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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국내사진작가

성자와 같은 최동원 선수를 카메라에 담은 사진기자 전민조

by 썬도그 2015.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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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자는 시대의 목격자입니다. 사건 사고가 터지면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사건 사고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지금은 사진 기자가 특별히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진 기자를 채용하지 않는 언론사도 늘어나고 있고 일반 기자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촬영하라고 하는 언론사도 많습니다.

또한, 일반인들이 촬영한 사진을 그대로 인용하는 언론사도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일반인이나 일반 기자가 촬영한 사진과 달리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은 그 현장을 가장 정확하고 현장감 있는 사진을 담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진기자들의 사진을 보면 연성 뉴스가 많아지고 있고 별 느낌이 없는 사진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 생활 사진가가 촬영하는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 만큼 요즘은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이 꽤 많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가 귀했던 시절에는 사진기자들의 사진은 희소가치가 컸습니다. 그들이 촬영한 사진 하나 하나는 시대를 박제한 사진으로 역사적 가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같은 경우는 역사를 기록한 사진을 시에서 관리하고 보관하고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사진 아카이브가 있나?라고 의문이 들 정도로 사진을 제대로 수집 보관하는 지도 의심스럽고 무엇보다 그 사진들을 꽁꽁 숨겨놓고만 있네요. 최근에 한국민속박물관이 수만 장의 사진을 오픈해서 마음껏 사용하라고 했는데 다른 곳도 역사적인 사진을 공공재로 활용했으면 합니다. 


제가 사진 아카이브를 서두에 장황하게 말한 이유는 전민조 사진기자 때문입니다. 전민조 사진가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사진작가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사진기자 출신이시고 지금은 은퇴했지만 사진기자가 더 입에 붙어서 전민조 사진기자라고 하겠습니다.

얼마 전 전민조 사진기가가 사진기자 시절 촬영한 사진 30,000 여점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기증을 했습니다. 
한국을 기록한 수 많은 사진가와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에 쏙 등러오는 사진기자가 전민조입니다. 

많은 옛 사진을 보면서 이! 사진은 예사롭지 않네? 누가 촬영했지?라고 살펴보면 전민조라는 이름이 많이 붙어 있더군요. 그때부터 전민조라는 이름만 들으면 역시!라는 감탄사가 따라 붙고 있네요. 

1944년 일본에서 출생해서 서라벌예술대학 사진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몇번 의 사진전을 가졌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부의 작은 갤러리에서는 전민조 사진기자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도 있고 이미 봤던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처음 보는 사진들이 많네요. 위 사진은 1969년의 서울 광고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저 뒤로 삼일빌딩이 올라가고 있네요.


지금은 이런 모습으로 광교 앞에 우뚝 서 있습니다. 참 오래된 고층빌딩이죠. 




전민조 사진기자는 쑥쑥 자라는 죽순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을 카메라로 잘 담았습니다. 강남이 촌 동네였던 시절 서울 잠실의 버스 정류장 사진입니다. 당시는 비포장 도로가 포장 도로보다 더 많았어요. 



전민조 사진기자의 사진 중에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아닐까 하네요. 응답하라 1988에서도 나오지만 80년대 초만 해도 강남은 막 아파트 단지가 세워지던 시기였습니다. 강남1970이라는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논과 뽕밭이 가득했던 강남은 평지라는 이점과 부동산 사업으로 돈을 챙기려는 박정희 정권의 욕망이 합쳐져서 거대한 개발이 일어나죠.  

그리고 강남은 거대한 개발과 함께 온갖 편의 시설이 들어서고 강북의 명문 고등학교를 강제로 강남으로 이주(대치동 일대)로 이주하면서 교육의 중심축이 강남으로 향합니다. 강남은 현재 한국의 중심축이지만 이 강남이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걸 한 장의 사진으로 나타낸다면 이 사진이 최고입니다. 소가 쟁기질하고 그 뒤에 아파트가 올라선 모습입니다. 
1978년 압구정 모습입니다. 
 



잠시 이 사진전을 갤러리 풍경을 소개하자면 광화문 역사박물관 외벽에 걸린 듯한 갤러리입니다. 야외는 아니고 지붕이 있는 복도인 회람 같은 곳에서 전시를 하네요. 한 편으로는 독특한 공간이라서 밤 늦게도 사진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성의 없어 보이는 것도 동시에 느껴지네요. 그러나 실용적인 공간임은 틀림 없습니다. 제가 이 사진을 본 시간이 오후 9시였습니다. 



