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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인터스텔라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한국 부모들을 위한 메시지

by 썬도그 2014.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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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가 심도 있는 과학 이야기를 하는 영화라고 해서 과학적인 소양을 지닌 분들이 웜홀이나 블랙홀과 시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본 후 블랙홀, 웜홀 등 평소에 큰 관심이 없는 천체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고 섭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웜홀도 모르고 블랙홀도 모르는 과학에 대한 관심도 조그마한 소양도 없는 대부분의 관객들도 이 인터스텔라를 웜홀, 블래홀과 시간과 중력의 관계와 5차원을 잘 설명하는 관객 못지않게 큰 감동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영화 괜찮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과학 친화적인 영화를 왜 상대성이론을 전혀 모르는 관객들도 괜찮다고 추천할까요?


인터스텔라가 인기 있는 이유는 부성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

전 온라인 아니 오프라인에서 여자는 말이지~~ 남자는 말이지~~ 또는 이과 출신은 말이지~~~ 문과 출신은 말이지~~~ 하는 에너지 낭비만 많고 결론은 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싫습니다. 저도 한 때는 여자는 말이지. 남자는 말이지 문과는 어떻고 이과는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나이가 들고 큰 그림으로 보니 그런 행동들이 참 부질없고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여자는 어떻고 남자는 어떻고 그런 말 하지 마시고 그런 시간에 아내나 여자친구나 여동생이나 엄마에게 직접 이성에 대해서 물어보세요. 그럼 충분한 설명과 납득과 이해가 가는 말들 들을 수 있습니다. 이성에게 물어보면 10분만에 해답이 나오는 것을 동성끼리 이과생끼리 문과생끼리 이야기를 하니 답이 나오겠습니까? 참 비효율적으로 사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그 비효율성은 체면이라는 바리케이트 때문에 비효율적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하네요

각설하고. 전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좀 걱정을 했습니다. 제가 이과를 나오고 공대 출신이라서 그런지 보는 내내 저는 5차원이나 중력과 시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쾌재를 속으로 외쳤지만 이걸 과연 과학에 관심 없는 분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걸 몰라도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문과 이과 떠나서 대부분의 관객들이 감동을 받은 부분이 뭘까요?
직접 물어 봤습니다. 문과 출신의 친구와 주변 지인에게 물어보고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살펴보니 대부분은 딸과 아버지의 부성애가 큰 감동을 줬다고 합니다.

제가 영화 후반에 시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두루뭉수리가 아닌 천체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실현가능성 높은 이야기로 푸는 촘촘한 디테일을 담은 시나리오에 놀랐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린 장면은 초반 부분이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거야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거야. 그저 추억의 조각이 되는 거지"

인터스텔라 초반 부분은 큰 액션이 없고 스토리의 큰 변화가 없긴 했지만 놀란 감독의 이전 영화에서 다루지 않던 가족애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영화들이 이런 보편적 가치인 가족애를 주제로 하고 있기에 색다른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았지만 쿠퍼와 쿠퍼의 딸인 머피 사이의 부성애는 눈물 샘을 자극하기에 충분 했습니다.

쿠퍼가 우주 여행을 단 하루 만에 결정하는 과정이 좀 과격하긴 했지만 그 과격한 행동 배경에는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있었기에 가능 했습니다. 딸의 세대에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그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비록 딸과 함께 폼페이의 화산 폭발로 화석이 되는 것 보다는 딸의 세대를 구원하기 위해서 불확실한 미래와 한줄기 구원을 향해 우주 여행을 떠납니다.

쿠퍼는 딸 머피를 안고 속으로 말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거야. 그저 추억의 조각이 되는 거지" 이 말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연 이런 담대한 생각을 하는 부모님이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우린 이미 그런 부모님들을 많이 봤습니다. 딸과 함께 죽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지만 거대한 적을 대항하기 위해서 전쟁터로 총을 들고 떠나는 부모님들을 우리는 많이 봤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적으로부터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총을 든 수 많은 전쟁 영웅들이 바로 쿠퍼와 같은 부모들이죠
부모는 보편적으로 자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들의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걸 쿠퍼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식의 군주로 남기 보다는 추억으로 남는 것이 부모 답다고 생각하고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 우주선을 탑니다.

비록 유령이 될 지라도 그런 운명일지라도 남아 있는 친 자식이 아닌 후손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한 가족의 부모가 아닌 한 세대의 어른으로써 행동을 하는 쿠퍼, 이런 모습은 지난 역사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쿠퍼는 단수가 아닌 복수입니다. 


