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위로공단, 성실한 나라 여공들의 삶을 추적한 빼어난 다큐

by 썬도그 2015. 8. 26.
반응형

"저는 성실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박근혜의 말에 깜짝 놀랐어요"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했지만 성공과는 멀어 보여요"
80년대에 구로공단 여공이었던 중년의 아줌마는 자신의 지난 과거를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성실한 나라의 여공들의 삶을 재조명한 영화 '위로공단'

영화 '위로공단'은 미술가 임흥순이 만든 다큐로 베니스 영화제가 아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합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화가 은사자상을 수상한 것을 처음이라고 하네요. 이 수상도 수상이지만 제가 평소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로공단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쭉 지켜보고 있다가 뒤늦게 시간이 나서 보게 되었습니다. 

다큐가 시작되면 재봉틀 소리가 들리고 캄보디아의 유적지가 펼쳐집니다. 조용한 숲 속에 숨 쉬고 있는 듯한 유적지가 페이드아웃이 되면서 구로공단의 여공들의 인터뷰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저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원풍모방과 YH무역에서 여공으로 근무하다가 해고당하거나 감옥에 간 아주머니의 인터뷰가 들립니다. 

저에게 이 기업이나 공장 이름들이 익숙한 이유는 제가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 들어 사는 누나들이 구로공단에서 여공으로 근무를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억과 여공들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고자 개봉한 지 2주가 지났지만 다행스럽게 상영을 하고 있어서 관람을 했습니다. 대한극장이기에 가능한 일이죠.


다큐 '위로공단'은 여성 근로자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고 그 칸과 칸 사이에 무언극 같은 이미지의 나열이 있습니다. 
이 이미지들은 다음 인터뷰로 매끄럽게 넘어가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암에 걸려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고 항암제를 맞고 머리가 다 빠지자 가발을 쓴 여성 근로자의 눈물을 지나서 가발 공장에서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들을 보여주는 식으로 '위로공단'은 여러 여성 근로자들의 인터뷰로 채워져 있습니다. 



시작은 1970년대 구로공단입니다. 구로공단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괴로움과 어려움과 서글픔과 분노가 섞인 이야기들이 들립니다. 어느 날 옆에서 일하던 동료 여성 근로자가 안 나오면 다른 여성 근로자들은 압니다.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요. 열악한 환경에서 철야 근무를 하기 위해서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먹고 일을 하고 벌집 같은 쪽방촌에서 쪽잠을 잤던 시절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 벌레보다 못한 삶을 살던 여성 근로자들이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자 여성 근로자들에게 똥물을 뿌립니다. 
이게 그 유명한 동일방직의 똥물 투척 사건입니다. 그 똥물 투척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사진으로 기록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위로공단'에서는 당시 이 사건을 촬영한 근처 사진관 아저씨의 인터뷰도 실립니다. 여성 근로자들이 친했던 사진관 아저씨를 데리고 와서 똥물을 뒤집어 쓴 여성 근로자를 촬영을 하고 그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상이 분노하게 됩니다.

사진관 아저씨는 말합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인데 그때 사진관에서 인화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전 이 말에 울컥했습니다. 영웅은 내 주변에 있구나. 정말 선하게 생긴 그 사진관 아저씨를 보면서 뭉클해지네요. 


1970년대에 시작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여성 근로자에 멈춥니다. 인상 깊었던 인터뷰는 삼성전자에 대한 속내였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 날 날 버린듯한 느낌. 삼성전자가 밉지만 동시에 애정도 많은 애증의 시선을 인터뷰에 담아냅니다. 한 반도체 근로자는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인터뷰를 하는데 제 눈시울도 붉어지네요. 세계적인 기업, 매년 30조 가까운 이익을 내는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암에 걸려서 죽는 아이로니컬함은 한국의 후진적인 기업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려 점점 현재로 이어집니다. 한진중공업 파업 때 큰 크레인 위에서 시위를 한 김진숙씨를 지나 마트 근로자와 기륭전자의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인터뷰는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가장 눈시울을 자극했던 것은 김진숙 근로자가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칠성판에서 고문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를 묻고 싶어 합니다. 
긴 한숨 뒤에 그녀는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싶다고 읇조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지만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닌 그 삶의 챗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공순이가 콜순이로 변하다

공장 여성 근로자를 우리들은 공순이라고 했습니다. 멸시의 시선이 가득 담긴 단어죠. 참 못된 사람들이 지어낸 단어입니다. 제 주변에도 공순이라고 놀리던 동네 형이 생각나네요. 물론, 저는 그런 인간들을 혐오합니다. 그래서 그 동네 형을 피했던 기억이 나네요. 공순이라는 단어는 쓰면 안 되는 단어입니다. 

이 공장 여성 근로자들은 사진관 아저씨 말처럼 정말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제 또래이거나 저보다 5~6살 정도 많은 누나들인 이분들은 지방으로 찾아온 공장 버스를 타고 무작정 상경을 해서 공장에서 근무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중학교를 막 졸업한 여공도 있었는데 너무 어리면 안되기에 신분증을 위조해서 공장에 취직하기도 했습니다. 

