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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저예산으로 영민하게 만든 관광 사회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by 썬도그 2015.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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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광지 또는 지방을 사진으로 담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모르긴 몰라도 그 지역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고 그 지방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취재를 하면서 그 지방의 이미지를 잡아내려고 할 것입니다. 내가 찾은 그 지역의 이미지를 차분하게 풀어가는 것이 보통의 수순이 아닐까요?

일본의 나라국제영화제에서 제안을 받아서 감독 장건재는 나라 현 중서부에 있는 고조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한편을 제작합니다. 그 영화가 바로 '한여름의 판타지아'입니다.


독특한 형식 그러나 설렁설렁 만든듯한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한 영화입니다. 특히 영화평론가들의 후한 평이 많았던 영화입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고 봤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영화 그렇게 확 와닿는 느낌은 없습니다. 먼저, 영화 자체가 그냥 꽉 찬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이 영화의 독특한 형식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뉩니다. 1부는 흑백 영화로 감독 본인이 나라현 고조시의 공무원과 만나서 이 고조시를 담는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형태는 신박하다고 할 정도로 독특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이런 생각은 하죠.  다큐 형태이긴 하지만 모두 배우들이 연기를 합니다. 


 

고조시를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채집합니다. 통역으로 같이 다니는 코디네이터와 함께 고고조시 이곳저곳과 노인들만 사는 산골 마을도 찾아갑니다. 그 산골 마을에서 현지 노인들을 직접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고조시와 주변 마을을 소개하는 관광 영화로 비추어지네요. 

마치 흑백으로 된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1부에서 감독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 명은 고조시 공무원으로 자신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였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마을을 소개해주는 중년의 일본인은 젊었을 때 한국인 유학생 알바생과 썸을 좀 탔다는 이야기를 하죠.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섞어서 감독은 영화를 만듭니다. 


그게 2부 벚꽃우물이라는 단편 영화가 됩니다.
독특한 형식이죠. 1부는 감독 자신의 고민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고 그 고민 끝에 고조시 취재를 통해서 얻은 2~3개의 이야기를 섞어서 단편 영화로 만듭니다. 그러나 2부 스토리는 스토리가 딱히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한 한국인 무명배우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일본으로 왔고 일본에서도 사람이 없는 풍경을 찾기 위해서 고조시까지 옵니다. 뭔가를 찾으러 왔다고 하는데 아마도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입니다. 그렇게 혜정(김새벽 분)은 고조시 역에서 유스케(이와세 료 분)의 호의를 받습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이곳 고조시에서 감을 재배하고 말려서 파는 전형적인 농촌 총각입니다. 


유스케는 필요 이상으로 혜정에게 잘 해줍니다. 눈에 뻔히 보일정도로 치근거리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혜정에게 과하게 잘해주죠. 혜정은 그런 유스케가 고마우면서 동시에 부담스럽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음날 사람의 흔적이 적은 고즈넉한 산골을 함께 갑니다. 


두 사람 사이의 썸은 흔하디 흔한 썸입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터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산골 구경 시켜주고 별 의미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죠. 한 마디로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그냥 흔한 한국 여자의 여행기로 비추어질 정도입니다. 벚꽃우물에 있는 잉어 이야기가 좀 흥미로울 뿐 전체적으로는 지루합니다. 


이야기도 다 예상 가능합니다. 1부에 나온 이야기를 재조립 한 것이고 배우들도 1부에서 공무원으로 나온 배우가 2부의 농촌 총각으로 나오고 코디네이터로 나온 배우가 여자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약간의 썸이 전부일 정도로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나 주제나 느낌을 주지 못해서 좀 졸았습니다. 
잔잔한 영화 무척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잔잔한 것이 아니라 설렁설렁 만든 듯한 느낌입니다. 이야기라는 뼈대가 없다 보니 물렁물렁한 살이 흐르는 느낌입니다. 물론 그런 빈 여백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 저도 여백의 미를 잘 알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이 영화는 그런 것이 아닌 몇개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급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더 많아서 보는 내내 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네요. 
롱테이크도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홍상수 감독과 달리 뭔 의도를 가진 것 같지도 않습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 있는 식자층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나 위선을 크게 담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무색 무취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혹평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민한 구석도 꽤 있습니다. 


농촌 문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그런대로 잘 만든 관광 사회 비판 영화

멜로 드라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엔 아무 것도 없는 듯한 일상을 그냥 그대로 담았다는 것이 좀 아쉽네요. 또한, 1부에서 2부의 줄거리를 다 스포를 하는 바람에 극의 긴장감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을 가까이서 보지 않고 풍경으로 보면 슬픈 모습이 많이 느껴집니다. 

먼저 일본도 한국처럼 농촌 총각이 결혼을 못하는 심각한 문제를 넌지시 담습니다. 순박한 청년 유스케가 혜정에게 치근거리는 모습 자체가 농촌에서 여자 보기 힘든 모습 때문인 것도 있죠. 농촌 총각을 폄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에서 여자가 흔하지 않기에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는 그런 모습과 비슷하죠. 

또 하나는 여행이라는 환상을 그런대로 잘 담았습니다. 뭔가 꿈꾸고 가는 여행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 여행의 기승전결을 사진처럼 잘 재현했습니다. 이 두 남녀의 썸을 통해서 고조시와 산골 마을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모습은 영민하다고 느껴지네요. 그것도 같은 장소지만 흑백과 컬러로 달리해서 같은 곳이지만 다른 공간으로 비추게 하는 모습도 영민해 보입니다. 

그리고 감독이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인 '꿈의 노예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말도 듣기 아주 좋네요. 동시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아니 까르페디엠이라는 흔한 아포리즘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후한 평들이 많아서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별로였습니다. 다만, 그런대로 잘 만든 영화라고 느껴지네요. 
두 사람이 밤 하늘에 터지는 불꽃 놀이를 보는 장면이 인상 깊네요. 그렇게 삶에도 환희만 가득한 날들이 있을까요?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판타지아는 불꽃놀이가 아닐까 합니다. 가끔 있기에 불꽃놀이를 보지 매일 밤 터지면 소음 민원이 들어오겠죠. 다만, 영화의 핵심이 스토리가 너무 부실한 것이 아쉬웠던 영화입니다. 그러나 감독 및 배우 모두 응원합니다. 다음에 또 스크린에 보면 반가워할께요. 

별점 : ★

40자 평 : 이야기의 용량 미달로 여백의 미로 비추어지는 듯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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