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동아리 티셔츠를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맞췄습니다. 
디자인도 잘 나오고 선배들도 디자인이 좋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아리실에 도착한 후에 티셔츠 장수를 세어보니 100장이 아닌 80장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 물건을 받을 때 장수를 꼼꼼하게 세어보고 받았어야 하는데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 그때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도둑놈들이 많다는 것을요. 이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했더니 아버지는 제 손을 끌고 평화시장에 갔고 그 가게 앞에서 한 바탕 큰소리를 내시더니 돈을 받아내셨습니다. 저 보다 키가 작으신 아버지가 저 보다 크게 보이긴 처음이었습니다. 울적한 내 기분을 풀어주시려는 지 아버지는 잘 가는 순대국밥 집이 있다면서 허름한 순대국밥 집에서 아버지와 순대국밥을 먹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먹는 순대국밥이 잘 들어갈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사주신 순대국밥을 꾸역꾸역 다 먹었습니다. 그게 아버지에 대한 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순대국밥을 먹을 때 마다 그때가 생각납니다. 큰 말이 없으신 아버지지만 아들 앞에서는 거대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성애를 다 느낀 것은 아니였습니다. 아버지가 순대국밥을 사주는 그 '애비의 심정'을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해는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오롯하게 이해가 됩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순대국밥을 사주시던 아버지라는 거룩한 이름을 가슴 가득 담는 영화입니다. 


흥남철수, 파독광부, 월남전, 이산가족찾기라는 한국의 슬픈 현대사를 영상으로 담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 순으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부산항을 내려다 보면서 두 주인공인 덕수(황정민 분)와 영자(김윤진 분)라는 노부부가 옛 일을 회상합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추억을 되새김질 하면서 회상하는 구조로 영화는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번 회상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수시로 현재의 노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과거와 달라진 국제시장의 변화 된 모습을 나우 앤 댄 사진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국제시장이라는 공간에 잘 비벼냅니다. 이런 미끈한 연출력과 과거로의 회상의 자연스러움은 윤제균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이겠죠. 

두사부일체, 1번가의 기적, 해운대에서 갈고 닦은 스토리텔링이 국제시장에서는 더 촘촘하고 견고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노인이 막걸리 먹으면서 동네 노인정에서 내가 왕년에 말이지~~라고 시작하는 뻔하디 뻔한 신파극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이 박정희 정권을 미화시키는 영화가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감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신파적은 요소는 있어도 과거를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우리네 아버지들의 고생담을 진솔하고 화려한 영상으로 담습니다. 

 과거 장면은 흥남 철수로부터 시작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흥남 철수만 소재로 삼아서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습니다. 한국 전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비극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순간이 바로 흥남철수입니다.  바다에 떠 있던 미 해군의 군함들이 무기를 바다에 버리고 그 무기만큼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도로 향했던 그 휴먼 드라마는 따로 영화로 만들어도 남을 정도입니다.

흥남 철수 장면은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미군 군함에 타다가 덕수의 등에 업혀 있던 동생 막순이가 떨어지고 막순이를 찾는다면서 아버지는 다시 배에서 내립니다. 그렇게 막순이와 아버지를 흥남 부두에 남겨두고 배는 거제도로 떠납니다.


부산 국제시장에 도착한 덕수네 일가는 고모가 운영하는 꽃분이네 가게에서 피난민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 피난민 시절을 지나서 
덕수는 평생 아버지와 동생 막순이에 대한 죄책감을 간직하면서 삽니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덕수는 필사적으로 아버지와의 약속인 어머니와 함께 어린 동생을 키우는 강인한 장남이 됩니다. 


서울대에 입학한 동생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하고 싶은 공부도 포기하고 파독광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일을 합니다. 여기에 막내 동생인 끝순이의 결혼을 위해서 베트남에 돈을 벌러 갑니다. 영화는 덕수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가족을 위한 삶을 사는 모습을 진솔하고 진중하게 담습니다.

이는 우리네 수 많은 어머니 아버지 또는 우리의 형님 누님들이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공장에서 일을 했던 작은 영웅들의 삶을 집중 조명합니다. 덕수의 이런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을 흔들어 놓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83년 이산가족찾기에서는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사람들조차 펑펑 울게 합니다. 이 이산가족찾기 장면에서 안 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할 정도로 영화관 전체를 눈물 바다로 만들어 버립니다.  슬픈 장면을 억지로 만들어서 억지 눈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억지 눈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 우리네 아버지 또는 형님 누님들이 진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으면서 맑은 눈물을 자아내게 합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몇년 전에 작고하신 부산 출신의 최민식 사진작가의 위 2장의 사진이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스치듯 나옵니다. 국제시장에서 바닥에 그릇을 놓고 국수를 먹는 소녀의 모습과 한쪽 다리와 팔이 없는 분이 신문을 파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 살짝 나오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윤제균 감독이 과거 장면을 재현하면서 최민식 사진작가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할 정도로 촘촘하게 과거를 잘 재현합니다.

다만, 앙드레 김, 이만기, 남진 같은 실존 인물을 영화에 녹여내긴 하지만 이런 부분은 이물감이 듭니다. 원래 이 영화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했었는데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가 되지는 못합니다. 이 부분은 좀 아쉽고 차라리 이 부분을 아예 도려내버렸으면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 아쉬움을 덮고도 남을 눈물과 웃음이 가득합니다. 



