을 묶어 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렇게 수남의 과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수남은 주산과 타자를 무척 잘 치던 상업계 고등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자격증도 많이 있어서 스펙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취직은 능력과 노력과 상관 없이 몸매와 가슴 크기가 좌우하는 세상임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컴퓨터 세상이 도래하면서 주판을 튕기고 타자를 치던 수남은 졸지에 무능력자가 되어버립니다.  별다른 기술도 없는 수남은 한 중소기업 경리로 취직을 합니다. 


거기서 청각 장애가 있는 규정(이해영 분)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힘든 노동의 현장에서 사랑을 피우고 결혼을 합니다. 결혼한 두 사람은 하나의 작은 갈등이 있습니다. 수남은 결혼하기 전에 남편 규정의 귀를 고쳐주고 싶었고 규정은 귀보다 집을 먼저 사는 것을 원했습니다. 

수남의 고집에 진 규정은 무려 2천만원의 거금을 들여서 귀 뒤에 이식하는 보청기를 이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보청기가 오작동을 하는 바람에 공장 기계에 손가락 3개를 짤리게 됩니다. 그렇게 장애를 갖게 된 규정은 집에서 쉬고 수남은 아침에 신문 배달, 저녁에는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틈틈히 건물 청소 등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법니다. 그러나 그러게 벌어서 집을 사기 위해 계산을 해보니 무려 9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도 생활비를 계산하지 않은 상태였죠. 

그럼에도 악착같이 벌어서 9년째가 되는 날 집을 드디어 삽니다. 그러나 집 값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였습니다. 집 값은 더 뛰어서 결국 대출을 끼고 작은 집을 삽니다. 

그러나 수남의 앞날은 평탄하지가 않습니다. 끝나지 않는 노동의 굴레에서 끊임 없이 돌을 굴러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수남은 밤낮으로 돈을 벌고 법니다. 그러나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데도 행복하지도 않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수남이 세상 살 줄 몰라서일까요? 
아님 세상이 정글 같아서 일까요? 이 끝나지 않는 노동의 끝을 수남은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요?



열정과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고발하다 

열정과 노력만 있으면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과 보라가 지하 단칸방에 살지만 졸업하고 취직만 하면 번듯한 집을 살 수 있는 시절도 있었죠.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지만 굶어 죽지 않을 만큼 가난한 워킹 푸어가 늘었고 백수도 꽤 많이 늘었습니다. 20대 태반이 놀고 있는 세상이 되었죠. 

최저임금은 6,000원으로 최저 임금으로 한달을 벌어도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결혼을 꿈꾸고 집을 살 궁리를 할 수 있을까요? 그나마 수남은 결혼도 하고 집도 샀습니다. 그러나 아픈 남편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 허드레일을 밤낮으로 하고 있습니다. 집은 있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고시원에 살고 집은 전세로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 수남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수남이 사는 동네가 재개발 허가가 떨어졌고 재개발을 통해서 두둑한 개발 보상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방해자들이 등장합니다. 더 많은 개발 보상비를 받기 위해서 개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구도를 보면 이 영화는 현재 한국 사회에 사는 저소득층의 삶을 조명하는 듯해 보입니다. 
먼저, 저임금 육체 노동을 하는 대표적인 일인 신문배달, 건물청소, 음식점 주방일을 하는 수남을 집중 조명합니다. 
여기에 집을 가진 하우스 푸어도 보여줍니다. 수남은 집이 있지만 가난한 전형적인 하우스 푸어입니다. 그러나 뉴스에 나오는 대출 받아서 산 집의 빚을 끊임없이 갚는 그런 하우스푸어 보다는 장애를 가진 가족의 병원비를 내야 하기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하는 하우스 푸어로 나옵니다. 

이렇게 성실하게 일을 하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고발합니다. 
워킹푸어와 하우스푸어라는 두 푸어 문제를 다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쏙쏙 들어오네요. 다만, 정밀도는 좀 떨어져서 영화가 한국 사회의 경제 문제를 정밀하게 고발한다는 느낌보다는 과장되고 과도한 액션으로 담는 모습이 있네요


박찬욱 감독 냄새가 가득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박찬욱 감독의 권유로 출연하게 되었다는 배우 이정현은 영화 꽃잎 이후 오랜만에 영화 배우로 출연해서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제작비를 투자하면서까지 열정을 보인 이정현은 영화 속 수남과 달리노력의 댓가를 톡톡하게 받았네요. 

그런데 이 영화 여러모로 박찬욱 감독 향기가 물씬 납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과도한 폭력과 빠른 전개와 깔끔한 화면 편집 등, 여러가지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아닐까 할 정도로 비슷합니다. 이 영화는 꼭 그렇게만 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도한 폭력 장면이 꽤 나옵니다. 산업 재해는 과도한 것이 아니라고 처도 재개발을 둘러싼 이권 다툼 장면은 과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물론, 그게 이 영화의 스타일이라고 해도 메시지 전달을 하는데 그런 스타일이 저에게는 방해가 되더군요.

오히려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려면 스토리를 좀 더 세밀하게 조율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폭력적인 장면에 대한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이 영화의 스타일이니 지적은 못하겠네요. 전체적인 미쟝센이 박찬욱 감독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아주 쉽게 이해되고 와 닿는 장면들이 많네요.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현실 자체가 영화의 주요 재료인 고통이 가득한 세상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요? 언론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고발하지 못하니 영화가 대리만족을 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를 소재로 한 사회 고발성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 고발성 영화 제작 트랜드를 따르는 영화이지만 다른 영화 보다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만화 책 같은 포장으로 한국 사회를 고발한 영화로 보여집니다. 

짧은 영화였지만 한 번에 끊지 않고 봤을 정도로 몰입도가 좋은 영화네요. 이는 영화 감독의 스토리텔링과 편집술이 좋았고 이정현의 연기도 꽤 좋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친근감이 한 몫했네요.

이 성실한 나라를 수남은 탈출 할까요? 영화에 그 답이 있습니다. 



40자 평 : 불성실해서 가난하다고 말하는 꼰대들에게 강제로 떠먹이고 싶은 영화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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