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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침묵하는 당신은 공범이다. 앰네스티의 확 와닿는 인권광고

by 썬도그 201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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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한 사람이 구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봤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구타 당하는 사람을 말리지 않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이런 일이 흔하진 않지만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라는 방관자 효과 때문입니다. 

실제로 낮에 술에 취해서 쓰러져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날이 추워서 저렇게 두면 죽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전거에서 내려서 지나가던 의경에게 알렸습니다. 의경은 무전을 쳤고 순찰차가 다가와서 취객을 깨웠습니다. 그냥 흔한 취객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지만 술이 취해서 쓰러져 있는지 병 때문에 쓰러져 있는지는 다가가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무조건 다가가서 살펴보고 경찰에 알려야 합니다. 
오히려 으슥한 곳에 쓰러져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잘 신고를 하지만 대로에 쓰러져 있으면 누군가 신고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제 갈길을 갑니다. 

만약 제가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면 그 취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냥 술을 깨고 알아서 일어났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만에 하나 죽었다면 비정한 사회라는 기사가 떴을 것입니다. 

세상은 비정합니다. 
내 일이 아니면 남 일처럼 대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 듯 합니다. 그러나 그런 비정함이 언젠가는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합니다. 도와 달라는 사람의 손길을 뿌리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큰 손해가 나지 않으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서 도와줍니다.  그러나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고 그냥 공중에 대고 도와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도와주지 않습니다. 

방관자 효과를 깨려면 특정인을 지목하고 도와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도와달라고 하기에도 긴박한 상태이거나 한 사람의 도움이 아닌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특정인을 지목해서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개개인의 높은 도덕성입니다. 


위 이미지는 뉴질랜드 국제 사면 위원회(앰네스티) 의 광고입니다. 한 가운데 한 사람이 구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 구타를 당하는 사람 주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시할 때 인권도 무시당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수 많은 사회 문제에 대해서 침묵합니다. 그게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줏대 있는 사람 또는 기계적 중립만이 세상을 살아 가는 방법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침묵은 무관심에서 시작 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학대를 받고 있는지 왜 몽둥이로 맞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총 맞을 만 하니까 맞겠지. 채찍질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겠지! 또는 내 일도 아닌데 남 일에 신경 쓰지 말자고 사는 분들도 많죠. 그런데 그게 삶의 지혜라고 하기엔 그 지혜 속에 억울하게 구타 당하고 매질을 당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학대의 1차 가해자는 몽둥이나 채찍을 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말리지 않는 대중들도 또 다른 가해자입니다. 그 책임은 비록 n분의 1로 떨어지겠지만 인권 유린의 현장을 보고도 침묵하고 못 본 척 하는 당신도 가해자입니다. 

이 광고는 침묵하는 당신도 공범이라고 꼬집고 있습니다.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보수는 북한 인권에만 관심이 많고 진보는 남한 인권만 관심이 많습니다. 인권에 색이 있나요? 참 묘한 나라입니다. 

출처 http://adsoftheworld.com/media/print/amnesty_international_street_beating?size=orig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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