제가 예상을 하고 대비하고 있었지만 주루룩 눈물을 흘린 장면은 쿠퍼가 블랙홀 근처에 있는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시간이 지구보다 느리게 흐르는 행성에서 악전고투 끝에 모선으로 복귀한 쿠퍼가 28년이 지난 세월 앞에서 허망해 하면서 자신의 나이와 같아진 딸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 장면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기자 시사회는 매주 수편의 영화를 보는 프로들이 보는 시사회라서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이 기자 시사회에서도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기자분과 평론가들이 많았다고 하죠. 

이 장면은 웜홀도. 블랙홀에 대한 사전 지식과 과학적 소양이 없지만 인류 보편적인 부모와 자식간의 끈끈한 가족애와 부녀간의 사랑이 간절하게 흘렀기 때문에 눈물 샘을 자극했습니다


우는 딸을 두고 트럭을 타고 우주 기지로 떠나는 쿠퍼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흘렀습니다. 왜 쿠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을 두고 떠났을까요? 전 이 장면에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이타적인 부모가 거대한 이타성에 이끌려서 우주기지로 향하는 것 같았고 그 거룩함에 저도 눈시울이 붉어짐을 넘어 눈물을 뚝~~ 하고 떨어지더군요



내새끼리즘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거대한 여정

쿠퍼가 내 자식 만을 위한다면 우주로 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쿠퍼는 내 자식만을 위하지 않은 내 자식 세대를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우주로 향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쿠퍼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그 부자간의 강력한 감정적인 결계가 아이너리컬하게도 아주 먼 우주로 보낼 수 있었긴 했지만 그 멀수록 딸이 있는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에너지를 쏟아 냅니다. 그러나 쿠퍼의 행동의 동기의 발화점 아들과 딸을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남아 있는 인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제 수능일이었죠? 왜 수능일만 되면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어요. 제가 수능을 보던 90년대 초가 기억나네요. 수능을 앞두고는 별 생각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수능(당시는 학력고사였어요)을 준비하면서 부모 세대를 원망했어요.

왜! 우리는 이런 거대한 경쟁을 해야 하는지요. 보고 싶고 가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오로지 한 구멍으로만 달려가야하고 그 좁은 구멍을 대부분이 통과하지 못함을 알면서도 왜 우리 부모님들은 그곳으로 가야 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다 가치 보다는 하나의 가치 즉 대학 입학 만을 강요하잖아요. 그때 생각했죠. 내가 기성세대가 되면 이런 치열함을 넘어서 삶에 대한 자괴감과 모멸감과 열등감을 주는 수능 같은 시스템을 바꾸겠노라고요. 그러나 2014년 현재 제 생각은 완벽하게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더 치열해진 것은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90년대 초 10대였던 분들이 3,40대가 되어서 한 일이라곤 대학 진학률만 올려 놓은 것 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유치원 때부터 경쟁을 부축이고 경쟁에 지쳐하거나 쓰러진 자식들을 보고 일으켜 세워서는 그 경쟁을 그만 두기 보다니 흙을 털어주면서 늦었다고 엉덩이를 때리면서 더 빨리 달려서 따라 잡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네요. 우리 안에 쿠퍼는 몇명이나 있을까? 내새끼만 중요시하는 부모가 아닌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거룩한 마음을 가진 부모가 몇명이나 있을까요? 바지를 하나 고를 때도 허리와 기장이 얼마인지 꼼꼼하게 따지고 사면서 아이들은 오로지 시험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로만 제단하고 있다는 쿠퍼의 말을 과연 한국의 부모들 중 몇명이나 할까요?

전 이런 쿠퍼의 모습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라서요
인터스텔라가 한국을 배경으로 했다면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우주 타령이야라고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오늘(12일) SBS 미래 한국 리포트에서 나온 얘깁니다. 우리 청소년의 남과 더불어 사는 능력은 36개국 중에 35등, 부모가 아이에게 남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겠다는 의지는 62개국 중에 꼴찌.
세계 최고 교육수준을 가진 나라의 현실입니다.

뉴스 마치겠습니다.

 SBS 8시 뉴스 클로징 멘트가 절 흔들어 놓네요. 부모가 아이에게 남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겠다는 의지가 없는 나라. 그런 부모 밑에서 청소년들이 남과 더불어 사는 능력이 36개 중 35등. 하나의 위안이 된다면 자식들이 부모보다 나은 점은 꼴등이 아니라는 점이네요

우리네 부모님들 현재의 3,4,50대 아니 그 이상의 나이를 드신 한국의 부모 세대들이 각성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이런 문제점을 SNS에 토로하고 블로그에 토로하고 술자리에서 토로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잣대를 내 자식에게 적용하려고 하면 다른 잣대를 꺼냅니다. 이게 바로 내새끼리즘의 강력한 힘입니다. 

그런 말이 있죠. 내 새끼에게 하는 반 만큼만 남의 새끼에게 하라고요. 과연 우리는 내 새끼의 반 만이라도 남의 새끼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이루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서 이루려고 할까요? 하늘에 있는 별을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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