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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전시회

서울도서관에서 전시중인 서울광장이야기 전시회

by 썬도그 2015.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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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인구 1천만 명이 사는 거대한 도시이지만 처음부터 거대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해방 전의 서울은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만 서울이었습니다. 용산이 서울에 편입된 이유는 일본군 주둔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해방 바로 전에는 대륙 침공에 열을 올리던 일본은 영등포를 공업지대로 지정해서 철공소와 공장을 마구 세웁니다. 영등포를 새로운 서울로 편입한 이유는 영등포의 공장의 매연들이 사대문안으으로 흘러가지 않고 바로 지금의 강남 지역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한강 남쪽에 공장지대를 세웁니다. 여기에 경인선이 지나가는 교통의 편의성이 컸죠

그렇게 남쪽 부도심의 제왕이었던 영등포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로 서서히 돈과 권력의 추가 강남으로 서서히 이전합니다. 이 과정을 영화 <강남1970>이 잘 그리고 있습니다.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서울은 지금의 서울처럼 거대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의 진짜 서울은 종로구 , 중구입니다. 세상 수많은 일들이 이 종로와 중구에서 일어납니다. 특히, 여론의 동향이나 시민들의 분노와 환희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시청 앞 광장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위를 하거나 축제를 하는 다용도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더 넓고 편한 여의도 광장에서 시위나 집회를 하지 않고 서울광장에서 할까요? 그건 아마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고 서울의 중심이라서 교통의 편의성도 있을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서울의 중심이자 유동인구가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기에 서울광장에서 많은 이벤트와 시위와 축제를 하나봅니다. 예로부터 광장은 민의가 모이는 곳이였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광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가 옛 서울시청 건물을 리모델링한 '서울도서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는 서울도서관 2층부터 5층 계단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전시 공간을 내서 하는 것이 아닌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감상할 수 있게 했네요


처음에는 그냥 지나칠려고 했습니다. 전시회라고 인식하기에는 정갈하지 않아서요. 그러나 옛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따라 들어가게 하네요. 그리고 구보씨라라는 서울 시민을 대표하는 인물을 등장해서 자연스럽게 서울광장 이야기를 펼쳐내는 군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 된 한국전쟁, 서울시청 앞에는 북한의 소련 탱크가 지나가고 서울시는 북한의 손아귀에 점령 당합니다. 미디어 오늘에서는 이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긴급 호외를 내서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쳤다는 호외를 입수해서 내일 그 호외를 낸 신문사를 밝히겠다고 하네요. 궁금하네요. 아마도 가장 보수적인 신문 그러나 간신배 같은 신문사가 아닐까 합니다.



1960년대 광장은 시민혁명의 장소이자 


동원된 행사의 광장이기도 했습니다. 60년대 이승만 정권과 어부지리로 자리를 맡은 또 하나의 보수 정권인 신민당 그리고 다시 탱크를 앞세우고 쿠테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정권은 뭔가 보여줄 것이 있으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발대식이나 선언식 등을 했습니다



넝마주이 갱생 취업식을 했는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장 당시 노숙인들에게 건설현장에서 근무하게 한 그 모습과 비슷하네요. 하여튼, 뭔가 보여주려고 하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저렇게 했네요. 


정권 찬양 또는 정권 홍보의 광장이기도 했지만 축제의 광장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해외 서커스단이나 공연단의 공연도 있었고 다양한 민속 축제나 국가의 경사가 일어나면 서울광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물들었습니다



뭐 잘아시겠지만 2002년이 가장 대표적이죠



1960년 4.19혁명은 민심을 대변함과 동시에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로 가득찼습니다. 부정선거로 당선 된 이승만 전 대통령은 CIA의 압력과 국민들의 압력으로 대통령에서 물러납니다. 


당시 한국 군대는 계엄령을 발동하지만 이상하게도 시민들의 시위를 막지 않고 오히려 멀뚱히 쳐다만 봐서 시민들이 그 모습에 힘을 얻고 시위가 더 커졌다고하죠




그러나 1961년 박정희 소장이 탱크 몰고와서 군부가 정권을 빼앗아갑니다. 그렇게 1980년까지 약 20년 간 박정희라는 장기 집권 시대가 됩니다.


민주 시민 혁명은 탱크 앞에 사라졌습니다. 다만, 이 4.19가 시스템을 갈아 엎자고 하는 프랑스식 혁명이 아닌 자유당 타도를 외치던 혁명이어서 쿠테타가 일어나도 크게 반대하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박정희를 암묵적으로 지지한 것도 있겠죠.





흥미로운 사진이 있는데 현재의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은 예전에는 서울시청 쪽으로 좀 더 튀어 나와 있었습니다. 그것도 철담으로 둘렀는데 문화재관리국 요청으로 다시 돌담으로 바뀌었네요



박정희 제 6대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공보부 트럭이 지나가네요. 현재로 말하면 국가홍보처라고 할 수 있죠






서울시의 첫 지하철이 개통됩니다. 1974년 개통 되는데 70년대 말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서울 지하철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많이 소개 된 사진이네요. 이 1970년대는 매일 오후 6시가 되면 국기강하식이 있었고 전국에서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로 시작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울려퍼지면 국기를 향해서 경례를 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졸렬한 행동들이죠. 그러나 그 독재 국가 시대에는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박근혜 정권이 부활 시키려고 하네요. 아버지가 하던 것을 모두 따라하려는 딸의 숙명인가요?



전 박정희가 싫고 그의 딸 박근혜도 싫습니다. 하지만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누군가는 좋아할 수는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국의 좌파들은 박정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그런 배타적인 사고로는 좌파들이 원하는 정권 창출은 이루기 힘듭니다.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노제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못지 않게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구름 인파가 몰려 왔습니다. 비록 연예인 끼고 요정에서 술 먹다가 죽었지만 한 나라의 왕이 죽었기에 이렇게 몰려 온 것 보세요

이들이 모두 무식하고 무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민족주의 민족이기에 대통령을 왕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죠. 



1980년대 서울광장은 또 한 번 크게 요동칩니다.


1987년 6월 10일 6.10 민주 항쟁이 일어났던 곳이자 


1988년에는 올림픽기가 펄럭였습니다. 신기한 게 매일 같이 시위를 하던 대학생들이 올림픽 기간에는 시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 않은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 안하고 지하철 역마다 젊은 사람은 다 잡아서 가방 검사, 소지품 검사를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2002년 이 서울광장은 보혁갈등의 성지를 넘어서 월드컵의 성지가 됩니다. 처음으로 경상도, 전라도 사람 가리지 않고 좌와 우 가리지 않고 모두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이젠 추억이 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죽기 전에 이런 경험 한 번 해봤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이때만 해도 저도 대단한 민족주의자였는데요. 



2002년 이후 서울광장은 잔디광장으로 바뀌게 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광장 주변의 건물들이 지어지는시기를 담은 사진들도 꽤 유심히 볼만하네요. 


1970년대에 세워진 플라자 호텔과 서울광장 잔디 위로 봄비가 내립니다.


서울 도서관 가실 일 있으면 잠시 들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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