오달수의 코믹연기가 눈물로만 흐르던 영화를 다잡는다

국제시장을 보면서 3번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흥남철수 장면과 독일에 돈 벌러간 덕수가 탄광 갱도가 무너지자 파독 간호원이었던 영자(김윤진 분)이 가난한 나라에서 와서 당신들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제발 살려 달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이산가족찾기는 보는 내내 눈물이 주룩주룩흐릅니다. 

나이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죠? 그건 경험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경험이 많아지고 그 경험이 영화와 링크 되면서 더 크게 반응을 합니다. 파독광부나 월남전은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이산가족찾기는 제가 생생하게 목격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방송 역사상 최장의 생방송 기록을 한 1983년 이산가족찾기 방송은 많은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이산가족찾기를 경험하지 못한 10,20대 관객들고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과거를 CG를 이용해서 훌륭하게 재현했으며 배우 황정민과 김윤진의 뛰어난 연기 덕분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초지일관 눈물샘만 자극했다면 그냥 최루 영화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울어도 2시간 내내 울면 지치죠. 상업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이 영화도 코믹적인 요소를 많이 투입해서 영화의 맛을 풍부하게 합니다. 그 코믹적인 요소의 8할은 달구역을 한 오달수에게서 나옵니다. 

 오달수는 영화 전체에서 웃음을 선사하는데 해적의 유해진보다는 살짝 떨어지지만 올해 최고의 조연 중 한명입니다. 
관객들은 오달수가 나오면 웃을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영화 내내 큰 웃음을 줍니다. 여기에 억척 고모인 덕수고모역을 한 라미란의 감초 연기도 빛을 발합니다. 


황정민, 김윤진의 환상 캐미와 연기력이 빛을 발하다

 생각보다 액션도 꽤 있습니다. 베트남전쟁 장면이나 탄광 갱도 붕괴 사고 등 액션 장면도 꽤 있어서 휴먼 드라마로만 흘러서 밍밍한 화면의 질감을 좀 더 풍성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시장>을 이끄는 엔진은 꽤 잘 만든 시나리오와 함께 황정민 김윤진의 연기입니다. 
두 배우 모두 연기 하나는 국내 1등급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연기력이 폭발을 합니다. 특히 황정민이 연기하는 덕수는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하는데 관객들이 쉽게 덕수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뛰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전 이 장면이 참 맘에 들었습니다. "왜 당신 인생에 당신은 없어"라며 따지는 아내 영자에게 "이게 내 팔자"라면서 화를 내면서 싸우는 두 부부가 국기하강식이 시작 되자 싸우면서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장면은 웃픈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한 장면에서도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제공하는 기민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순대국밥 같은 뜨거운 부성애가 철철 넘치는 영화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을 관통하는 주제는 부성애입니다.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굴곡 진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해서 잘 담고 있습니다. 영자가 덕수에게 따지듯 말하는 "당신 인생에 왜 당신은 없어"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우리네 아버지들 또는 형님 누님들은 자신의 삶을 평생 살지 못합니다.

당신의 꿈이 뭔가요?라는 질문 조차도 그들에게는 사치인 우리네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대신에 동생들을 키운 형님 누님들의 거대한 사랑이 영화 전체에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아버지 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가득 그려져서 눈물의 커텐이 계속 쳐지네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식 사진 속의 훤칠하게 잘 생긴 아버지와 곱디 고운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고왔던 사람이 나 때문에 이렇게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영화 <국제시장>은 그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에게 잘 들려주지 않은 옛 이야기를 뛰어난 영상미와 모나지도 튀지도 않으면서도 매끄럽게 잘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항상 사진을 찍을 때면 눈을 감는 친척이나 가족이 있듯 영화는 그 시절의 디테일도 아주 뛰어납니다. 
요즘 부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터스텔라의 인기 요소도 부성애 때문이죠. <국제시장>은 인터스텔라 부성애 보다 더 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말수가 적어서 가족들 앞에서 자신들의 고생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아버지들은 매 순간순간마다 세상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늙은 덕수가 아버지 사진 앞에서 어린 덕수가 되는 장면은 명장면입니다. 항상 어머니나 아버지가 태어나서부터 어머니 아버지로 산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물론 저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분들도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었던 시절이 있음을 간과하는데 영화 <국제시장>은 이 부분을 잘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세상의 풍파 앞에서 두렵고 무섭고 떨리고 도망치고 싶지만 가족이 보고 있기에 단 한번도 고통의 비명을 지르지 않고 견디면서 만들어지는 이름입니다.  

온 가족이 볼만한 영화이고 명량보다 더 재미있게 본 영화입니다. 감히 예상하자면 이 영화 최소 1천만 관객은 볼 듯 합니다.
연출, 연기, 스토리 모두 좋은 영화입니다. 젊은 관객들의 시사회 반응도 꽤 좋았습니다. 아버지라는 영웅을 만날 수 있는 영화가 <국제시장>입니다. 


별점 : ★

40자평 :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풍파를 견뎌낸 거대한 돛대 같은 아버지라는 영웅에 대한 헌정 영화
예상 관객수 : 1,2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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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5.05.28 0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진솔하게 글 잘쓰시네요.
    부럽습니다.
    저도 국제시장 봤는데 그 감동을 글로 쓰고 싶어도 표현력이 모자라 못 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