이 사진은 1980년대 사진으로 미국 소고기 수입 때문에 큰 타격을 받은 축산농부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양보해야 하는 산업은 농업, 수산업이죠. 대신 전자 자동차 화학 조선 같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중공업과 경공업은 수출 경쟁력이 있다고 혜택을 받고요.  이 구조는 뉴노멀 시대에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니 대기업들이 기고만장해서 내수 수요에 대한 신경을 안 쓰는 것 아닐까요?

엘지전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보세요. 동일한 제품인데도 한국에서 더 비싸게 팔잖아요. 물론, 시장 규모나 여러가지 조건을 따져보겠지만 결과인 가격만 비교하면 한국은 역차별을 받는 느낌입니다. 


이런 서민들의 고통은 또 있습니다. 이산가족찾기는 80년대를 관통하는 이미지였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리게 했던 부분입니다. 사실, 한국전쟁은 윗대가리들이라고 하는 위정자들이 만든 전쟁이지 서민들이 뭘 알겠습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다가 전쟁이나서 강제로 가족이 흩어지게 되었는데요.

그리고 지금도 남북한 위정자들은 전쟁이라는 공포의 재료를 볶아먹고 지져먹고 삶아 먹으면서 뭔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이 터지면 빨갱이를 잡자!며 외치고 아직도 잘 먹힙니다. 이런 상태에서 무슨 통일이 되겠어요. 남북한 권력자 모두 원하지 않는데요. 이제는 국민들 대다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 모습이 비추어지네요



1981년 서울 연세대의 눈치작전이네요. 지금은 시험을 보고 그 점수를 가지고 갈 수 있는 대학을 지원하는 선시험후지원이지만 80년대에는 선지원후시험이었습니다. 따라서 경쟁률이 낮은 대학교와 학과에 지원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죠. 그래서 미달되는 학과가 방송에 나오면 저기 지원한 학생들은 좋겠다라고 부러워했습니다. 

이런 경쟁률 낮은 학과 지원을 위해서 엄마 아빠까지 동원 되어서 눈치작전을 했습니다. 아주 후진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전 솔직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죽음에 명복을 빌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큰 아픔을 만들어준 사람이에요. IMF요? 아닙니다.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싫은 것이 부산, 마산 지역에 있는 민주화 세력을 몽땅 한나라당에 받쳤다는 것입니다. 부산, 마산은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리울 정도로 정권 타도 데모가 많았습니다. 대구나 이런곳과는 달라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부산 마산 대부분이 새누리당 지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전 부산, 마산 같이 같은 경상도지만 민주화 의지가 강한 지역을 통째로 팔아 버리고 대통령이 된 그가 밉습니다. 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보세요. 지금 새누리당은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을 뛰어 넘었어요. 더 보수화 되었고 더 친일스러워졌어요. 이게 다 김영삼 대통령이 만든 결과입니다. 그래서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재 살아 있는 어떤 전,현직 대통령도 좋아할 수가 없어요. 정말 어르신 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이네요. 위 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에 부산 마산 시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군인들이 막기 위해 출동하고 있네요. 이런 사실을 김재규 안기부장(국정원장)이 보고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산 마산을 탱크로 밀어 버리겠다는 말에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안가에서 총을 쏩니다. 




좀 흥분했네요. 정치판만 보면 흥분을 하게 되네요. 이 사진도 재미있습니다. 1978년 백령도에서 해군 함정과 충돌후 침몰한 북한 어선 선원 4명이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자 남한 정부가 제공한 옷가지를 휴전선 너머로 던집니다. 

참 코미디 같은 장면이죠. 남한 정부가 준 것을 걸치고 넘어가는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이자 저걸 당당하게 입고 넘어갔다간 사상 의심자로 분류되어서 골로 끌려 갈 것을 알기에 과한 퍼포먼스를 했네요. 그래도 팬티는 안 벗었네요. 저것도 한국 정부가 줬을텐데요. 유교의 승리라고 느껴집니다. 




이 사진도 재미있습니다. 아니 전민조 사진기자의 사진은 다 재미있습니다. 이 사진은 전민조 사진기자가 출퇴근할 때 탔던 서울 인천간 경인선 열차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전민조 기자는 이 경인선 전철을 타면서 소매치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척보면 앱니다처럼 척보고 누가 소매치기인지 알게 되었죠.

그러나 소매치기 같은 범죄는 현장을 잡아야 하기에 결정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지하철 수사대가 성추행범이나 소매치기범을 잡기 위해서 범행을 시도할 때 잡죠. 전민조 사진작가는 카메라로 이들 소매치기 일당을 수차례 촬영한 후에 결정적인 수간을 사진으로 잡습니다. 이 사진은 1972년 7월 25일 한국일보 신문에 독자 투고로 실립니다. 사진기자지만 보복이 두려워서 독자로 익명처리합니다. 



