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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소비의 시대에 생산의 기쁨을 처음 느끼게 해 준 5석 라디오 키트

by 썬도그 201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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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소비하고 사랑하라.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흔한 화두이자 생활 방식입니다. 특히 먹방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로 요즘 먹는 방송이 엄청난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구강기 시대라고 평가한 분도 있던데 그 평가가 꽤 와닿네요. 그 말처럼 정멎 세상은 근원적인 욕망에 천착해 가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엄청난 정보가 흘러 다니는 시대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는 갈수록 단순해지고 있습니다. 정보는 진득하지 못한 정보들이 난무하고 그런 사탕 같은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정보들에 중독 되어서 살아갑니다. 이게 다 소비지상주의가 만들어낸 풍경 아닐까 합니다. 먹기 힘든 음식은 먹기 좋게 재가공해서 많이 팔리게 하는 것처럼 요즘 정보들은 먹기 좋게 잘라서 파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대표적인 게 페이스북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카드 형태의 콘텐츠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형태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게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고 좋아한다면 그 방식도 좋은 방식이죠. 오히려 제 글처럼 잡다한 소리 잡음 같은 소리 다 삭제하고 핵심만 적어 놓는 것이 더 좋기도 하죠. 

다만, 그런 짧은 글에 이 세상을 담기에는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따라서 긴 호흡이 필요할 때는 긴 호흡으로 정보를 만들고 소비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삶의 동기화 시대에 다른 방식이 가지는 차별성 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현재 과천 현대미술관에서는 2월 17일부터 6월 28일까지 사물학2 : 제작자들의 도시 전시회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다양한 팀들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예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예술은 기술과 어떤 관계일까요? 수많은 예술이 있지만 기술의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예술은 미디어아트 쪽과 인터렉티브한 예술이 아닐까 합니다. 이쪽은 상용화도 안 된 기술을 이용해서 예술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유화 그림을 그리는 미술이 기술의 영향을 받지 않았냐? 아닙니다. 유화도 하나의 발명품인데요. 새로운 기술이 태어나면 예술은 적극적으로 그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활영도 면에서 예술은 기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드리면서 성장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몇년 후에는 3D프린터로 조각한 조각품을 전시장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몇몇 조각가는 이미 그런 제작방식을 시작했고요. 사물학2 : 제작자들의 도시는 다양한 팀들이 기술을 접목한 예술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자공학 전공하신 분들은 이게 뭔지 아실거예요. 브레드보드판이네요. 어떤 회로를 구현할 때 밑그림 작업을 이 브래드보드판을 이용해서 제작하죠




전시회를 둘러보다가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5석 라디오 키트. 이거 기억나세요? 30,40대 분들이라면 이거 잘 아실거예요. 제 기억으로는 중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라디오 키트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인두기를 이용해서 납을 녹여서 부품을 전자기판에 고정 시키는 재미.  5석의 석은 트랜지스터입니다. 

이걸 발견하고 페이스북 올렸더니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요즘도 활발히 하겠지만 학교가 주는 가장 큰 유용성은 뭔가 해본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정보나 지식이 대부분 텍스트와 말로 이루어지고 있던 80년대에는 이렇다할 시청각 또는 체험 도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냥 줄창 외우는 것이 대부분이었죠. 그러나 그런 공부들은 사실 실생활에 크게 도움 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정도의 기술은 중학교 정도면 끝입니다. 고등학교부터는 살면서 몰라도 크게 문제가 없는 것들을 배우고요. 그러나 이런 만들기들은 살면서 큰 도움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이 5석 라디오 키트를 이용해서 AM라디오를 만들어서 세상 사는 데 도움이 되냐? 그건 아닙니다. 다만, 무엇인가를 만들었다는 그 쾌감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초등학교때에도 국기함 만들기 전등갓 만들기 등을 만들었지만 만들기의 즐거움 보다는 고통이었습니다. 별 관심도 없는 것을 만드니 그 시간이 즐거움보다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때 이 라디오키트를 만들면서 굉장한 흥미를 느꼈습니다. 부품을 꽂고 납땜을 하니 라디오가 만들어집니다.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궁금했는데 자세한 원리 설명은 없었지만 라디오가 나오는 그 마술 같은 경험을 하고 난 후 집에 있는 라디오를 분해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분해의 문제점은 분해할 때는 좋은데 다시 조립하면 잘 조립이 안 되는 게 문제죠. 

그런 식으로 전자 쪽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학교 앞 문방구에서 다양한 전자 키트를 사서 놀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이 라디오 키트에게 꽂힌 것은 생산의 기쁨 때문입니다. 봄에 뿌린 씨가 가을에 열매를 맺는 것 이상의 포만감과 쾌감이 있었습니다. 


실과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실생활에 필요한 스킬을 배우는 과목이죠. 바느질, 김치 만들기 등등 살면서 해야할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시간입니다. 전 이 시간이 너무 기다려졌습니다. 뭔가 배운다는 느낌이 강한 과목이니까요. 



전등갓 만들기, 아크릴판을 이용한 연필통 만들기 등등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과목이자 가장 인상 깊은 배우기들이 많았습니다. 아크릴판 구하려고 동네 간판집에 가서 아크릴판 사서 조각칼 같은 것으로 아크릴판을 재단하다가 피까지 났던 모습 등등이 떠오르네요. 다만, 학교에서 이런 준비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니들이 알아서 구해서 해와~~라는 모진 교육 방식인 것이 아쉽기는 했죠. 

뭐 그것도 생존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귀찮아서 알아서 사오라고 한 것 같기도 하네요. 덕분에 어른과 거래를 하는 방법도 직접 체험해 봤고요. 그런데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이런 과목이 없다고 하네요. 우리는 못박기 바느질 하기를 다 학교에서 배우는데 프랑스에서는 안 가르친다고 하네요. 뭐 그런 거 모르고 산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고 조금 불편할 뿐 돈으로 해결할 수 있기에 굳이 배울 필요는 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혼자 만들면서 단순히 만들기의 완성품을 얻으면서 끝이 아닌 그 만드는 과정에서 봉착하는 문제와 해결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만들기는 세상을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죠. 체험. 이게 아주 중요한 경험이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체험의 시대라고 합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그냥 봐라~~하는 방식은 인기가 없습니다. 보고 느끼고 직접 만들어보라고 하는 체험 교실이 꽤 많습니다. 체험은 돈 주고 살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을 나이드신 분들은 어차피 똥 될 것 뭘 비싼 것을 먹어?라고 할 수 있지만 요즘은 나 그 비싼 것 먹어 봤어. 나 그거 해봤어. 그거 타봤어 등등 체험이 자랑꺼리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봉인 월급에도 과도한 돈을 투자해서 체험을 하는 분들이 있죠. 


체험의 시대의 교과서가 실과 그리고 중학교에서는 기술/가정입니다. 작년에 개인 신분으로 우주에 인공위성을 띄운 송호준씨는 다큐가 그리는 희망 나부랭이가 아닌 체험을 해보고 싶어서 쏘지 않았을까요? 본인 말로는 뭔가 하고 있다는 그것 때문에 한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히던데 아마도 송호준 씨는 뜻하지 않았던 뜻했던 인공위성 만들기 체험을 했습니다. 

그건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체험이죠. 그것도 개인 자격으로는 최초고요. 
소비의 시대에 생산의 기쁨, 만들기의 기쁨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지네요. 소비의 습관을 줄이는 좋은 방식 중 하나가 만들기에 빠지는 것 아닐까요? 전 콘텐츠 만들기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글도 하나의 만들기이고 생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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