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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분단의 아픔을 이산가족으로 풀어낸 영화 길소뜸

by 썬도그 2014.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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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의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곽순옥이 부른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1964년 제작된 영화 <남과북>의 오리지널 스코어입니다.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은 1983년 KBS의 이산가족찾기 때문입니다. 마징가Z나 스머프, 그레이트 마징가를 봐야 하는데 KBS에서는 하루 종일 이산가족찾기만 해줍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비오는 날 가게에서 라면 사와서 곤로에 라면 끓여서 아버지와 함께 이산가족찾기를 보던 모습이요

어린 나이에 그 이산가족찾기가 다 이해 갔던 것은 아닙니다. 한국전쟁 때 헤어진 가족들을 찾기 위한 것은 알았지만 
헤어짐의 고통 그것도 수십년 간 소식도 모른 채 산 고통은 잘 모릅니다. 태어나서 10년 조금 넘은 아이가 뭘 알겠습니까? 30년 이상 헤어져 살았다는 그 긴 세월의 크기를 갸늠할 수 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이산가족찾기 방송 때문에 재미있는 프로그램 하지 않는 것이 원통스럽기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 철 없던 행동이고 오히려 요즘 이산가족찾기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적십니다. 연말에 개봉할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의 현대사를 소시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모든 관객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산가족찾기'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가 바로 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입니다. 이산가족찾기의 주제가라고 할 정도로 노래 가사가 이산가족찾기의 아픔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산가족찾기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80년대에 있었습니다.  1985년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길소뜸'이 있었습니다. 


 이름만 많이 들었습니다. 인형 같은 외모를 지닌 80년대 하이틴 스타 중 탑을 달렸다고 할 수 있는 이상아가 출연한 영화라는 것과 이산가족찾기를 다룬 영화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본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고 이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마침 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 길소뜸을 무료로 상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 : http://www.youtube.com/watch?v=_by9vE3trI8


영화는 1983년 이산가족찾기를 하는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세 아이의 엄마인 민화영(김지미 분)은 화목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습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화영은 식구들과 함께 이산가족찾기를 보다가 남편이 찾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찾아보라고 용기를 줍니다.

이에 화영은 한국전쟁 후에 헤어진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해서 이산가족찾기 현장인 KBS를 찾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김동진(신성일 분)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30년이 지난 지난 세월을 해후 하면서 지나왔던 삶을 서로 꺼내서 보여줍니다. 


김동진과 민화영은 어린 시절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길소뜸이라는 마을로 이주한 화영의 가족은 아버지 친구분의 도움으로 마을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역병이 돌아서 화영을 빼고 온 가족이 역병으로 죽습니다. 홀로 남은 화영은 아버지 친구네 집에서 기거하면서 학교를 다닙니다. 아버지 친구 아들인 동진은 화영이를 동생처럼 여기는 것을 넘어서 연인 사이로 지냅니다. 

동네에 이런 소문이 쫙 퍼져서 아버지 친구는 노발대발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꺼지지 않습니다. 결국 둘은 창고에서 잠자리를 하고 화영은 임신을 한 채 서울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동진의 애를 임신한 화영은 길소뜸으로 내려왔다가 화영을 찾으러 서울로 간 동진과 길이 엇갈리게 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전쟁통에 생사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됩니다.

화영은 홀로 애를 키우면서 간첩 협의 등 갖은 고초를 당합니다. 감옥에 갔다 출소한 화영은 사라진 아들에 큰 실망을 하면서 떠돌이 인생을 살게 됩니다. 동진도 화영을 찾기 위해서 날품팔이를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화영을 찾습니다. 그러나 둘은 둘 다 가정을 가진 후 이산가족찾기 현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찾기 위해서 이산가족찾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화영은 전쟁통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둘 다 따로 가정을 꾸민 화영과 동진이지만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찾기 위해서 수소문을 하다가 춘천 인근에 사는 아들로 추정 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어린 시절 기억도 많지 않습니다. 30년이 지나서 만난 아들이라고 추정되는 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들에게서 이물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화영이 운전 하다가 개를 길에서 치었는데 아들로 추정되는 석철은 그 개를 차에 태우려고 합니다. 

저는 그 모습에 석철이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마음은 고운 줄 알았더니 차에 태우려고 한 이유는 개고기가 비싼 고기라면서 잡아 먹을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강가에서 사람이 죽으면 지켜보고 있다가 가족들이 울고불고 하면 일부러 고생한 끝에 시체를 찾아주면 돈을 더 많이 받는다는 말도 화영 앞에서 스스럼 없이 말합니다. 이에 화영은 구역질을 합니다.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은 듯한데 자신이 생각한 아들이 아닌 천박한 사람에서 오는 괴리감에 갈등을 합니다. 
이에 동진과 화영은 피를 뽑아서 DNA 검사를 해보자고 하죠. 결과는 거의 확실하게 화영과 동진의 아들로 나옵니다. 그러나 화영은 자신의 아들일리가 없다면서 그 결과를 거부합니다. 


그렇게 동진과도 헤어지고 아들 석철과도 헤어진 후 홀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국도에서 화영은 핸들을 꺾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영화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이나믹한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만나는 것 자체가 현재의 가족들에게는 좋을 리 없죠.

그럼에도 핏줄은 질기고 질깁니다.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내 새끼는 내 새끼입니다. 같은 피붙이라는 자체 하나만으로도 단 10분 만에 부등켜 안고 흐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피붙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저는 화영이 아들 석철을 거부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국과 북한이 그렇거든요

아들 석철은 현재의 북한 동포를 은유하고 있습니다. 
같은 한민족이지만 쓰는 말도, 사고방식도 문화도 다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한민족, 같은 동포라고 말하지만 정작 같이 살려고 하면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화영은 석철이 자기 자신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또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식과 너무나도 다른 석철을 밀쳐 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이 모습은 길소뜸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은유를 이끌어낸 시나리오도 꽤 좋네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우리는 분단을 당해야 했냐고 따지던 아들 석철. 이에 힘이 없는 것이 죄라면 죄라고 말하는 아버지 동진의 대사가 마음이 아프네요. 역사상 가장 참혹했고 특히 민간인 사망자가 많았던 한국전쟁, 골로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애먼 사람들이 골자기로 끌려가서 집단 처형으 당했던 그 한국전쟁의 아픔을 이산가족찾기로 잘 담아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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