기자들의 고단함을 생생하게 닮고 있네요. 책상 위에서 불침번 같은 당직을 하다가 제보 전화를 받는 기자의 모습이 보이네요



전 사진기자의 특권을 옥상에 있다고 봅니다. 고층 빌딩 옥상을 올라갈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프로와 아마츄어를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요즘 사진기자들이 찍는 사진과 일반이 중에 사진을 진지하게 하는 생활사진가 사진과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같은 장소 같은 각도로 촬영하면 도토리 키재기죠. 하지만 사진기자는 사진기자 명찰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뷰포인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게 특권이죠. 옥상에 오를 수 있는 자! 그게 사진기자이고 그게 특권이고 그 특권에서 멋진 앵글로 담긴 사진이 담깁니다. 




사진전 중간에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사진전 출판물이 있네요. 




1974년 촬영한 전남 홍도의 해녀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 같습니다. 고글을 쓴 비행사 같기도 하고요. 해녀와 여성광부. 흔하지만 독특한 사진과 보기 드문 피사체를 그만의 시선으로 잘 담았습니다.




이 농부 사진은 수십년 간 농부를 촬영했지만 최고의 농부 이미지라고 극찬을 했네요. 저도 사진을 보면서 이런 얼굴도 있구나 할 정도로 얼굴에 미소가 가득합니다. 딱 농부가 이런 얼굴이겠다 싶은 얼굴이네요



김대중과 김영삼, 이병철과 정주영이네요. 흠.. 쓴맛이 나네요.



그리고 이 글의 제목이자 제가 장탄식을 날린 사진입니다. 1978년 6월 5일 동대문 야구장에 서 있는 (故) 최동원 선수의 사진입니다. 당시 연세대 학생이었는데 그의 포즈에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마치 야구장에 경의를 표하는 듯한 기사의 포즈 같기도 하고요.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포즈 옆에 킨 사이다 광고가 보이네요. 킨과 최동원 선수 포즈가 일치합니다.

이는 형태적 유사성으로 흔한 사진 작법이죠. 그런데 전 이 킨 사이다 킨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반사렌즈를 보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최근에 반사렌즈에 대해서 알았는데 몽글몽글하게 빛을 담는 모습이 신기하더라고요. 사진은 이렇게 자신의 사진 맥락에 따라서 봅니다. 누구는 킨이 먼저 보이고 누군 반사렌즈가 보이고요. 

전 이 사진을 감탄한 이유는 최동원이라는 피사체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동원 선수는 부산에서 민주당이라는 야당 후보로 선거에 나오기도 하고 선수협을 위해 뛰기도 한 반골 기질이 강한 선수였습니다. 그 모습 자체가 청년 같았어요. 솔직히 선수 시절에는 너무 야구를 잘해서 싫었어요. 제가 응원하는 팀이 아니였거든요. 그런데 그가 은퇴한 후의 삶을 돌아보니 존경 안 할 수가 없네요. 

가장 존경하는 야구 선수입니다. 이는 변하지 않을 거에요. 


사진전을 대표하는 사진은 이 사진입니다. 전남 진도 대마도라는 낙도 아이들이 맑은 미소입니다. 거센 노동의 모습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어찌보면 이 사진은 정치적일 수 있습니다. 저 아이들이 하루 종일 웃겠어요. 노동의 고통에 눈물 흘리기도 하죠. 몸이 힘들어도 웃고 살자는 현 정부의 시선과 일치하죠. 그래서 사랑스럽게 여기고 대표 사진으로 뽑은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 주관적 시선입니다. 

 



이런 사진들을 보면서 옛 추억 또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한국을 돌아보게 합니다. 



전민조 사진기자의 글이 꽂힙니다. 위험과 모험심이 없다면 기자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 과연 현재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험과 위험을 추구하는 기자가 몇 이나 있을까요? 정권의 서슬퍼런 칼 앞에서 굽신거리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기자는 얼마나 될까요?

전 현재의 기자들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네요. 이미 상당수의 기자가 순치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기에 현실 왜곡도 쉽게하는 모습도 보이네요


전민조 사진기자는 놀랍게도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이도 많은 분인데 이렇게 꾸준하게 블로그 운영하는 것이 아주 놀랍네요.  
http://dovan125.blog.me/ 에서 그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쳐 보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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