한창 배울 나이에 공장에서 타이밍을 먹으면서 철야 근무를 했던 소녀들과 누나들입니다. 이분들이 자기 핸드백 사려고 공장에서 일 한 게 아닙니다. 시골에 있는 남자 형제들의 등록금과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공장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이 '위로공단'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소설가 신경숙도 구로공단 여공이었습니다. 그녀가 최근에 표절로 큰 곤욕을 당하고 있는데 전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한창 문학 소녀의 꿈을 키울 나이에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수 많은 소설들을 베꼈습니다. 그게 유일한 문학 수업이었고 그렇게 다른 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에 대한 자양분을 축척했죠. 공지영처럼 다른 문인들처럼 인문계 여고 다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각설하고 
이 공순이라고 멸시당하던 분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콜순이가 대신합니다. '위로공단'에서 가장 많은 눈시울을 흘리게 하는 장면은 120 다산콜센터에서 근무하던 40대 여성 근로자였습니다. 콜센터 근무자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거나 파견직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그녀는 '워킹 푸어'를 말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돈은 버는데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에 억장이 무너집니다. 아이가 뭘 해달라고 사 달라고 할 때 그걸 해주지 못하는 '천추의 한'을 말합니다.



한 달 월급 85달러인 캄보디아 봉제 여성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담던 '위로공단'은 저 멀리 캄보디아로 갑니다. 그거 아세요. 우리가 브랜드이면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니클로 같은 국내외 패스트패션 제품 대부분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시아에서 제조됩니다. 그런데 이 캄보디아의 많은 봉제 공장들의 근로자들의 한 달 월급은 얼마일까요?

놀랍게도 비정규직은 85달러 정규직은 95달러입니다. 
70,80년대 구로공단에서 나이키 신발 한 번 신어 봤으면 하는 하소연을 했던 17살 여공과 캄보디아에서 자신이 만드는 옷이 50달러에 중국, 일본, 한국에서 팔리는데 한 달 월급이 100달러도 안 되는 모습이 겹쳤습니다. 여공이라는 최저임금을 받는 삶의 쉬프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도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처럼 고향 집으로 번 돈 대부분을 보냅니다. 

여공들의 삶도 해외로 수출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그 여공들이 떠난 자리에 비정규직이라는 신종 저임금 노동자들이 피어나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연대의식마저 끊어져 버려서 모두 신음소리만 숨죽여서 내고 있습니다. 

다만, 좀 엇나간 부분은 여성 승무원들의 감정 노동에 대한 인터뷰입니다. 이 '위로공단'이 여성 근로자라는 큰 테두리를 가진 다큐인 것은 알겠지만 공장 여성 근로자와 항공기 여성 근로자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저임금 노동을 통해 고통을 받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잘 조명하다가 갑자기 저 하늘에 더 있는 고임금 여성 노동자들에게 조명을 비추는 것은 위화감이 생깁니다. 물론, 큰 그림으로 보면 여성 승무원들의 노동 강도가 강하고 힘든 것은 알지만 돈의 시선으로 그리고 근로가 아닌 삶까지 바라보면 여성 승무원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은 이물감이 드네요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다. 

얼굴을 가린 여자분들이 계속 나옵니다. 감독 임흥순은 자신의 어머니가 구로공단 여공 출신이고 이 어머니를 위한 헌정시 같은 다큐 '위로공단'을 만듭니다. 감독은 그런 구로공단 여공의 삶을 알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렸다고 하네요. 전 이 모습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안 보이면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우리들. 그러나 지금도 여공의 삶은 편의점 알바로 캄보디아의 저임금 노동자로 콜센터 직원으로 마트 계산원으로 건물 청소부로 열정 페이를 받는 인턴들로 변이 되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큐 '위로공단' 앞 부분에서 '수출의 여인상' 제막식을 보여줍니다. 현재 가산디지털단지 한켠에 세워진 '수출의 여인상' 제막식 장면을 거꾸로 돌려서 제막식이 아닌 막을 씌워버립니다. 이는 감독이 현재의 한국 사회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여전히 자본가가 노동자를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나라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전 창피했습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회식을 하러 갔는데 정규직 직원만 백세주를 먹고 파견직과 비정규직은 백세주를 먹지 못하는 파렴치한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이 기륭전자는 수년 간의 투쟁 끝에 복직이 되었지만 몇 년 전에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몇몇 성긴 모습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다큐입니다. 무엇보다 여성 노동자의 삶을 70년대부터 2015년 현재까지 헝크러지 않게 잘 담은 것도 인상 깊고 캄보디아의 여성 근로자의 삶도 길어 올리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살짝 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자본가들의 고생도 알고 그들의 고통과 괴로움도 이해합니다. 다만, 노동자를 자본가의 하인이나 똥개 취급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소한 인간 취급을 해줘야죠. 그러나 똥물을 뿌리고 문자로 해고하고 휴게실도 만들지 않고 맨바닥에서 밥을 먹게 하는 그런 쓰레기 같은 자본가는 사라졌으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앞만 보고 살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사는 세상을 살 것입니다. 자기 앞만 보고 살기 때문에 옆에서 누가 쓰려지고 밟히고 개 취급을 당해도 그걸 보지 못합니다. 그러다 내가 개 취급을 당하죠. 

남자 형제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닌 남자 형제들의 삶에 불쏘시개가 된 여성 근로자들에 대한 위대한 헌정시가 바로 '위로공단'입니다. 이 다큐가 지난 날 큰 고통을 받았던 여공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네요. 그러나 그녀들의 살았던 그 80년대 삶이 지금은 너무 보편화되었습니다. 그 현실에 눈을 가리고 싶어지네요

성실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성실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나라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