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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밤에 피는 오색찬란한 길상사의 연등

by 썬도그 201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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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참 싸움을 넘어 전쟁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한국은 싸움도 전쟁도 하지 않습니다. 일부 개신교인들이 사찰에 하나님 믿으라고 낙서를 하고 악담 같은 저주의 굿판을 벌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종교 간의 갈등은 거의 없습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는 수많은 나라들을 보면 한국은 참 신기하고도 종교간의 갈등이 거의 없습니다. 중동과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등 찾아보면 종교가 다르다고 서로를 죽이는 모습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종교가 왜 필요한가? 오히려 사람 죽이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왜 한국은 종교간의 갈등이 없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제 짧은 생각으로는 한국의 종교들이 다 다른 것 같지만 복을 기원하는 기복 신앙이기 때문에 갈등이 적은 것은 아닐까요? 부처님과 하나님 예수님을 믿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그 종교의 삶을 살면서 다음 생을 위하기 보다는 우리가 숨쉬는 이 현세가 최고이고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세 종교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때문에 현세를 잘 살기 위해서는 현세에 모든 복을 끌어다 쓰고 싶어하는 기복 신앙이 강하기 때문에 갈등이 없는 것 아닐까요?

예수님도 하나님도 부처님도 내 복을 위한 존재라고 하는 생각 때문에 예수님 말도 맞고 부처님 말도 맞고 하나님 말도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신이라는 절대자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종교가 가진 신의 형태를 부정하는 불가지론자인 저는 길상사의 성모마리아 같은 관세음보살님 상을 보면서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성북동의 작은 사찰인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을 10분 넘게 쳐다 봤습니다. 

그리고 미소가 지어지네요.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종교의 역할은 인류의 진화에 지친 인간들의 휴식처 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종교들이 세상의 변화를 무조건 반대만 하는 바리케이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되네요. 저 인자한 미소. 저 미소면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그 많은 문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처럼 부처님처럼 살면 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너무 그 말에만 집중합니다. 코란, 성경, 불경을 너무 원리 원칙대로 믿고 따르는 근본주의자들이 세상 분란의 반을 일으키는 것 같네요.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매년 연등축제를 보고 연등행사를 따라 다니며 해마다 성북동의 길상사를 찾습니다. 길상사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연등 때문입니다. 



길상사는 1987년 공덕주 길상화 김영한님이 부처님에게 봉헌한 사찰입니다. 
김영한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유명한 백석시인과의 러브 스토리가 있는 백석의 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석 시인을 떠나보내고 요정인 대원각을 운영하다가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뜻을 따라서 부처님에게 대원각을 봉헌합니다. 그래서 도심 한 가운데 사찰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찰은 산 중턱이나 꼭대기에 있죠. 



다른 사찰과 다른 점이 거기에 있습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뛰어난 접근성과 함께 계곡을 끼고 있고 경치가 좋아서 아름다운 사찰 중에 하나가 길상사입니다. 










제가 길상사에 오는 이유는 연등 때문도 있지만 서울에서 느끼기 힘든 작은 숲속 공원 같은 공간 때문입니다. 전각은 많지 않지만 숲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 같은 길을 걷다보면 도시의 날카로움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길상사의 연등은 참 현란합니다. 색이 청색, 녹색, 노란색, 붉은색을 사용하는데 이는 한국의 오색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낮에도 참 시원스럽습니다. 또한, 등이 둥근 형태라서 알사탕 같은 느낌이 납니다.


하얀 등은 연가등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등입니다. 기복 신앙이라고 한 말은 저 등들이 모두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내용이 써 있는데 교회나 성당이나 불교나 모두 자신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참 많이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곳곳을 촬영하고 연등이 켜지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통 매년 7시 30분에 연등을 켜는데 올해는 좀 늦네요. 부처님 오신날이 매년 다르기 때문인데요 작년에는 4월 말에 했던 부처님 오신날이 올해는 5월 말이 되었네요. 1달의 차이는 해지는 시간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7시 40분에 점등을 했습니다. 


언제봐도 매년봐도 길상사의 연등은 아름답네요. 



오색 찬연한 연등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네요. 동영상으로도 열심히 촬영 했는데 PC로 옮기다가 뻑이 나서 다 날아가버렸네요. 복구 프로그램으로 돌렸는데 사진은 복구 됐는데 동영상은 안되네요. 망했어요.그나저나 이 연등행사는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불교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 자세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팔관회

이 연등회를 알기 전에 팔관회를 살펴봐야 합니다. 팔관회는 한반도의 토속신앙과 불교가 결합되어,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토속신이나 부처에게 기원했던 행사입니다. 이 팔관회는 신라 때 시작해서 고려까지 이어진 불교 의식입니다. 신라 진흥왕 때는 전사한 병사의 명복을 빌기 위한 호국 사찰인 황룡사에서 두 차례 개최한 후 시행하지 않다가 고려 태조 원년에 개경과 서경에서 개최 됩니다. 




고려 태조 때 정원에 등을 밝히고 향을 피워 광명과 향기가 가득하게 했습니다. 팔관회 행사에서 축제처럼 춤과 노래가 펼쳐지면  외국 상인들이 의식에 참가해서 토산물을 바쳤고 죄인에게는 사면을 내렸습니다. 

이 팔관회는 부침이 있었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사치와 향략의 폐단도 있어서 성종 6년 폐지했다가 현종 원년인 1010년에 부활했다가 100년간 성행했다가 점점 쇠티합니다. 팔관회와 연계된 연등회는 집집마다 등을 밝혀 부처의 자비와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연등 행사가 현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석가탄신일 전후로 펼쳐지네요.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네요. 풍등도 비슷하죠. 뭔가 희망하고 기원하는 의식. 연등 의식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하늘에 걸어 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해가 지고 길상사에 밤이 찾아오자 연등이 점점 더 빛을 강하게 드리웁니다.














삼각대를 놓고 촬영 하다가 하늘을 향해서 촬영해 보고자 카메라를 하늘로 향했는데 뷰 파인더를 보기 힘드네요. 생각해보니 제 카메라가 회전 액정이 달린 카메라라서 이 어려운 난관을 쉽게 극복했습니다. 

솔직히 호전 액정이라고 해서 사진 촬영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뷰 파인더를 보면서 촬영하는 것이 99%라서 라이브뷰 모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는 라이브 뷰와 회전액정 조합이 아주 좋네요.




덕분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네요




길상사는 나무가지에도 연등을 올려 놓는데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느낌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다른 점은 나무를 그대로 이용한다는 것이 다르네요






부처님 오신날이 지나도 1주일 정도는 계속 켜 놓을 듯 합니다. 작년에도 그랬거든요. 
길상사 연등은 유명해서 해외 관광객들도 참 많이 찾아오네요



올해는 길상사 가기가 좀 더 편해졌습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6번 출구에서 20미터 정도 걸어가면 성북 마을버스 2번을 타면 기점이 길상사입니다.  눈이 호강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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